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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2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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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언론징벌법과 영국의 명예훼손법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2021-08-24 오후 1:57:02

▲ 지난 8월 11일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의 미국 인도 여부를 결정할 항소심이 열린 영국 런던 고등법원 앞에서 어산지 지지자들이 ‘언론자유’와 어산지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주주의가 인류가 만든 최선의 정치제도라면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언론의 자유는 바로 그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영국 지성의 정상’으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은 유독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대의 언론인을 비롯한 영국 지식인들이 권력과 세상에 겁을 먹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있음을 간파해서인지 오웰은 “자유가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으로부터의 위협이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보도할 수 있는 권리이다”라는 명언으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명확하게 설파했다.
   
   오웰은 미출간 저서 ‘언론의 자유(The Freedom of Press)’ 서문으로 쓰려고 했던 글에서도 당시 영국 언론인들의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비난했다. ‘오늘날 사상과 발언의 자유의 가장 큰 위협은 정보부나 정부기관의 직접적인 방해가 아니다. 만일 발행인들과 편집자들이 어떤 주제를 출판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대중들의 여론에 겁을 먹는 탓이다. 이 나라 지식인들의 비겁함은 작가와 언론인이 직면해야 하는 최악의 적이다.’
   
   오웰은 희대의 걸작 ‘동물농장’이 영국 4개 출판사에서 모두 거절된 이유 역시 당시 영국과 우방이던 소련과의 관계악화를 걱정한 영국 정보부(안보 관련 정보부가 아니고 공보부)의 권고와 함께 소련을 자본주의와 맞서 세상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던 당시 좌파 지식인의 영향 탓이라고 봤다. 그는 ‘동물농장’을 펴낼 배짱을 가지지 못했던 출판사 발행인과 편집자들을 맹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영국 사회에서 표현과 언론 자유의 가장 큰 적은 과거처럼 권력과 기득권층이 아니라 명예훼손법이다. 권력자, 정치인, 유명인 같은 개인과 정당, 정치단체, 각종 이익단체, 기업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는 방법으로 명예훼손법을 적극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비리나 탈법을 찾아내 보도하는 언론을 위협하고 겁박해서 입을 다물게 하는 수단으로는 명예훼손법이 최적이다. 특히 영국은 명예훼손법의 원조 국가이다. 1275년에 벌써 명예훼손에 관한 법의 존재를 말해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명예훼손법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19세기 들어 대중 언론이 자리 잡으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도는 헛소문과 이를 다룬 언론 때문에 고심하던 상류층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명예훼손법이 강화돼 형사·민사 모두 처벌과 손해배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명예훼손 관광’의 수도
   
   이후 영국은 명예훼손 소송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특히 영국 법제도가 피해자인 원고에게 유리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영국으로 끌고 와서 소송을 벌이는 일도 빚어졌다. 영국을 ‘명예훼손 관광(libel tourism)’ 혹은 ‘법정 쇼핑(forum shopping)’의 수도라고까지 불렀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수많은 소송이 영국 법정에서 열렸는데 주로 유명인과 언론들의 싸움이었다. 예를 들면 2000년에 있었던 베레좁스키와 포브스의 소송을 꼽을 수 있다. 소련 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미국 언론 포브스가 자신을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자로 칭해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소송을 걸었는데, 포브스가 영국에도 배포되고 있다는 이유가 소송의 근거가 됐지만 실은 원고에게 유리한 영국 법정을 이용할 요량이었다. 당시 영국의 명예훼손법은 소송을 건 원고는 기사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일단 명예훼손 소송이 들어오면 피해자라고 자칭하는 원고의 주장대로 ‘기사가 진실이 아니라는 가정하(false until proven true)’에 재판을 시작했다. ‘진실 규명의 책임(burden of proof)’은 기사를 게재한 언론에 전적으로 있었다.
   
   이런 소송이 들어와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대형 언론사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탐사보도를 주로 하는 자유기고가와 그들의 기사를 다루는 소형 언론, 혹은 웹사이트를 플랫폼으로 삼는 인터넷 언론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런던은 변호사와 법정 비용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비리를 저지른 권력자나 외국 재벌들이 엄청난 재력으로 소송을 걸어오면 영세 탐사보도 기자들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기 마련이다. 법정에서 자신의 기사가 진실이라는 증명을 하기 위해 취재원도 못 밝히고 변호사의 도움도 못 받다가 소송에서 지면 1843년의 명예훼손법에 의해 벌금과 징역형을 동시에 받는 형사법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런 식의 문제가 계속 벌어지자 언론의 자유를 천부(天賦)의 권리로 인식하고 민주주의 원조국의 제일 큰 기둥으로 여기는 영국 사회에서 자신들의 명예훼손법이 잘못되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명예훼손법을 개인의 인격권 보호보다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결국 2009년부터 작가들과 일반인들로 이루어진 언론 자유 보호 민간단체인 ‘잉글리시 펜’과 ‘인덱스 온 센서십’이 공동으로 ‘발언의 자유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Free Speech Is Not For Sale)’라는 명예훼손법 개정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6만여명이 서명했고 진보·보수를 망라한 100여개의 단체가 합류했다. 작가협회는 물론 의사협회, 교수단체, 과학자협회 같은 거의 모든 지식인 단체가 동참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명예훼손법이 개정되지 않았음에도 영국 검찰이 알아서 미리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명예훼손 소송이나 고발이 들어와도 공중의 이익을 위한 보도라는 확신이 설 경우 소추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키어 스타머 하원의원(현 노동당 당수)은 2013년 명예훼손법이 개정되기 전에 벌써 검찰 내부규정으로 언론 보호를 시도해 법 개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런던의 한 뉴스가판대. photo 셔터스톡

   2013년 명예훼손법 개정
   
   이런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영국 하원은 지난 2009년 초당적인 차원에서 ‘사인조사관 및 형사법 2009(Coroners and Justice Act 2009)’를 발효해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이 2010년 1월 1일부터 폐지됐다. 이후 명예훼손은 민사소송으로만 다루어지게 되었다. 2013년에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보다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쪽으로 명예훼손법이 바뀐 ‘명예훼손법 2013(Defamation Act 2013)’도 발효되었다. ‘명예훼손법 2013’은 개인과 법인들이 명예훼손 피해 소송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까다롭게 했다. 또 언론의 면책 규정을 여러 개 두어 언론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선 소송이 성립되기 위해 까다롭게 바뀐 조건부터 보자. 개정 전 법에 의하면 원고가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면 일단 소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원고가 ‘심각한 피해(serious harm)와 금전적 손실’이 있었음을 사전심리(pre- trial hearing)에서부터 명확하게 증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신문에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기사가 나왔다면 자신의 무슨 명예가 왜 훼손되었고, 그로 인한 평판 손실과 금전적 손해가 얼마인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명예훼손의 정도와 피해금액이 ‘사소하지(trivial)’ 않아야 한다. 인터넷 웹사이트의 경우 해당 기사 클릭수와 함께 댓글 숫자와 내용까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가 기사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느껴도 댓글 내용이 그렇지 않으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당사자의 판단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명예훼손이 되었느냐는 객관적 판단의 기준이 재판의 제일 큰 근거가 된다.
   
   다음이 언론면책 조항이다. 일단 기자가 기사를 쓰는 시점에서 공중의 이익을 위해 쓴 기사면 면책이 된다. 무엇이 공익인지는 판사가 판례와 사회적 정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또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믿고 썼을 경우는 나중에 잘못된 사실이라 규명되어도 면책이 된다. 또 기사 내용의 모든 사실이 진실일 필요는 없고 주요 부문만 진실이면 면책이 된다. 특히 기사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더라도 기자가 피해자를 해칠 목적의 ‘악의적인 (malicious) 사유’가 아니라면 면책이 된다. 기자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썼다고 피해자가 믿는다면 기자의 구체적인 악의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
   
   한 영국 법무법인은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2013년 명예훼손법 개정이 표현의 자유에 미친 긍정적인 효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언론인이 법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조심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어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에 당신들이 읽는 기사가 가장 중요한 기사가 아니었고 차라리 읽을 수 없었던 기사가 더 중요했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기자들은 형사처벌의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면책사유도 많아져 굳이 자기검열을 안 해도 되게 되었으니 법 개정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잘못된 언론도 없는 언론보다 낫다’라는 영국 사회의 인식이 가져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참여해서 만드는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글 내용이 일으킨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운영자가 아닌 게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웹사이트 운영자는 ‘글이 업로드 된 뒤 항의가 들어오면 지우면(report and remove)’ 면책이 된다. 인쇄물처럼 영원히 남지 않는다는 이유다. ‘전문가들이 공동참여해서 사전에 심사가 된(peer-reviewed statements)’ 과학 학술 전문지의 내용은 처음부터 명예훼손 면책 대상이 된다. 또 기자회견에서 얻은 정보, 전 세계 어느 정부의 자료와 법정에서 나온 정보같이 공개된 정보로 작성된 기사는 명예훼손이라도 면책대상이다. 책과 신문 판매자 역시 명예훼손 관련 기사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사자 명예훼손은 죄가 아니다
   
   영국 명예훼손법에 따르면 원래부터 사실을 말하는 ‘사실적시(事實摘示)’는 명예훼손 대상의 죄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소수성애자라는 사실을 친구가 악의로 인터넷에 올리면 소수성애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사생활 침해에 대한 민사소송을 벌일 수는 있어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성폭력을 당해 이를 인터넷에 공개한 경우 가해자는 범법행위는 고사하고라도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식의 소송을 벌일 수는 없다. 이유는 공개한 정보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사실적시는 본래 죄가 아니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고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벌여 증명하면 그때는 명예훼손 보상을 나중에 받을 수는 있다.
   
   영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사자(死者) 명예훼손(defamation of dead)’ 역시 죄가 아니다. 조상의 명예가 자신의 명예라고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명예훼손 소송은 당사자만이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명예가 있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소송을 할 실질적인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자의 명예훼손 소송을 후손이나 친척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명예훼손 소송 중 당사자가 사망하면 소송은 중도에 중지된다. 영국에는 조상의 죄를 후손이 받는 연좌제도 없었고, 조상의 덕을 보는 음덕(蔭德) 제도도 원래부터 없었다. 우리와 달리 영국에는 조상이 국가유공자이거나 민주화 공로자라고 연금을 받거나 취직, 진학에 도움을 받는 제도도 아예 없다. 결국 공과(功過)는 본인의 문제이지 후손으로 이어질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조상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후손이 소송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영국 사회가 사자의 명예훼손에 연연해하지 않는 더 깊은 이유는 역사학자와 언론이 역사를 평가함에 있어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게 하려는 배려 때문이라고 법률 역사학자들은 본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역사를 정지시킬 수 없다(You can’t stop history)’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한 인물의 명성을 영원히 보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는 역사 분석의 가능성을 방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는 바뀌고 그렇게 해야 역사는 발전하면서 흘러간다는 뜻이다. 영국 법정에서도 가족, 후손, 친척들에 의한 사자의 명예훼손 소송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재판까지 가지 못했다.
   
   영국의 명예훼손법 개정은 언론의 자유를 실제 신장시켰다. 개정법 이후 언론에 대한 소송이 2013년에서 2017년 사이 27%나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원고의 명예훼손 정도가 심각해야 한다는 증명(serious harm test) 절차를 까다롭게 적용하자 특히 유명하지 않은 영세 온라인 웹사이트에 대한 소송이 확연히 줄었다. 언론에 대한 기업들의 소송도 줄었다. 명예훼손으로 인해 거래처와 고객이 정확히 얼마나 떨어져 나갔고 매출과 이익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숫자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이 쉽지 않게 된 것이다.
   
   
▲ 영국의 한 방송사 기자가 지난 3월 버킹엄궁 앞에서 메건 마클 왕세자비 폭로 사태를 다룬 신문을 들고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명예훼손 관광 여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영국 정론지 가디언은 힘이 있는 개인들이 언론인, 특히 외국 탐사보도 전문 기자들을 위협하는 데 영국법이 악용되는 것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연구기관(Foreign Policy Centre)의 조사보고에 대해 보도했다. 외국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금융·부패 범죄를 보도하는 외국 기자들을 상대로 범죄 대상자가 영국 법원을 이용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예훼손 관광’이 아직 성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명예훼손 관광 소송 건수’가 영국보다 언론인들을 더 보호하는 전 유럽과 미국의 소송 건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지적이다. 결국 영국의 언론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이 아직도 미흡해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국제금융 범죄를 탐사보도하는 41개국 60여명의 언론인 중 3분의1이 런던 법률회사로부터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편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영국에 사무실과 기자도 없는 많은 외국 자유기고 언론인들이 자신들이 탐사보도한 대상자의 의뢰를 받은 영국 소재 법무법인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영국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아주 작은 연결고리를 찾아내서 소송을 시작하면 영국 법원은 다룰 수밖에 없다. 물론 명예훼손 개정법은 이 경우 ‘영국이 소송을 하기에 최적이라는 증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게 마련이다. 문제는 소송을 당하는 외국 언론인과 언론사는 기하학적으로 높은 영국 변호사 비용과 법정 비용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 노리고 저개발국의 독재자나 정치인들이 영국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범죄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독립 탐사보도 조직 ‘파나마 페이퍼(Panama Papers)’ 소속 언론인들이 소송을 많이 당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파나마 페이퍼’가 탐사보도하는 이슈의 60% 이상이 영국과 관련이 있다. 영국이 세계의 금융중심지일 뿐더러 건지섬, 만섬, 영국령 버진섬같이 조세포탈 목적의 역외권 지역이 속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영국령 섬들이 탐사보도 기자들이 추적하는 검은돈이 오고 가는 중심지이다. 보고서는 엄청난 재력을 불법으로 쌓아 런던의 변호사를 고용하는 개인과, 진실을 밝혀내려는 탐사보도 언론인 사이에는 아주 큰 ‘세력 불균형(imbalance of power)’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진실 말하려는 언론인은 소송 감수해야?
   
   다행히 아직은 상식을 가진 영국 법원이 소송을 기각해서 외국 언론인이 직접 법원까지 오는 경우는 극소수지만 일단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소송 편지를 받으면 원고료로 먹고사는 자유기고 언론인으로서는 자기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는 이렇게만 되어도 거액을 들여 편지를 의뢰하는 개인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런 시도를 전문가들은 ‘대중 참여 방해를 위한 전략적 소송(SLAPP·Strategic Litigation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고 칭한다. 이런 ‘전략 소송’을 반대하는 단체 ‘안티 슬랩(Anti-SLAPP)’ 웹사이트는 이런 소송을 막지 않으면 언론인은 결국 근거 없는 소송에 휘말려 시간과 돈을 쓰고 언론의 자유는 분명 침해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2017년 몰타 정부로부터 살해당했다는 의혹을 받은 탐사보도 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다. 그녀는 몰타 각 정부기관과 개인업체로부터 42건의 소송을 당해 법정을 오고 가느라 취재를 못 하고 있다가 살해당했다. ‘안티 슬랩’은 법제도를 악용하는 이런 종류의 소송에 대해서는 판사들이 경각심을 제고해 소송 시작 단계에서부터 조기 기각하고 소송비용도 원고가 부담하게 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더 나아가 소송을 당하는 언론인의 소송비를 돕는 기금을 마련하자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영국에는 기자들이 국가에 소송비용 신청을 할 경우 국선변호사가 아닌 명예훼손 전문 변호사를 쓸 수 있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언론인들에게 자위책을 강구하라고 권고하는 영국의 한 명예훼손 전문 법무법인 웹사이트의 글을 보면 언론자유가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명예훼손 소송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업계 전체의 기금 설정을 통해 해당 언론인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되었건 결국 (언론인의) 배짱(intestinal fortitude)에 달려 있다. 언론인은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으로 닥치는 위험에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들이 전쟁지역에서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보도를 하듯이 말이다. 군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자격인 불굴의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아마도 언론계는 자신들 업종의 정의를 다시 설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회정의를 위한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언론인이라면 최소한 소송은 물론 군인처럼 생명의 위협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세계 최상이라는 영국의 현직 언론인 중 과연 얼마가 이런 각오로 기사를 쓰고 있을지, 한국 언론인들의 경우는 어떨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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