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테 사보이 교수 ⓒphoto tu.berlin
베네딕테 사보이 교수 ⓒphoto tu.berlin

골리앗에 맞선 다윗이라고 할까? 2018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사르 사보이 리포트(Sarr-Savoy Report)’가 딱 그랬다. 식민지 시절 약탈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다룬 제안서였는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교감하에 곧바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 프로젝트의 ‘바이블’로 자리 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뒀던 유럽 다른 나라의 교과서가 된 것은 물론이다.

이 제안서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 뮤지엄을 장식하고 있던 아프리카, 나아가 아시아 문화재의 상당수가 자국으로 반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같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전진한다. 불과 3년 만에 제국주의 식민지 역사관에 맞선 경천동지할 사건이 눈앞에서 실현된 것이다. 토론이나 슬로건 차원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문화재 반환운동이 실현됐기 때문이다.

곧 프랑스를 떠날 아프리카 베냉공화국(Republic of Benin) 문화재 반환이 그 출발점이다. 140여년간 이국에서 떠돌던 아프리카의 혼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21세기까지 드리워진 식민지 역사의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사라진 듯하다.

베네딕테 사보이(Bénédicte Savoy) 교수는 문화재 반환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 ‘사르 사보이 리포트’의 핵심 저자다. 현재 독일 베를린기술대학(www.tu.berlin)에서 유럽문화사를 가르치는 인물로, 2021년 9월 타임(Time)지가 선정한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사보이 교수는 21세기를 ‘약탈 문화재 반환의 시대’라 규정한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발간될 ‘예술을 위한 아프리카의 투쟁(Africa’s Struggle for Its Art)’은 2021년 이후 펼쳐질 문화재 반환의 미래를 전망한 그녀의 명저다.

현재 유럽에서 문화재 반환운동이 어떤 상황까지 와 있는지, 문화재 반환 프로젝트의 원칙과 가치와 방향이 뭔지 사보이 교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인터뷰는 베를린 현지 사보이 교수 연구실로 줌을 연결해 이뤄졌다. 프랑스어가 서툰 탓에 사보이 교수의 동료이기도 한 수잔나(Susanne Meyer-Abich)의 도움으로 이뤄진 영어 인터뷰임을 밝힌다.

지난 11월 9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뒤 오른쪽)과 베냉공화국의 파트리스 탈롱 대통령이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 시절 약탈해간 베냉 문화재 26점을 돌려주기로 한 협약식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fastobserver.com
지난 11월 9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뒤 오른쪽)과 베냉공화국의 파트리스 탈롱 대통령이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 시절 약탈해간 베냉 문화재 26점을 돌려주기로 한 협약식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fastobserver.com

- ‘사르 사보이 리포트’의 성과가 마침내 나타났다고 들었다. “아주 기쁜 두 개의 큰 이벤트가 최근 벌어졌다. 첫째 파리 ‘케브랑리(Quai Branly)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베냉 문화재다. 지난 10월 27일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전시회가 열렸다. 아프리카로 귀환하기 직전 프랑스에서 선보인 최후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제기됐던 ‘프랑스가 약탈 문화재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갖고 있다’라거나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예술품들을 보다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식의 얘기는 사라졌다. 2021년을 기점으로, 프랑스와 아프리카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가 새로운 우호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셈이다. 문화재 반환을 통한 협력체제다. 둘째는 베냉 대통령의 문화재 반환 축하 이벤트다. 프랑스는 식민지 문화재 반환에 나선 전 세계 첫째 국가다. 베냉도 식민지 당시 유럽에 넘어간 자국 문화재를 되찾은 아프리카 첫째 국가로 기록될 것이다. 두 이벤트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관련된 역사는 물론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1세기는 ‘문화재 반환(Restitution)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재가 베냉으로 돌아가는가. “26점에 달하는, 베냉 역사상 아주 중요한 예술품들이다. 2m 높이에 200㎏이 넘는 조형물을 비롯해 과거 베냉 왕조를 상징하는 ‘아부메 보물(Abomey Treasures)’들이 주류다. 1892년 프랑스 군대가 베냉 왕조를 무너뜨릴 때 약탈한 것들로 이후 파리박물관의 아프리카 전시관 핵심 문화재로 자리 잡아왔다. 적당히 선정한 것이 아니라 양국이 중요하다고 믿는 문화재의 반환이다.”

아프리카 예술품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베냉의 유물·유적은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긴 못을 사람 형상의 목재나 석재에 새겨넣는 식의 작품이 유명하다. 20여년 전 자메이카에 갔을 때 동물의 피를 뿌리는 부두(Voodoo) 이벤트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인형에 못을 박는 의식이 하이라이트였다. 베냉의 전통 종교가 부두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자메이카에 유입된 흑인의 상당수는 베냉을 중심으로 한 서부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을 선조로 두고 있다.

- 법적으로 볼 때 수백 년 전의 문제를 모두 ‘약탈(Looted)’이라 규정한 뒤 반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일단 아프리카 현지 국가가 요구하는 반환 문화재 전부가 반환 문화재 대상에 들어간다. 그러나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100% 반환한다는 것은 아니다. 반환 대상과 관련해 과거 상호 합의하에 구입했는지 여부 등을 일단 조사한다. 프랑스인과 현지인의 합의하에 이뤄진 문화재인지 양국이 동시에 살펴본다. 당연히 약탈품은 상호 합의가 있을 수 없다. 19~20세기 때는 폭력을 동반한 제국주의자들의 일방적 약탈이 횡행했다. 약탈된 것이 증명될 경우 반환이 원칙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유럽의 어디에, 어떤, 얼마나 되는 문화재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외부에 전시된 문화재는 전체 소장품의 극히 일부분에 그친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 지휘하에 아프리카 소장품 목록을 만들어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아주 쉽게 어디에 어떤 문화재가 얼마나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다른 나라는 아직 그 같은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나서지 않고 있다.”

-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어떤가. “식민지 당시 약탈된 아프리카 문화재의 거의 대부분은 유럽에 보관·전시돼 있다. 미국·일본은 거의 상관없다. 프랑스·벨기에·독일·영국 4개국이 문화재 약탈 주역들이다. 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에는 거의 없다. 유럽 4개국 가운데 벨기에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영국은 대학 뮤지엄이 협력하고 있다.”

- 프랑스·벨기에·독일·영국 등 4개국이 서로 협력하면서 문화재 반환과 관련된 하나의 원칙이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반환을 위한 4개국 공동 기준 같은 것이 있는가. “서로 협력은 하지만 ‘올림픽 육상경기’ 같은 느낌으로 일을 하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공동 이벤트에서 협력은 하지만 일단 육상경기에 뛰어들 경우 서로 앞서가려고 경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공동 협력이 되겠지만 과정은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 반환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의 현안이기도 하다. 특히 한·중·일 3국 간 내부의 문화재 반환 문제도 중요하다. 역사 청소, 아니 역사 정화란 측면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가 아시아에서도 곧 이슈화할 것이다. 약탈된 문화재라면서 일본까지 가서 훔쳐오는 한국인도 있는데, 국내 과시용이 아니라 세계에 통할 보편적 애국심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사보이 교수의 리포트와 생각은 최적의 교과서로 활용될 수 있다.

- 유럽 식민지는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아시아에도 존재했었다. “아프리카 문화재는 약탈 당시 이리저리 뒤섞인 상태에서 유럽에 들어왔다. 무질서하게 흩어졌다. 따라서 반환 문제는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 전체 차원에서 논의해야만 한다. 아시아는 다르다. 과거 식민지 역사를 보면 프랑스가 베트남, 영국은 홍콩,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다. 아프리카와 비교하면 아시아의 약탈 예술품은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의 경우 일단 프랑스와 독일이 먼저 시작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직 파리박물관 연합회장을 문화재 반환 특별대사로 임명해 조직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연합도 유럽 전체 차원에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 마크롱 대통령이 특히 적극적인데. “왜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개인적 차원의 이유는 모르겠다. 반환의 계기는 60여년 전인 1960년대의 아프리카 독립사에 있다. 여러 나라가 독립하면서 프랑스 정부에 자국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다. 프랑스는 줄곧 아프리카의 요구에 무심했다. 그러나 젊은 대통령 마크롱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더 이상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크롱 자신도 1년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현지 역사도 이해하면서 반환운동에 적극 나서게 된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학문적 토양과 분위기는 물과 불의 관계로 느껴진다. 크게 보면 문(文)의 프랑스, 리(理)의 독일이라고 할까? 유럽에서의 문화재 반환 프로젝트에 두 나라가 협력하면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130년 만에 프랑스에서 베냉으로 돌아가는 베냉의 약탈 문화재 중 일부. ⓒphoto swiftheadline.com
130년 만에 프랑스에서 베냉으로 돌아가는 베냉의 약탈 문화재 중 일부. ⓒphoto swiftheadline.com

- 프랑스와 독일의 반환운동에 대한 자세, 원칙, 우선순위가 다를 듯하다. “물론 양국은 전혀 다르다. 우선 아프리카 문화재의 유럽 내 유입 시기가 다르다. 독일은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오래된 문화재가 대부분이다. 프랑스는 1950년대 중반까지 외국 문화재를 들여왔다. 독일의 경우 지방분권, 프랑스는 중앙집권 체제하의 정부조직이란 점도 큰 차이점이다. 따라서 프랑스는 중앙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다. 독일은 지방 뮤지엄의 독자적 결정이 중요하다. 개별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 아프리카 문화재의 세계 최대 보유국은 독일이다. 양적으로 볼 때 프랑스보다 훨씬 많다.”

- 아프리카 문화재의 자국 내 유입 시기가 다르다는 점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도 다를 듯하다. “프랑스의 경우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식민지의 유산을 짊어지고 있다. 구식민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프랑스 안에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은 이미 한 세기 전의 상황이기에 현실이 아닌 ‘과거’로 대한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을 자국의 국가 이익을 늘리고, 특히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맞서는 대응 전략이라 보는 사람들이 있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아프리카 독점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으로서의 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이다. 그 같은 얘기는 독일처럼 식민지 역사를 과거로 대하는 나라에는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처럼 당장의 현실로 아프리카를 대할 경우 국익이나 전략전술이란 얘기가 통할 수 없게 된다. 상대적이겠지만 프랑스의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의 동기는 ‘인도주의’에 입각해 있다. 베냉을 예로 들어보자. 인구 1100만의 작은 나라를 무대로 한, 중국과의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당신의 생각에 대해 반감도 많을 듯하다. 현재 분위기는 어떤가. “물론 초창기에는 반대가 많았다. 베냉 문화재 반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뮤지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대부분이 나의 생각에 동의하고 지원해주고 있다. 놀랍고도 고맙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반대했던 사람들이 나의 생각에 동의해주고 있다.”

약탈 문화재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영국박물관과 베를린뮤지엄이다. 영국박물관의 경우 입구에서 들어가는 즉시 고대 그리스 신전의 유물·유적으로 채워져 있다. 영국박물관의 간판인 셈이다. 그리스를 서방 문명·문화의 출발점으로 잡은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중세 이전 역사가 거의 없는 영국이 같은 해양대국 그리스를 통해 자신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베를린뮤지엄의 간판인 페라가몬 신전도 마찬가지다. 터키에서 유입된 문화재로, 히틀러가 극찬한 게르만 권위의 상징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틈만 나면 그리스와 터키가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 파르테논과 페라가몬 신전이 언젠가 반환될 것이라고 보는가. “반환 여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관련된 논의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파르테논과 페라가몬 신전의 유럽 유입시기는 오스만제국의 쇠퇴기와 겹친다. 당시 상황에 대한 진실규명과 함께, 고고학적 차원의 논의도 필수적이다. 사실 유럽인의 대부분은 그 같은 어제의 역사를 잘 모른다. 독일인조차 페라가몬을 성경과 관련한 신전으로 이해할 정도다.”

- 아시아에도 식민지의 유산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의 많은 문화재가 일본과 미국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반환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관계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문화재 약탈과 관련한 제국주의 사상은 ‘문화=파워’라는 관점에서 시작됐다. 문화를 지배하는 나라가 파워대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를 보는 투명한 눈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행하고 있지만, 대학은 그 같은 투명한 역사를 제공할 주역이다.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서 문화재를 둘러싼 논의와 교육, 지식이 중요하다. 문화재 반환은 관계국과 관계자 사이의 ‘논의·교육·지식’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인터뷰는 시종일관 미소와 함께 진행됐다. 최근의 문화재 반환을 너무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보이 박사의 열정이 내내 와닿았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에서 보듯 예술품은 국경이 있다. 아프리카를 넘어 아시아와 한국에서도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흔적이 깨끗이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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