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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1호] 2021.08.16

스가의 ‘개헌’ 발언이 노리는 것

김회권  기자 khg@chosun.com 2021-08-17 오후 4:11:45

▲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민심은 현재 최저점을 찍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를 극복한 뒤 헌법 개정에 꼭 도전하고 싶다.”
   
   보수 월간지 하나다(Hanada) 9월호와 가진 인터뷰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개헌’이란 단어를 끄집어냈다. 스가가 하고 싶은 개헌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 내용을 보자. 그는 개헌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자민당은 창당 이후 ‘자주 헌법’ 제정을 내걸고 있으므로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민당은 2018년 3월 당 차원의 개헌안을 공식 발표하면서 ‘개헌 4항목’을 발표했다. △자위대 설치 근거 조항 명기 △긴급사태 조항 추가 △고등교육을 포함한 교육 무상화 △참의원 선거구 조정의 네 가지가 핵심이다.
   
   이 인터뷰에는 몇 가지 짚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먼저 시점이다. 요약된 기사 내용을 일본 일간지들이 전한 건 지난 7월 26일이었다. 정치인의 발언은 시기가 중요한데, 당시는 코로나19로 도쿄도가 긴급사태를 선언했고 전 세계의 반대 속에서 올림픽이 시작했던 바로 그때였다. 그 시점 일본 언론들은 “스가 내각 지지율이 출범 이후 최저치인 34%로 떨어졌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개헌을 말하고자 선택한 매체가 ‘하나다’라는 월간지란 점도 흥미롭다. 바로 직전 8월호 인터뷰 주인공은 아베 신조 전 총리였다. 당시 아베는 인터뷰에서 “일본 공산당으로 대표되듯 역사인식 등에서 ‘반일’로 비판받는 사람들이 이번 올림픽 개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도 명확하게 반대를 표명하지 않나”라고 말하며 올림픽 반대론자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민심과 역행하는 발언이라는 빈축도 샀지만 적어도 이 매체를 읽는 독자들과는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였다. 이 잡지의 주 독자층은 보수색 짙은 개헌파이다. 그리고 다음달에 등장한 스가 총리 역시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발언을 해줬다.
   
   
   개헌 성공=아베의 그림자 벗어나기
   
   일본 근현대 사건에 관해 책을 쓰는 논픽션 작가 야마오카 준이치로는 2013년 봄부터 가을까지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를 네 번 인터뷰했다. 총리의 고향인 아키타현 유자와시에서 유년기 친구를 만나는 걸 시작으로 지역구인 요코하마 선거구까지 거슬러 올라오며 주변 지인과 후원자, 그리고 스가 총리 본인을 수차례 취재하고 내린 인상평은 이랬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정치가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잡히지 않았다. 정치적 포지션은 중도우파이고 규제 개혁과 지방분권, 개헌을 입에 올리지만 핵심이 텅 비고 보이지 않는다.”
   
   막 취임했을 때의 스가 총리는 개헌 욕심이 강했다. 당시 일본 언론의 기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주간문춘(週刊文春)은 지난해 10월 29일 자민당 주요 파벌의 회합을 보도했다. 이 자리는 일본 집권 자민당 최장수 간사장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가 주도한 모임이었다. 그는 스가 총리를 만들어 낸 킹메이커다. 아베의 호소다(細田)파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이끄는 아소파보다 규모는 작지만 니카이파는 스가 지지를 자민당 내에서 대세로 만들었다.
   
   주간문춘에 따르면 이 모임을 제안한 사람은 에토 세이시로 의원이다. 그는 자민당 내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이다. 에토가 스가 총리에게 “헌법 개정을 당내에서 논의하겠다”고 건의했고 스가 총리는 “거당적인 체제로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모임은 총리의 의지가 작동해 간사장이 각 파벌의 주요 인물들을 부른 모양새였다.
   
   이 회동은 스가 총리와 니카이 간사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자리기도 했다. 니카이는 실용주의를 표방한다. 자민당 내에서 현실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스가 총리는 아베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옅은 게 장점이자 약점이다. 이런 두 사람이 개헌이란 주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간다면 어느 정도 약점이 상쇄될 수 있다. 스가 총리에게는 탈(脫)아베를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전임 아베 정권은 임기 내내 헌법 개정을 외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스가 체제에서 아베의 심복이자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주도했던 이마이 다카야(今井尚哉) 정무비서관을 퇴장시킨 게 관저의 틀에서 시도한 ‘아베 흔적 지우기’였다면 헌법 개정을 이루어내는 건 아베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정치적 업적으로 삼을 수 있다.
   
   
▲ 지난 4월 21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며 퇴임 뒤 노골화된 극우 행보를 이어갔다. photo 뉴시스

   복귀한 아베의 불만
   
   이런 스가 총리의 속내는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얼마나 현실화됐을까. 자민당 내에서는 “총리가 개헌에 열의가 없다”는 불만이 새어나온 지 오래됐다. “지지자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며 총리의 이데올로기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가 총리도 나름 이유가 있다. 개헌을 향해 삽을 뜨기 전부터 ‘아오키의 법칙’과 싸워야 했다. 과거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이 주창한 이 법칙은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 합계가 50%를 밑돌면 정권이 위기를 맞았다고 본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출범 직후 스가 내각은 74%라는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출범 3개월 만에 39%로 반토막 났다. 2020년 9월 취임 이후 스가 총리가 최선의 시나리오로 그려온 건 ‘코로나19 감염 억제 → 올림픽 개최 성공 → 중의원 해산 단행 → 승리 후 자민당 총재 재선’이었는데 감염병을 잡지 못하면서부터 뒤이은 단계들이 모두 일그러졌다.
   
   일본에서는 ‘네마와시(根回し)’라는 문화가 작동한다. 이해당사자 간 동의를 얻기 위한 사전작업을 뜻하는데, 코로나19 대책 역시 총리 관저가 중심이 돼 관계 부처와 지방정부 등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이 조율을 이뤄낸 뒤에야 정책이 도출된다. 이 과정을 통해 총리 관저는 리더십을 뽐내왔다.
   
   그런데 스가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법은 사뭇 달랐다. 지난해 말 코로나19 재확산이 시작될 때 긴급사태 선언을 머뭇거리는 관저를 대신해 광역단체 지사들이 긴급사태를 거꾸로 요청했다. 관저는 뒷북 대응을 하는 모습들이 연출됐다. 전문가 집단의 반란도 리더십에 상처를 냈다. 스가 총리가 올림픽의 당위성을 설파할 때 일본 정부 산하 코로나19 대책분과회의 오미 시게루(尾身茂) 회장은 올림픽 개최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2021년이 시작되기 전부터 “스가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자민당 내에서 흘러나왔고 균열이 생겼다. 언론들은 전임 총리 아베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지병 악화를 이유로 2020년 8월 말 갑자기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이내 몸이 건강해졌다며 돌아와 골프 회동을 하고 각종 의원들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아베가 국회가 있는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에 복귀를 알린 건 올해 4월부터다. 여러 의원모임에 나갔는데 ‘보수단결의 모임’과 ‘헌법개정추진본부’의 고문직도 맡았다. 개헌파 아베의 아우라(Aura)가 물씬 나는 자리다. 아베와 스가 총리의 정치적 간극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도 이때다. 자신이 맡긴 개헌이라는 숙제를 너무 신중하게 대하는 스가 총리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는 추측이 일본 언론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스가 총리가 개헌을 다시 주제로 내민 때가 일본의 제헌절인 지난 5월 3일이었다. “(평화)헌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넘었다. 현 시대와 맞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은 수정돼야 한다.” 개헌파가 주최한 헌법기념일 행사에 영상메시지를 보낸 그는 산케이신문과 같은 날 가진 인터뷰에서 “가을 중의원 선거 때 자민당 공약으로 개헌을 내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밤, BS후지TV에 출연한 아베는 “1년 만에 다시 총재를 바꾸자는 건가. 스가가 당연히 총리를 계속해야 한다”며 총리의 손을 들었다. 한날에 개헌을 고리로 전·현직 총리는 화학적 결합을 이뤘다.
   
   스가 총리의 개헌 접근법은 아베와 닮았다. ‘긴급사태 조항’을 깃발로 내걸었다. ‘내각은 심각한 전염병이 유행할 경우 국회 동의 없이 법률과 동급인 긴급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추가하는 게 자민당의 목표다.
   
   자민당의 개헌안에 들어 있는 ‘긴급사태 대응’을 코로나19 대응과 연관하는 건데 답보상태인 개헌론을 자극하는 계기로 삼는 행동이다. 아베 정부도 지난해 4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했을 때 비슷한 명분으로 개헌을 추동하려고 했다.
   
   만약 개헌안이 통과되면 일본 정부는 국회의 통상적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긴급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 반면 헌법학자인 기무라 소오타 도쿄도립대 교수는 “현행 헌법에서도 과학적, 법적 근거가 있다면 좀 더 강한 시책을 펴는 게 가능하다. 현재의 대책이 부족하다면 그 책임은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오판한 정부와 국회에 있다”고 꼬집는다. 개헌의 당위로 내세운 변명이 형편없다는 주장이다.
   
   한 기자회견장에서 산케이신문 기자와 벌인 질의·응답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자가 스가 총리에게 물었다. “헌법에 긴급사태 조항이 없어서 취할 수 없었던 대책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스가 총리는 마치 기습을 당한 듯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 백신 치료에서… 국내 임상시험이 요구되고 있는데 그게 3~4개월 정도 걸리고 그러면 접종도 늦어버린다.” 총리의 대답에 나온 전문가들의 평가는 이랬다. “헌법과 백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
   
   
   민심은 잃었지만 당심은 남아
   
   결합 여부를 떠나 스가 총리가 인기 없는 정치인이라는 점은 자민당의 골칫거리다. 올림픽은 끝났고 일본 대표단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지만 골든러시가 스가 정권의 지지율 추락까지 막진 못했다. 2012년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한 뒤 처음으로 20%대에 진입하는 정부가 됐다. 8월 22일 열리는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는 스가 총리의 측근이 출마했지만 지원 유세를 오지 말았으면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선거를 앞두고 그와 찍은 사진을 걸던 후보들이 지금은 독사진을 내건다. 민심이 떠난 무파벌 생존형 총리인 스가 입장에서 이제 기댈 곳은 당심뿐이다. 아베가 이끄는 호소다파와 내각을 함께하는 아소파, 그리고 간사장 자리 유지를 원하는 니카이파의 지지가 있으면 투표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올림픽 기간에 나온 개헌 발언, 스가 총리의 속내는 이런 종속적인 상황에서 나온 당심에 대한 호소다.
   
   다만 무투표 재선을 꿈꾸던 그의 계획은 틀어질지 모른다. 최근 한 월간지를 통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장관이 총재에 도전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여성 총재에 인색한 자민당 안에서도 그녀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무라야마 담화를 비판하는 등 보수우익의 가치에 충실한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아베와도 가까운 사이다. 총재 선거에 나오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결단을 넘어 동료 의원 20명의 추천이 필요한데, 이건 파벌 수장의 용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카이치의 출마를 두고 ‘아베의 플랜B’라는 해석이 무리가 아닌 이유다. 경쟁이 이뤄질수록 파벌의 표가 필요한 후보들의 보수가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를 들었던 스가 총리, 자민당 모두가 그 경쟁을 시작했다. 개헌을 좀 더 자주 언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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