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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6호]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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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앤 뷰]메르켈 16년의 최대 치적은 ‘빠시즘’ 퇴출!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 twkim1127@gmail.com

▲ 지난 9월 22일 기민당(CDU) 대회에 참석한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9월 26일 치러지는 독일 총선거 결과가 나오면 현 메르켈 총리는 16년 권좌에서 물러난다. 이례적인 장수 총리의 퇴임을 지켜보는 독일에서는 메르켈 16년이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 정치가 메르켈 이후와 이전으로 나뉜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도정치로 새 정치문화 패러다임을 개척해 성공할 수 있었다.”
   
   독일 에센(Essen)대 칼루돌프 코르테 교수(정치학)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 16년을 평가한 말이다. 그는 “중도가 가장 진보적이고 확장성이 있어 국민 70%까지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메르켈 16년의 최대 치적은 바로 정치적 중도층을 확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안정된 개혁 정치를 이뤘다는 점이다.
   
   스위스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 등 유럽의 많은 언론·전문가들은 메르켈 집권기를 ‘황금시대(goldene Zeit)’라고 부른다. 실제 유엔(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주관한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독일은 G7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SDSN은 6개 기준, 즉 개인소득(GDP·국내총생산), 기대수명, 사회적 연대, 개인 자유, 후원, 부정부패로 149개국을 평가해 ‘개인이 돈이 있고, 건강하며, 자유롭게 더불어 사는 인심 좋은 사회이자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의 순위를 가려낸다. 보통 핀란드, 스위스 등 유럽의 강소국들이 선두권을 휩쓰는데 한국은 이번 조사에서 50위에 머물렀다.
   
   메르켈은 2005년 재선의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꺾고 ‘최초 여성·동독·과학자 출신’ 등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여덟 번째 독일 총리에 취임했다. 당시 독일은 ‘유럽환자’로 조롱받았지만 메르켈 집권이 끝나는 2021년 현재는 유럽 최강국으로 재도약했다. 국가GDP는 물론 개인소득도 5만달러에 육박해 지난 16년간 130% 성장했다. 실업률도 세계 최저수준인 3%로 거의 완전고용 상태다. 출산율(1.57명)도 크게 올랐고, 여성 의원 30%, 기업의 여성 임원 30% 의무화 등으로 성평등 사회로 가고 있다. 정치 리더의 제일 중요한 덕목이 실적이라면 메르켈이 이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최근 독일 공영방송 ARD 여론조사에서도 퇴임 직전 메르켈의 지지도는 75%로 나타났다.
   
   
   메르켈 정부의 세 가지 원동력
   
   메르켈은 어떻게 이런 실적을 만들어냈고 원동력은 무엇일까? 독일의 정치평론가들은 크게 ‘중도정치’와 ‘깨끗한 문화’ ‘끊임없는 공부’ 세 가지를 꼽는다. 이 중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중도정치’는 건국의 주역 콘라트 아데나워, 데탕트와 통일의 씨앗을 뿌린 빌리 브란트, 통일 과실을 딴 헬무트 콜 총리 등 전임 리더들과는 또 다른 그만의 방식으로 성공한 리더십의 요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메르켈이 집권을 시작한 2005년, 독일은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서독인은 동독인을 게으른 ‘오씨’로, 동독인은 서독인을 거만한 ‘웨씨’로 서로 비하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 구동독 출신이자 여성인 메르켈은 ‘카리스마가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약점인 ‘무티(엄마)’의 리더십을 최대 장점이자 무기로 만들었다. 무티 리더십의 기반이 된 것이 새 정치문화 패러다임의 창조, 즉 중도정치의 강화였다.
   
   독일은 양극단 정치의 최악을 경험한 나라다. 가장 오른쪽인 나치즘과 가장 왼쪽인 공산주의를 모두 경험했다. 극단의 포퓰리즘 및 패거리 정치가 폭력과 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패전 후 독일은 분단국가였지만 점진적으로 탈이념·탈진영 정치를 추구했다. 1966년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꾸려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유산 덕분에 독일에는 우리처럼 친노, 친이, 친박, 친문 같은 용어 자체가 없다. 이런 기반 위에서 메르켈은 중도정치의 꽃을 피웠다.
   
   동서양의 위대한 현인들은 예전부터 중도정치가 합리적이고 선진적이라고 평가해왔다. 무려 2000년 전에 중국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중용’에서,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말한 내용이다. 코르테 교수처럼 현대 민주국가에서도 중도정치가 ‘더 진보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빠’시즘과 달리 중도는 잘하면 밀어주고 못하면 심판하는 스윙보터들이기 때문에 더 진보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메르켈은 16년 재임 기간 이른바 ‘코끼리 결혼식’을 세 번이나 치렀다.
   
   중도우파인 기민·기사연합(CDU· CSU)과 중도좌파인 사민당(SPD)과의 대연정을 이뤄내 12년간 명실상부한 중도정치의 꽃을 피웠다. 우리와 비교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공동정부를 세 번이나 구성한 셈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으나 실패했던 이런 대연정을 통해 독일은 사민당이 주도한 모병제와 녹색당이 주도한 ‘탈핵’이 관철되었다.
   
   메르켈 정치의 두 번째 성공 요인인 ‘깨끗한(클린) 리더십’은 패거리보다 국가·국민을 챙기는 정치를 말한다. “콜 총리는 기민당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이제 콜 시대를 끝내고 미래로 전진하자.” 1999년 기민당 사무총장 시절 ‘정치적 대부’인 콜 전 총리와 기민당이 정치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이자 메르켈은 고급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이 같은 내용의 칼럼을 기고해 큰 파란을 일으켰다. 자신을 여성부·환경부 장관으로 발탁한 콜을 비판하며 ‘친부 살인자’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메르켈은 단호하게 기민당 혁신을 주장해 서독 출신 남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여성으로 첫 보수정당 대표에 올랐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있었다.
   
   한국과 독일 정치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제왕적 대통령들의 부정부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은 건국의 주역 아데나워부터 브란트를 거쳐 메르켈에 이르기까지 8명의 총리 중 단 한 명도 자녀 및 친인척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다. 필자가 만난 여러 독일 정치인은 ‘총리의 클린 리더십’ 비결을 물으면 “(나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삶에 대한 성찰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이른바 패거리를 챙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근혜 정권 당시 벌어졌던 최순실 사건이 대표적이다.
   
   
   메르켈 리더십이 남긴 것
   
   메르켈은 이런 클린 리더십도 한 수준 더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세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집권 기간 내내 이전부터 살던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면서 주말에는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장을 봤고 직접 요리도 했다. 아파트 전기세·수도세 등을 자신과 남편(대학 교수)이 나누어 내기도 했다. 이런 독일에선 권위주의의 유산인 우리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 같은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위대한 아데나워 총리를 기념하는 재단조차 국고 지원을 받지 않고 지지자들의 성금으로 운영된다. 전 대통령 사저나 기념관에 수백억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공부하는 리더십’도 메르켈을 만든 요인이다. 메르켈은 집권 기간 매주 국내외 저명학자나 전문가를 초빙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파나 나라를 따지지 않고 독일의 ‘혁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면 가리지 않고 만났다. 공영방송에 출연해 직접 사회를 보면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매주 원고 없이 장시간 기자회견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바이온텍(BioNTech)의 지몬 코르퍼스트 박사 등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베를린훔볼트대 헤어프리트 뮌클러 교수(정치학)는 사민당원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치사를 메르켈에게 개인 과외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물론 메르켈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있다. 에센대 코르케 교수는 “메르켈은 신념윤리를 앞세워 과도하게 난민을 받아 부작용으로 극우정치가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구 동독 지역에 강세를 보이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목사의 딸인 메르켈은 2015년 인도적 차원에서 중동 난민 100만명을 받아들였다. 자유베를린대 김상국 교수(정치학)도 “메르켈에게는 큰 비전이나 국가 미래를 제시하는 큰 그림이 없다”면서 “중도정치에 치우쳐 기민당이 분열되는 근원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장기집권으로 후계자 양성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9월 26일 선거를 앞두고 독일은 중도의 정치 유지(기민당+녹색당+자민당) 혹은 중도 좌파 연정(사민당+녹색당+자민당)으로 옮겨갈 조짐이다. 후자의 경우 메르켈의 중도정치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메르켈의 리더십에서 얻어야 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이제 수명을 다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독일식 총리민주주의로 바꾸는 개헌을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부정부패·패거리 정치를 끝장내고 전체 국민을 먼저 챙기는 정치로, 증오·모멸에서 대화·통합의 시대로 가자는 것이다. 미래의 주역인 청년 일자리, 자살, 성평등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번영의 시대로 가기 위함이다.
   
   실제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의 향후 5년은 대한민국을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갤럽 등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중도층(32%)도 늘어나고 있다. 20~30대에서 중도층 비율은 50%에 이른다. 반면 여야 유력 대선후보 지지율은 아직 20% 중반이다. 이는 우리도 선진 정치문화로 가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메르켈이 이끈 중도정치 16년을 결산하면서 이번 우리 대선이 ‘제7공화국’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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