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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8호] 2021.10.11

좌파-중도파 전쟁에 발목 잡힌 바이든 복지

▲ 지난 10월 1일 국회의사당을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완료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국내적으로 상당한 비판에 직면했다. 바이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철군 결정이 알 카에다 같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재건의 기회를 줄 위험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0월에 들어서는 이러한 비판이 가라앉기도 전에 미국 내 인프라·사회복지 예산안 처리가 불발되면서 바이든과 민주당을 또 괴롭히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 예산과 관련, 민주당 내 중도파와 좌파 의원들 간의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미국 재건 프로젝트가 좌초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 지난 대선에서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더 나은 국가 재건(Building Back Better)’ 프로젝트는 인프라 건설, 기후변화 대처, 각종 사회보장 확대 등에 7조달러를 투자하는 계획이다. 이에 드는 비용은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의 증세 및 사회보장 지출은 미국의 재정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바이든은 앞서의 공약대로 인프라 건설에 대한 투자 및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비용 마련을 추진해왔다.
   
   
   3조5000억 사회복지 예산안 충돌
   
   도로·교량 건설 및 인터넷 확충 같은 인프라에 투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동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프라에 1조달러의 예산을 투자하는 데는 초당적인 합의가 성사되었다. 상원에서 민주당 의원 전원과 공화당 의원 10명이 이미 찬성한 상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10월 1일 하원에서 이를 표결에 부쳐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그런데 바이든은 1조달러짜리 인프라 예산안과 함께 버니 샌더스 상원예산위원장이 제출한 3조5000억달러의 사회복지 예산안도 통과시켜 백악관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사회복지 예산의 규모를 놓고 민주당 내에서 중도파와 좌파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초당적으로 합의한 인프라 예산안까지도 통과가 연기되었다. 이에 따라 펠로시 의장은 인프라 예산안의 하원 표결을 일단 10월 31일로 연기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예산위원장이 작성한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에는 바이든이 대선후보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인들의 치과·시력·청력 무상진료, 유치원교육 및 재활교육 무상지원, 기후변화 및 클린 에너지 정책 관련 예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드는 비용은 기업이나 연간 소득이 40만달러가 넘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바이든은 일반 미국인은 증세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정부의 지출 증가는 국가부채를 늘려 인플레이션을 촉발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하원에서는 간발의 우위를 점한 다수당이고, 상원에서는 절반인 50석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이 반대해도 상원의장을 겸직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로 이 예산안은 통과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의 대표적 중도파인 조 맨친 의원(웨스트 버지니아주)과 커스텐 시네마 의원(애리조나주) 등이 국가 재정부담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상원 통과가 어렵다.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의 반대로 3조5000억달러의 사회복지 예산안 통과가 어렵게 되자 민주당 좌파 의원들은 인프라 예산안과 사회복지 예산안의 통과를 패키지로 묶었다. 3조5000억달러의 복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조달러짜리 인프라 예산안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펠로시 하원의장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10월 1일로 예정되었던 인프라 예산안 표결을 10월 31일로 연기한 것이다. 바이든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사회복지 예산안 역시 표결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중도파인 조 맨친 상원의원은 지난 10월 1일, 사회복지예산안을 1조5000억달러로 삭감하라고 주장하며 신속한 타협을 촉구했다. 커스텐 시네마 상원의원은 당내 좌파 의원들을 향해 초당적인 인프라 투자법안 표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크게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선의의 협상’을 위한 신뢰를 손상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좌파 의원들은 사회복지 예산이 3조5000억달러보다 줄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자세이다. 이들은 당초 복지 예산을 5조~6조달러가량 편성할 것을 요구했었다.
   
   민주당 내 중도파와 좌파 의원들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대립하며 당내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자 화살은 결국 바이든으로 향하게 되었다. NBC 방송의 코미디프로그램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는 지난 10월 2일 오랜만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신 바이든을 등장시켜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민주당의 사회복지 예산안 처리 실패 등을 조롱했다. 바이든으로 분장한 코미디언은 “지난 여름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지난 여름 동안 계단에서 한 차례도 넘어지지 않고 잘 보냈다”고 답했다. 또 조 맨친 의원이 사회복지 예산안 통과가 급하지 않다고 한 데 대해 바이든으로 분장한 코미디언이 “시급성에 대해 다른 상원의원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실상의 미국 대통령”이라고 조롱했다. 바이든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자 백악관의 존 사키 대변인은 지난 10월 1일 바이든이 두 중도파 상원의원 등 민주당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 수일간 개인적인 대화를 진행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 민주당의 대표적 중도파인 조 맨친 상원의원과 커스텐 시네마 상원의원(오른쪽). photo 뉴시스

   바이든, 민주당 설득 작전
   
   폴리티코에 따르면 바이든은 민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이 사람들아, 내가 이놈의 법안(this damm bill)을 손수 작성했다. 이보다 온건한 내용이라도 보육원, 유치원 그리고 클린 에너지 등에 대한 역사적인 투자를 제공할 수 있다. 젠장, 할 수 있단 말이다! (Damn it can be done!)”라고 역정을 내며 사회복지 예산안 통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바이든은 인프라 투자 예산안 통과가 불발된 지난 10월 1일 직접 의사당에 가서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는 불만을 가진 민주당 의원들에게 확장 예산 중 사회안전망 확충에 필요한 예산을 1조9000억달러에서 2조3000억달러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상원예산위원장인 민주당 좌파 버니 샌더스 의원도 3조5000억달러는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타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상원 서열 2위인 리처드 더빈 의원도 3조5000억달러를 지지하지만 “양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좌파를 대변하는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은 지난 10월 3일 “맨친 의원의 1조5000억달러는 너무 적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3조5000억달러를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맨친 의원이 연방정부 예산으로 낙태 비용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하이드법 수정안을 지지하면서 좌파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고 CNN은 보도했다.
   
   바이든은 다음날인 10월 2일 주말을 보내기 위해 고향인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기 직전에도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 처리가 불발된 데 대해 “모든 사람이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내 중도파와 좌파 등 두 세력이 자신의 어젠다를 받아들이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겠다(work like hell)”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현실주의자(realist)이다. 나는 수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입법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바이든은 또 “앞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예산안에 들어 있는 새롭고 확대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대중들에게 설명하겠다”며 유권자 절대다수는 이를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나는 미국 국민들이 구매하는 것을 팔려고 한다”며 “미국인들이 법안에 담긴 내용을 알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정부지출과 증세 문제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사회복지 예산안은 물론 이와 관련한 증세 및 국가채무한도 상향조정안에도 반대한다. 현재 백악관과 민주당은 국가채무한도를 늘려 디폴트 위기를 피하려 하는데 여기에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10월 18일까지 이 조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국가채무한도 상향조정안은 하원에서는 통과되었지만,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초당적인 통과에는 반대하며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라고 버티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지난 10월 2일 “공화당이 부채한도를 늘리는 데 반대할 정도로 무책임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전에도 이런 적은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우려했다.
   
   공화당은 사회복지 예산 편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내홍을 느긋하게 즐기는 듯한 자세이다. 트럼프의 경제보좌관이었던 스테판 무어는 지난 10월 3일 민주당은 3조5000억달러 예산안을 놓고서도 통합할 능력이 없음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폭스와의 회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자기들끼리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그들은 온건파 상원의원인 커스텐 시네마와 조 맨친에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다.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3조5000억달러의 부채 폭탄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상원의 척 슈머 원내대표와 조 맨친 의원이 사회복지 예산안을 1조5000억달러가 넘지 않게 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 맨친이 합의서를 고집한다면 리버럴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은 미국을 변화시키겠다(transform)고 말하고 있는데, 그 변화라는 것이 규모 면에서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 민주당의 대표적 좌파인 버니 샌더스 상원예산위원장이 지난 9월 30일 국회의사당에서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상원예산위원장인 그는 바이든의 대선 공약이 담긴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을 작성했다. photo 뉴시스

   공화당 “바이든, 민주당 좌파에 굴복했다”
   
   공화당 전략가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지난 10월 4일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좌파 후보들을 패퇴시켰던 바이든이 좌파에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ABC와의 회견에서 “2020년의 조 바이든은 사망했다. 그가 의사당에 간 10월 1일, 2020년의 조 바이든은 공식적으로 사망해 매장되었다.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진보주의자들에 대항하던 바이든은 나라를 통합시키고 타협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사당에 가서는 민주당 내 진보주의자들에게 굴복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의 비판은 바이든이 이날 의사당에 가서 자타가 공인하는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의원이 제출한 3조5000억달러짜리 사회복지 예산안에 민주당 내 중도파 의원들이 반대하자 “실망했다”고 답한 데 대한 평가라고 뉴스맥스는 보도했다. 크리스티는 ‘적군이 자살하고 있을 때는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민주당 내부 분열로 대규모 지출안이 사장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공화당이 반대할 필요조차 사라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지난 10월 3일 민주당의 대규모 지출안이 통과되면 미국을 “사회주의로 몰아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의 마사 블랙번 상원의원도 “미국 국민들은 바이든과 민주당이 사회주의를 제도화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말했다. 블랙번 의원은 “그들은 한 차례의 투표로 나라를 가로채려 한다. 그들은 당신들의 아이들을 정부가 통제하도록 하려 한다. 그들은 600달러 이상의 모든 거래를 정부가 들여다보도록 하려 한다.… 그들은 건강보험의 정부 통제, 군대의 사기 저하, 교회 폐쇄, 미국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파괴를 원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낮이나 밤이나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복지 예산은 바이든과 민주당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미국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조급한 철군 등으로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자 민주당 의원들도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과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선심성 복지라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내용의 국가 재건 공약을 실행시켜 중간선거에 활용하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내 갈등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국가 부채 한도도 늘릴 수 없으며, 자신들이 제안한 인프라 법안조차 통과시킬 수 없다. 고령의 바이든 대통령이 전국순회를 하겠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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