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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2호] 2021.08.23

쇼는 없다! 물러나는 메르켈이 가르쳐준 것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08-25 오후 4:00:47

▲ 지난 8월 16일 독일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최근의 아프간 사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는 메르켈 총리. photo 뉴시스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가 16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오는 9월 26일 실시되는 독일 총선에 메르켈은 출마하지 않는다. 독일 첫 여성 총리인 메르켈은 최장수 총리로도 기록된다.
   
   메르켈이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등 대통령이 4명이나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도 자크 시라크,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에마뉘엘 마크롱 등 4명의 대통령이 교체되었고 영국 총리는 5명, 이탈리아 총리는 8명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문재인 대통령 등 정상이 5명이나 교체되었고, 일본에서도 8명의 총리가 집권했다. 중국 국가주석은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인도의 총리도 만모한 싱에서 현재의 나렌드라 모디로 바뀌었다.
   
   메르켈은 집권 기간 내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었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하는 동안에는 자유세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 국내적으로도 메르켈은 경제성장과 능숙한 위기관리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물론 미래에 필요한 개혁을 등한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메르켈은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었던 냉전 시절 공산주의 체제인 동독에서 성장했다. 동독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서독으로 탈주하던 시절 메르켈의 아버지는 동독 교구 목사로 임명되어 동독으로 갔다. 메르켈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정직함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자세는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한다.
   
   
   메르켈은 첫눈에 보이지 않는다
   
   메르켈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동독에서 양자물리학자로 일했다. 메르켈은 동독의 공산주의 통제를 혐오하며 동독 정보기관과의 협조를 일절 거부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던 당일 많은 동독 시민들이 자유통일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장벽을 향해 몰려나갈 때 35세였던 메르켈은 사전에 예약에 놓은 사우나로 향했다. 이처럼 냉정해 보이기도 하는 참을성이 메르켈을 21세기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만들었다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그의 세계’ 작가인 쥐트도이체차이퉁의 국제부장 스테판 코르넬리우스는 분석했다.
   
   코르넬리우스는 메르켈의 성공이 무엇인가는 “첫눈에 보이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가장 큰 업적은 독일, 정부, 국가 체제와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안정성과 지속성을 부여한 점이다. 경제성장이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었다. 그녀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는 테러위협이 심각한 시대였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2008년 경제위기가 닥쳤으며 뒤이어 유로화 위기사태가 일어났다. 메르켈의 첫 번째 업적은 유로화가 해체되는 것을 막은 것이다. 두 번째는 EU(유럽연합)를 단결시켜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는 떠들썩한 행동가도 아니고 위대한 비전의 정치인도 아니다. 메르켈은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다.”
   
   2005년 메르켈이 집권을 시작했을 때 독일은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불렸다. 통일 후 경제는 내리막길을 치달아 2005년 실업률은 11%에 달했다. 하지만 현재 실업률은 6%이며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훨씬 나아졌다.
   
   메르켈의 전략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꾸준히 확실하게 나라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마인츠대학의 카이 아르츠하이머 교수는 “메르켈의 정치스타일은 반동적이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으려는 희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며 “‘우리는 앞만 보고 운전한다(We are driving on sight)’는 것이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다”고 평가한다.
   
   이런 메르켈의 면모는 2011년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처해졌을 때 돋보였다. 당시 다른 나라들에도 위기가 전파될 우려가 커졌고 메르켈이 유로존에서 위기에 취약한 나라들을 축출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당시 메르켈은 “유로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 이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독일은 이 나라들에 재정지원 및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을 집행했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이탈리아 등에서도 유로존 탈퇴를 시도하는 포퓰리스트들이 극성을 부렸지만 메르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남유럽 국가들이 부채위기를 겪고 있을 때 메르켈은 2012년과 2015년 재정지원 대가로 사회보장 축소 등 혹독한 긴축을 요구했다. 그리스인들은 독일과 메르켈이 위기에 나라의 재정주권을 강탈해간다며 나치스에 빗대기도 했다.
   
   일부 언론들은 메르켈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며 마피아 두목에 비유하기도 했다. 독일 내부에서도 보수파들은 메르켈이 독일 국민의 세금을 지중해의 밑 빠진 독에 퍼붓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메르켈의 리더십으로 EU는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오히려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독립을 추진하며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 2016년 4월 메르켈 총리가 독일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메르켈이 4선 총리에 도전한 것은 당시 오바마의 권유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hoto 뉴시스

   메르켈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메르켈의 첫 번째 업적이 EU의 단합과 유로화의 해체를 막은 것임에도 그녀의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메르켈 리더십의 특징이기도 하다. 메르켈 전기 ‘조용한 독일인’을 쓴 미국의 언론인 겸 작가인 조지 패커는 이렇게 평가한다.
   
   “메르켈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녀는 서구의 유력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는다. 그녀는 허영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것은 정치인에게는 대단히 큰 자산이다. 메르켈은 허영심이 강한 남성 정치인들과 대결할 때 필연적으로 하찮게 보인다. 그럴 때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 작지만 강한 결정타를 먹인다. 이게 그가 정상에 오른 방법이다. 그는 토론에서 이길 필요도, 결론을 이끌어낼 필요도 없었다. 메르켈은 조용히 주어진 상황에서 여러 다른 요인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조용히 결정한다. 이는 독일인들이 메르켈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정치스타일이다.”
   
   코르넬리우스도 메르켈의 인성이 여느 남성 정치인들과는 다르다고 평가한다. “메르켈은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신비한 인물도 아니고 슈퍼히어로도 아니다. 그는 천생 여성이며,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는 항상 자신을 너무 존경하는 사람들을 의심한다. 메르켈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항상 스스로에게 ‘앙겔라, 너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말하는 능력이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이란핵협상, 파리기후협약 등에서 탈퇴했다. 트럼프는 또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였다. 이때 메르켈은 세계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유지하는 지도자로 등극했다. 메르켈 최대의 정치위기는 2015년 여름의 난민 유입 사태였다.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들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을 받아들일지를 둘러싸고 유럽은 분열되었다.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들은 이들을 배척하여 인도주의 위기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이었다.
   
   이때 메르켈이 개입하여 독일 국경을 개방하고 10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당시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난민 유입이 독일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을 가한 것은 거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내부에서는 오늘날까지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있지만 메르켈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하다.
   
   독일 기민당의 아네트 샤반 부총재는 메르켈이 “유럽의 존엄성을 구해냈다”며 “메르켈은 난민 허용을 기독교민주주의가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이라고 간주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메르켈은 총리 4선을 계획하지 않았다가 마음을 바꿨는데 결정적 계기는 2016년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었다. 미국 선거 8일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작별인사차 베를린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아들론호텔에서 만찬 도중 오바마는 메르켈에게 총리직에 다시 출마해서 서방진영과 세계를 단합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촉구했다. 4일 후에 메르켈은 4선에 도전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메르켈은 서구언론들로부터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의 수호자’ ‘자유세계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ree world)’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메르켈이 트럼프로 대표되는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부터 세계의 다원주의와 국제협력을 구원했다는 평가이다. 2019년 하버드대 명예법학박사 수여식 연설에서 메르켈은 “무지와 편협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다원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 공동행동을 취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정작 독일 국내에서는 이런 감동적인 거대 담론을 말한 적이 거의 없다”고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의 전 편집장인 안드레아스 클루트는 지적한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독일인들에게 메르켈은 엄마(Mutti)라는 별명대로 사람들을 졸게 만드는 정책 공부벌레”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1·2차 세계대전 패배의 콤플렉스로 고민하는 독일에서 본질적으로 ‘탈영웅적(post-heroic)’ 지도자이다. 다른 지도자들이 웅변가로 발돋움하려 했다면, 메르켈은 독일인들을 진정시키고 과거사 논란을 망각하게 만들려 하였다.… 각국 언론들은 메르켈을 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반면에 메르켈의 동료들은 독일의 격언대로 ‘중간에서 지도한다(leading from the center)’고 본다. 메르켈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는 자신의 강력한 의견이 없다. 보수당 내부에서는 메르켈이 보수적이지 않으며, 비루한 ‘사회민주화’를 이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덕분에 메르켈은 16년 집권기간 중 12년 동안을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다. 결국 메르켈은 모두가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가진 평이한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대립을 배제하는 메르켈의 중도노선은 정당 간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특히 반대파 유권자들이 비대칭적으로 많이 투표에 불참하게 되었다. 이를 ‘비대칭적 동원해제(asymmetrical demobilization)’라고도 부른다. 포퓰리즘은 독일 정치의 특징은 아니지만 메르켈이 역설적으로 포퓰리즘의 산파역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3년 외국인 혐오 포퓰리스트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등장한 것도 메르켈의 중도전략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AfD는 2017년 11%의 득표로 연방의회에 들어갔다.
   
   
   메르켈의 단점은 뭔가를 하지 않은 것
   
   2015년 독일에서는 메르켈의 이름에 독일어의 동사어미인 ‘n’을 붙인 ‘메르켈른(merkeln)’이 독일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단어로 기록되었다. 독일어 연구기관인 ‘랑엔샤이트(Langenscheidt)’가 독일 청년들을 상대로 새로운 단어를 선정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메르켈른’은 아름다운 경치를 의미하는 신조어인 ‘어스포른(earthporn)’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걷는 사람이란 뜻으로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smombie)’를 누르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메르켈른’은 우유부단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는 2010년부터 메르켈의 정치행태를 비유하여 나온 ‘메르켈쉬(merkelsch)’라는 수식어에서 파생된 동사이다.
   
   메르켈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제기되는 부분이 개혁을 미뤄왔고 미래 비전이 없다는 점이라고 많은 언론들이 지적한다. 클루트는 “독일의 진정한 개혁은 메르켈이 아니라 전임자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권에서 실시되었다”고 지적한다. “독일 경제는 ‘유럽의 병자’라 불렸지만, 슈뢰더는 노동시장을 자유화하여 고용을 늘리고 저임금 노동을 증가시켰다. 더구나 수출 산업을 중심으로 고용주와 노동조합은 수년간 임금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메르켈은 2005년 이러한 개혁경제를 물려받았다. 슈뢰더의 개혁으로 독일 경제는 장기적으로 고용은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전후의 제1차 경제기적에 이은 ‘제2차 경제기적’이라고 불렀다. 임금억제는 독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로존과 세계경제를 왜곡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독일이 마르크화를 유지했다면 고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로화 통합 덕분에 독일 경제는 평가절하되었다. 그 결과 독일은 경상수지 흑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미국이나 다른 EU 국가들이 이에 분노한 것은 물론이다.
   
   이런 역사를 염두에 두고 클루트는 “개혁되고 회복하는 경제를 물려받은 메르켈이 이제 기운 빠지고 탈진한 나라를 물려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16년간 독일은 중견기업과 가족 소유의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의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성공했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노쇠해가는 이 나라에서 이 기업들이 혁신을 지속하여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번영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세제(稅制)나 복지제도도 개선된 것이 없다. 나토 회원국인 독일의 군대 수준도 형편없다. 디지털혁명에도 뒤처지고 있다. 독일 관리들은 코로나19 환자 관련 보고를 하는데도 여전히 팩스를 사용할 정도다. “비전과 개혁으로만 본다면 메르켈은 실패한 총리”라고 클루트는 단언한다.
   
   아르츠하이머 교수는 메르켈의 가장 큰 잘못은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메르켈의 인기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기후변화, 이민자문제, 여성문제 등에 대해 공격적인 개혁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메르켈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노선을 수정했다”며 “잘못을 계속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기회들을 놓쳤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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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호랑이의 해 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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