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여러 해 동안 실시된 미국 내 여론조사는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대한 미국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파병 미군의 철수를 바라는 열망을 보여줬다. 지난해 9월, 대통령 자리를 두고 다투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전쟁의 종결에 뜻을 함께했다. 당시 AP통신의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10명 중 6명이 아프간에서의 철군, 아니면 병력이라도 감축하자는 의견에 지지를 보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도 마찬가지다. 2019년 7월 조사를 보면 일반 미국인, 그리고 참전용사 모두 10명 중 6명 정도가 아프간전쟁을 “싸울 가치가 없는 전쟁”이라고 답했다.

이런 여론의 흐름을 봤을 때 자신에게 지금 쏟아지는 혹평에 바이든 대통령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바이든은 20년 동안 2조달러 이상의 비용을 투입했고 2448명의 미군이 사망한 기나긴 전쟁을 끝내길 바랐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긴 그림자에서 벗어나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카불공항에서 벌어지는 대혼란과 폭탄테러를 지켜보던 여론은 반대로 움직였다. 지난 8월 29일(현지시각) CNN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평균 지지율은 47%다. 50% 중반대에서 박스권을 형성했던 지지율이 탈레반의 등장과 함께 10%가량 빠진 셈이다.

바이든의 일관된 ‘아프간 회의론’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징후는 보수성향 뉴스사이트들의 활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점거 이후 이들 사이트들의 트래픽은 쇠퇴했지만, 아프간이 뉴스의 사이클을 장악한 8월 중순 이후 증가세를 보인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Axios)는 “20곳의 보수성향 웹사이트들의 트래픽이 평균 4.2% 늘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인플레이션에 관한 이야기보다 보수언론의 아프간에 관한 소식이 2배 이상 더 많으며 폭스뉴스의 TV 시청률은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으로 다른 방송사들을 모두 제쳤다”고 전했다.

2020년 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프간전쟁을 종결하는 게 선거에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고 탈레반과 철수에 동의하는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의 유산을 그대로 인수했다. 미국 언론들은 계승의 근거를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 회의론, 다른 하나는 그가 추구하려는 외교정책의 대전환이다.

주(駐)아프간 미국대사관이 탈레반 퇴각 이후 재개관한 2002년 1월, 당시 대사였던 라이언 크로커는 “카불에 있던 나를 처음 방문한 의원이 당시 델라웨어 출신인 조 바이든 상원의원이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시 의원은 2002년 아프간의 수도 카불로 날아가 미국의 지원으로 문을 연 여자 초등학교 행사에 참석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크로커는 “그는 아프간뿐만 아니라 이라크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직접 상황을 봐야 한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부통령이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치는 부분이 어디냐”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외교 전선에서 바이든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곳은 아프간을 둘러싼 논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오바마는 당선인 신분이었던 2008년 1월, 취임 일주일을 앞두고 당시 러닝메이트이자 부통령 당선인이었던 바이든을 아프간에 보내 새 정부가 물려받아야 할 전쟁 상황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후 바이든은 백악관 내에서 전쟁 비관론자로 활동하며 아프간에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했다.

2009년 8월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 사령관의 추가 파병 요청을 받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두 달여 동안 백악관 핵심 인사들과 아프간전쟁 전략의 재검토를 두고 공식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는 두 진영으로 갈렸다. 당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파병에 찬성했지만, 바이든은 파병보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지도자들을 선별 제거하는 전략을 주장했다. 미국의 개입을 확대하는 걸 막아선 셈이다. 바이든의 전직 정책고문은 온라인매체 ‘더컨버세이션’과의 익명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적어도 2008년부터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나쁜 일을 겪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최근 몇 주 동안, 바이든은 보좌진들에게 10여년 전 미국의 개입을 확대하자는 것에 반대했던 일이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아프간 철수가 충격적일 수는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일관된 회의론을 고려한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란 얘기다.

또 다른 하나는 전면적인 정책 재설정이다. 단호히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트는 ‘재설정’ 버튼을 눌렀다. 아프간전쟁의 고삐를 당긴 9·11테러가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년 전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한다. 그가 그린 ‘포스트 9·11’은 폭력적인 일부 집단에 집중하기보다 넓은 영역의 국제관계에서 실추된 미국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그림이다. 그 역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세웠던 게 ‘미국 우선주의’였다. 다만 다른 나라의 체제 전환을 시도하는 외교는 폐기하되 미국의 핵심 이익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그것과는 달랐다.

“미국의 잔인한 재집중 전략”

아프간 철군으로 미국 전역이 들썩일 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아시아에 있었다는 점은 전환의 포인트를 짐작하게 한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격하던 시점, 해리스 부통령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을 방문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불법”이라며 날을 세웠다.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릿 소장은 “아프간에서 미국이 벗어나는 게 유럽과 아시아 등 미국의 핵심 동맹과 한 약속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잔인하게 재집중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31일(현지시각) 카불공항에서 미군 철수가 완료된 뒤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연설을 위해 연단에 섰다. “미 대통령의 기본적인 의무는 2001년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과 미래의 위협에서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미국을 이끌어온 외교정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우리는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번 철수를 두고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미 브라운대 전쟁비용프로젝트(Costs of War Project)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9·11 테러 이후 2022년 말까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에서 5조8000억달러의 비용을 지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돈은 대부분 차입으로 조달했기 때문에 이자 부담 등이 생긴다. 게다가 2050년까지 참전용사들을 위한 의료보험으로 지출되는 비용도 2조2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많은 전쟁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멍청한 선택을 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바이든 정부는 옳은 선택이라고 국민을 설득하지만 변수에 따라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프간이 다시 테러의 안식처가 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알 카에다의 부활이나 IS의 위협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이 민주당을 몰아붙일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미 국가 기능을 상실한 아프간이 지금보다 더욱 심한 무정부 상태로 전락하는 건 최악의 경우다. 대규모 난민이 생기고 이들이 아프간을 떠나 중앙아시아 주변국들, 나아가 내전에서 탈출한 시리아인들처럼 유럽 내 혼란을 가져온다면 그것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떠안아야 한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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