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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7호]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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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젊은 정치인들이 이끈 디지털 에스토니아

탈린= 이보영  자유기고가 

▲ 에스토니아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왼쪽)과 카야 칼라스 총리. 에스토니아는 대통령과 총리가 여성인 유일한 나라다. photo 뉴시스
1980년대 한국이 싱가포르, 대만,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는 아일랜드가 급성장하는 경제로 ‘켈트의 호랑이’로 불렸다. 요즘 이 호랑이는 서식지를 발트해로 옮긴 것 같다. 이제는 세계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 에스토니아가 ‘발트해의 호랑이’로 불린다.
   
   인구 130만명에 국토도 남한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 나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불과 30년 만에 에스토니아는 단순한 ‘소국’이 아닌 ‘강소국’이 됐다. 지역도 ‘발트 3국’보다 북유럽 국가로 구분되는 경우가 이제는 더 많다.
   
   필자가 2004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지금과 사정이 많이 달랐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무너진 건물이 즐비했고, 공산주의가 훑고 간 잔영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후 매년 방문할 때마다 현대식 빌딩이 들어서며 스카이라인이 높아지더니 경제 수치도 같이 빠른 속도로 높아져 갔다. 에스토니아는 구소련에서 독립한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발전한 국가로 꼽힌다. 이런 성공 신화 뒤에는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핀란드라는 ‘능력 있고 선한’ 이웃을 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원래 이웃 나라는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예외적으로 좋은 편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에스토니아가 인간 띠를 만들고 ‘노래 혁명’을 벌이며 독립에 애쓰던 시절, 핀란드 사람들은 음으로 양으로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지원하고 지지해주었다.
   
   그보다 훨씬 전인 2차 세계대전 중 아름다운 중세도시 탈린이 소련군의 폭격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도 핀란드 공군의 도움이었다. 안개 낀 디데이(D-day) 어느 날, 핀란드 전투기는 소련 폭격기로 위장하고 탈린을 폭격하려는 소련 폭격기를 모두 전멸시켰다는 무용담도 전해진다.
   
   두 나라는 민족, 언어(핀우랄어족), 건국신화, 심지어 국가까지 유사하다. 독립 직후, 에스토니아는 핀란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던지 핀란드 국가의 가사만 바꿔 자신들의 국가로 삼았다. 핀란드 사람들이 관대한 마음으로 국가를 공유한 덕에 얻게 된 이익도 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에스토니아 팀이 여자 펜싱 단체전에서 핀란드를 누르고 금메달을 딴 덕에 핀란드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못 땄지만 그들의 국가를 거의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독립 후 핀란드의 뒤를 쫓아다니는 듯했던 에스토니아가 요즘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여 핀란드를 추격할 기세다. 가장 최근의 PISA 국제학업성취도 테스트에서도 에스토니아는 교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핀란드를 누르고 유럽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야경. photo Tallinn City web VisitTallinn

   형제 같은 핀란드와 엇갈린 운명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최근의 눈부신 약진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중세시대, 탈린은 한자동맹(중세기에 북독일 상업도시가 무역의 독점과 보호를 목적으로 맺은 도시 연합체로 북해·발트해 연안까지 상업권을 넓혔고 14세기 후반에 최전성기를 맞이함)의 중심지였다. 무역의 요충지로 많은 강대국(덴마크·독일·스웨덴·러시아)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지만, 나름 많은 부를 축적했고 뛰어난 문화도 꽃피웠다. 그런 발자취는 지금도 탈린 구도시(1997년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에 그대로 남아 있다.
   
   16세기 말, 탈린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높이가 123.8m나 되는 ‘성 올라프 교회(St. Olaf`s church)’가 당시 세계의 마천루였다. 탈린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 교회 첨탑 전망대에 올라가볼 것을 권한다. 258개 계단을 밟아 전망대에 이르면 아름다운 구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 외에도 한자동맹 전성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탈린성과 시청 광장, 사랑의 묘약까지 팔았다는 15세기 초에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현재도 운영 중) 등, 탈린 구시가지에 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유럽 중세시대 역에 내린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은 헬싱키가 탈린보다 더 많이 알려졌지만, 헬싱키란 도시가 처음 세워진 이유도 당시 잘나가는 탈린 때문이었다. 16세기 핀란드를 지배했던 스웨덴 국왕은 탈린처럼 번성한 무역항을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탈린과 마주 보고 있던 헬싱키에 항구도시를 건설하게 되지만 헬싱키는 탈린만큼 성공적인 무역항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15년 전 처음 에스토니아를 방문했을 때 당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000달러를 넘지 못하는 빈국임에도 사람들의 표정(특히 노인층)에서 뭔가 ‘배운 자’에게서 나오는 기품과 문화적 소양이 느껴졌다. 오히려 자국에서는 조용하던 핀란드 사람들이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들을 보는 에스토니아인들의 시선은 마치 졸부 동생이 형네 집에 와서 자랑하는 것을 지켜보는 듯했다.
   
   형제 같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갈리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에스토니아가 소련연방에 편입돼 많은 사람이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잔인한 고문과 무차별 처형에 시달릴 때, 다행히 독립국가를 유지했던 핀란드는 자유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최고의 스피드로 질주하기 시작한 원조 ‘큰형님’ 에스토니아가 머지않아 핀란드와 서열을 정비하자고 할 날이 올 것 같다.
   
   
   1992년부터 코딩 교육
   
   ‘북유럽의 실리콘밸리’ ‘e-에스토니아’ 등으로도 불리는 에스토니아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 국제 전화 서비스 ‘스카이프(Skype)’, 국제송금업체 ‘와이즈(Wise·구 트랜스퍼와이즈)’, 10대가 창업해 화제가 됐던 우버의 새로운 경쟁자 ‘볼트(Bolt)’ 등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들이 꽤 있다. 에스토니아는 현재 7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해 인구 1인당 가장 많은 유니콘기업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사기업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 정부도 디지털 분야에서 2000년대 이래 세계 최초와 최고를 거의 독점 중이다. 요즘 한창 떠드는 코딩(coding) 교육을 1992년부터 벌써 시작했으며, 2000년에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권을 기본 인권에 포함시키고 전국을 무료 와이파이존으로 만들었다. 2002년 전자신분증 도입, 2005년 세계 최초 전자투표 실시는 서막에 불과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만든 전자영주권(e-Residency) 제도는 에스토니아 경제를 한 단계 격상시키고 국력을 상승시키는 효자 제도가 됐다. 이 제도를 활용해서 누구나 에스토니아 정부가 운영하는 ‘e-estonia.com’에 접속해 120유로(약 165만원)만 내고 전자영주권을 신청하면 각국에 주재하는 에스토니아대사관에서 전자영주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영주권을 받으면 원격으로 에스토니아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고 기업도 만들 수 있다. 현재 모두 170개국에서 약 8만명이 전자영주권을 발급받았으며, 사업자 등록을 한 기업 수도 1만8000개나 된다. 브렉시트 후 EU에 다시 발판을 마련하려는 영국 회사들이 이 전자영주권을 많이 신청했다고 한다. 이 제도의 성공을 발판으로 에스토니아의 1인당 스타트업 수는 세계 최고(인구 100만명당 스타트업 865개)로 치솟았고 탈린은 스타트업 성지로 등극했다.
   
   코로나19로 한창 시끄럽던 작년, 에스토니아 정부는 시의에 맞춰 세계 최초 ‘건수’를 또 하나 터트린다. 바로 글로벌 재택 근무자들을 위한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다. 이 비자를 발급받으면 에스토니아에서 원격으로 일하며 1년간 장기체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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