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현재 약 300여종이 발견됐으며, 가장 먼저 발견된 소립자가 전자이다. 물질을 세분해 들어가면 분자, 원자, 원자핵 순으로 쪼개져 나가는데 이 과정의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이 소립자다. 소립자 중 전자는 1897년 톰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1908년 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하였고, 이어 수소의 원자핵인 양성자의 존재가 알려졌다. 1932년 중성자와 양전자, 1937년 중간자가 발견되었고, 1950년쯤부터 급속히 많은 소립자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3월 30일은 입자물리학자들에게 축배의 날이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스위스 제네바 인근 지하 100여m에 설치된 총연장 27㎞의 거대 강입자가속기(LHC) 터널에서 총 7TeV(테라전자볼트)의 고(高)에너지로 2개의 수소 양성자 빔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쏴 충돌시켜 초기 우주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스위스 제네바 인근 지하에 설치한 총 연장 27㎞의 거대 강입자가속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스위스 제네바 인근 지하에 설치한 총 연장 27㎞의 거대 강입자가속기.

거대 강입자가속기 터널에서는 2개의 수소 양성자 빔(beam)이 각각 반대쪽으로 진행하다가 강력한 초전도 자석에 의해 구부러져 서로 충돌하면서 1000만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빅뱅(우주의 대폭발) 당시와 비슷한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때의 수억 개 충돌 파편들을 초정밀 검출기들을 통해 추적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 인류가 입자 중에서 유일하게 확인하지 못한 힉스 입자(Higgs Boson)를 찾아내는 것이 이번 실험의 목표이다. 과학자들은 왜 그토록 힉스 입자를 찾으려 하는 것일까.

모든 물체의 질량은 ‘힉스’에 달렸다

우주는 137억년 전 대폭발, 즉 빅뱅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빅뱅 이후 별과 은하, 블랙홀과 같은 천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이 비밀을 밝히기 위해 우주 탄생의 순간을 재현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힉스 입자는 1964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힉스(P.W. Higgs)가 주장한 것으로, 모든 물질에 질량을 갖게 한다는 가설의 입자다. 일반인은 상식적으로 모든 물질은 질량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기본 모델을 전제로 물질을 쪼개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질량을 갖고 있지 않은 입자가 나온다. 그래서 영국의 힉스는 질량을 부여해 주는 미지의 입자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이 입자를 도입함으로써 질량 생성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힉스가 없다면 우주의 질량도 우리의 몸무게도 0이다.

입자들의 주기율표는 완성됐지만, 현대물리학의 표준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 힉스 입자는 21세기 물리학이 반드시 찾아야 하는 궁극적인 입자가 됐다. 힉스는 단순히 수많은 소립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빅뱅으로 탄생한 물질들이 어떻게 질량을 갖게 됐는지의 근원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입자이다. 그래서 ‘신의 입자’로 불린다.

그렇다면 힉스 입자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물질에 질량을 부여할까? 힉스 입자가 질량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힉스장(Higgs field)으로 설명된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하며, 소립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소립자의 질량이 결정된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이 무거워진다. 소립자인 톱 쿼크(Top quark)가 무거운 것은 힉스장과 반응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질량이 없는 광자는 아예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힉스는 입자들이 성질은 비슷하지만 질량이 크게 다른 이유를 설명해 준다. 힉스장을 풀장에 비유하면 입자는 수영선수들이고, 수영선수들이 헤엄을 치면서 물과 부딪칠 때 비로소 질량이 생성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강입자가속기 통해 빅뱅 재현

힉스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모든 입자들의 질량을 결정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발견하게 되면 질량의 기원과 우주 생성의 비밀을 밝혀낼 단서가 된다. 힉스 입자는 자연 속에서 그냥은 볼 수 없다. 우주가 탄생하던 빅뱅 당시에는 물체에 질량을 주는 입자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물질 속에 숨겨져 있다.

따라서 가속기로 입자를 충돌시켜 이 에너지로 힉스 입자를 생성해야 한다. 가속기를 통해 빛의 속도에 이를 때 빅뱅과 같은 환경이 완벽히 재현되고, 엄청난 에너지의 양성자가 충돌하면 숨겨진 힉스가 튀어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번 실험에서 성공한 7TeV 규모 가동 에너지는 지금껏 지구상의 입자가속기가 달성한 것보다 3.5배나 높은 것이다.

양성자는 빛의 99.99%의 속도로 강입자가속기 안 터널을 1만바퀴 이상 돌다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양성자와 충돌한다. 이때 거대한 에너지(14조 전자볼트)가 발생하고 힉스 입자가 탄생한다. 1초에 약 1억개의 입자가 생기는데, 여기서 나머지 입자를 없애 힉스를 찾아내는 것이다. ‘가장 작은’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가속기가 가동된 이유이다.

힉스 없으면 현대물리학 전면 수정해야

세계 최대 규모의 강입자가속기 건설은 1994년 시작돼 14년 동안 95억달러(10조원)의 비용이 들었고, 전세계 과학자 약 1만명이 참여해 제작되었다. 2008년 9월 10일, 첫 빔을 쏘며 가동을 시작했지만 이내 두 차례 고장으로 멈춰서 제 성능을 내지 못하다가 장기간 수리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말 재가동에 들어갔다.

강입자가속기 가동에 앞서 일부 과학자는 실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는 소규모의 ‘인공 블랙홀’이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해 지구를 집어삼키거나 변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실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양성자가 충돌할 때 미니 블랙홀이 생길 수 있다. 아주 작은 공간에 여러 입자가 갇혀 밀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CERN은 이 블랙홀은 수명이 아주 짧아 주위 물체를 삼키기 전에 사라지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충돌 실험의 결과는 분석을 거쳐 이르면 몇 개월 안에 발표될 예정이다.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린다. 과학자들은 빅뱅 이후의 우주 탄생과 진화, 암흑 물질의 비밀 등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험 데이터에 가장 주목하는 것은 힉스 입자의 존재이다. 만일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 빅뱅 당시의 기체 잔해가 은하, 항성, 행성 등을 구성했다는 가설이 입증되는 셈이다. 반대로 힉스 입자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지난 100년간 이룩한 현대물리학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의구심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이번 실험은 빅뱅 당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한 것으로 기대되는 양성자 충돌 에너지 14TeV의 절반 수준이므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 특히 14TeV 실험은 2013년으로 예정돼 있어 강입자가속기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 인류의 지대한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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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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