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우한 힘내라!’는 메시지를 외벽에 띄운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하지만 롯데는 사드사태 이후 여전히 중국 당국의 표적제재를 당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2월 ‘우한 힘내라!’는 메시지를 외벽에 띄운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하지만 롯데는 사드사태 이후 여전히 중국 당국의 표적제재를 당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는 8월 24일은 한·중 수교 29주년이다. 기념비적인 한·중 수교 30주년을 불과 한 해 앞두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자사 소유의 경북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한 이후 여전히 중국 정부의 부당제재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가 운영하는 호텔, 백화점, 면세점 등은 여전히 중국 최대 OTA(온라인여행사) 사이트인 씨트립(携程)을 비롯해 취나얼(씨트립 계열), 페이주(飛猪), 투니우(途牛) 등 대형 OTA 사이트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사드사태 전만 해도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서울 명동의 롯데호텔을 비롯해 국내 모든 롯데호텔은 중국계 OTA 사이트에서 검색이 차단되고 있다. 이는 롯데호텔의 최고급 브랜드인 시그니엘은 물론 롯데시티호텔, L7 바이 롯데호텔, 롯데리조트 등 모든 롯데 계열 호텔이 동일한 상황이다. 이는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립닷컴 역시 마찬가지다. 씨트립은 중국색을 희석하기 위해서 해외에서는 트립닷컴이란 브랜드를 쓰고 있다.

여전히 부당제재 당하는 롯데

롯데의 해외 호텔들 역시 중국 당국의 표적제재가 여전하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롯데호텔은 해외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해 미국, 러시아, 일본, 베트남 등지에 13개의 해외 호텔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씨트립 등 중국계 OTA들은 해외에 있는 어느 롯데호텔도 노출을 시키지 않거나 별도 예약을 받지 않는다. 자연히 사드사태 이후 롯데호텔의 중국 진출 계획 역시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롯데 측은 재중동포(조선족 동포)가 많은 랴오닝성 선양(瀋陽)을 비롯해 쓰촨성 청두, 산둥성 옌타이 등지에 롯데호텔을 개설하려고 했지만 사드사태 이후 중국 당국의 전방위 압박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사업재개 일정조차 못 잡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2014년 FTA(자유무역협정)까지 체결한 중국 정부의 부당제재가 사드사태 이후 수년째 계속되는데도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등 실효성 있는 항의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호텔롯데 커뮤니케이션팀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해외 관광객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현재는 국내 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중국 현지 호텔 계획도 취소라기보다는 답보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한·중 교역도 2018년 이후 하락세

2016년 사드사태 이후 수년째 계속되는 한국 기업의 피해는 이뿐만 아니다. 기업 간 거래가 위축되면서 한·중 간 교역량 역시 지난 2018년 2685억달러(약 315조원)로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하락세다. 2019년 2434억달러, 2020년에는 2413억달러로 내리막길이다.

한·중 간 교역량이 줄어드는 주된 까닭은 대중수출의 부진 때문이다. 2016년 사드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대중수입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2016년 869억달러에 달했던 대중수입액은 매년 조금씩 상승해 지난해 1088억달러까지 늘었다. 반면 대중수출액은 지난 2018년 1621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래 2019년 1362억달러, 2020년 1325억달러로 줄어들었다. 한·중 간 교역확대를 위해 농어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2014년 체결한 한·중 FTA의 성과가 기대 이하인 셈이다.

한국 기업이 생산한 주력 제품의 중국 시장 점유율 역시 사드사태 이후 현저하게 하락한 뒤 좀처럼 회복을 못 하고 있다. 한때 중국 시장 3위였던 현대차그룹의 경우 올 상반기 현대차는 중국에서 19만3000여대, 기아는 7만7000여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와 기아의 올 상반기 중국 자동차 시장 순위는 각각 15위와 30위에 그치고 있다. 도요타(82만여대), 혼다(75만여대), 닛산(50만여대) 등 일본 완성차 3사가 모두 5위권 내에 포진하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차의 올 상반기 판매실적은 중국에서 훨씬 고가에 팔리는 BMW(35만여대)나 벤츠(33만여대)보다 못한 성적이다. 특히 1997년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빨리 장쑤성 옌청에 생산공장을 설립하며 중국 시장에 뛰어든 기아는 순위가 추가 하락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염려해야 할 판이다.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도 사실상 의미 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9%로 애플(15%)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으로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38%의 점유율로 중국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화웨이(華爲) 사태로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반면 애플은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의 파상공세에도 시장점유율 11.1%를 유지하며 5위권을 지켰다.

유통·서비스 기업들의 성적표는 더욱 처참하다. 1997년 국내 유통기업 최초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이마트가 사드사태 직후인 2017년 중국에서 철수한 이래, 2018년 롯데마트도 중국에서 사업을 접었다. 롯데백화점 역시 베이징 왕푸징에서 중국 기업과 합작 운영했던 베이징점을 일찍이 폐점한 데 이어, 사드사태 와중에 톈진, 웨이하이, 선양 등 청두점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았다. 한때 중국 홈쇼핑 시장 1위를 했던 CJ그룹의 ‘동방CJ(상하이)’를 비롯 ‘남방CJ(광저우)’ ‘천천(天天)CJ(톈진)’ 등 홈쇼핑 채널들도 사드사태 직후 모두 지분을 정리하고 중국을 떠났다.

카카오의 메신저서비스 카카오톡 역시 사드사태를 전후로 중국에서 수시로 불통되기 일쑤다. 카톡과 연동되는 다음 한메일을 비롯해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등의 국내 인터넷 서비스도 수시로 차단된다. 중국 현지 교민들은 중국에서 엄연히 불법인 VPN(가상사설망)을 설치해 중국 정부가 구축한 ‘만리방화벽’을 우회하거나 값비싼 데이터 로밍서비스를 이용하는 식으로 국내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 중이다. 카카오의 한 관계자는 “우리 서비스 문제가 아니라 중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추정돼서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직후부터는 우리 국적항공사들도 중국 국영항공사에 비해 노골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중국 당국이 자국 하늘길에 취항할 항공사를 ‘1사 1노선’으로 제한하면서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상하이 같은 황금노선은 중국국제항공, 중국동방항공 등 자국 국영항공사에 배정하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우리 국적 항공사에는 톈진, 광저우, 선양, 다롄, 난징 등 지방노선만 배정한 상태다.

우리 교민들의 왕래와 좌석난 해소를 위해 한·중 간 항공노선 증설이 시급하지만 지난해 9월 칭다오, 정저우 등 부정기편 증설 직후 아직 소식이 없다. 국토교통부 국제항공과의 한 관계자는 “1사 1노선 정책은 국가별로 중대한 상황이 있을 때 그 범위 안에서 조정할 수 있는 조치로 우리도 인천공항으로 입국을 일원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현재 중국과 한국 각각 주 20회씩 다니고 있는데, 중국에서도 델타 변이로 방역을 강화하는 있는 상태라서 한·중 간 항공노선 증설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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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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