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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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반도는 한파와 폭설로 꽁꽁 얼어붙었다. 부산에서는 96년 만에 강추위가 찾아와 해운대 바다가 얼었고 서울에는 10년 만에 최저기온의 기록이 바뀌었다. 한반도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 또한 최대 45㎝의 폭설이 쏟아졌고 영국은 100년 만에 최악의 혹한을 맞았다. 이쯤 되면 지구 온도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빙하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방어시스템이 작동했다

공사 중인 구리 암사대교 부근 한강이 꽁꽁 얼어있다. 최초로 한강 전체에 걸쳐 결빙이 관측되었다. ⓒphoto 조선일보 DB
공사 중인 구리 암사대교 부근 한강이 꽁꽁 얼어있다. 최초로 한강 전체에 걸쳐 결빙이 관측되었다. ⓒphoto 조선일보 DB

올 겨울 북반구의 이례적 폭설과 한파에 대해 기상청은 북극을 둘러싸고 동서로 회전하는 제트기류가 뚫려 한파가 남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평상시 북극 지역의 차가운 공기덩어리(시베리아기단)는 마치 장벽처럼 제트기류가 감싸고 돌아 저위도 지방으로 내려가 북반구의 도시들을 덮치지 않는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평균기온이 높아져 ‘폴라캡(polar cap)’으로 불리는 제트기류의 기세가 약해지면서 장벽 역할을 하던 공기의 흐름이 뚫려 차가운 공기덩어리가 남쪽, 북쪽 지그재그형으로 사행(蛇行)해 세계를 뒤덮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의 북극 기온은 영하 20도로 평균보다 10도나 높다.

한반도에 이상 한파를 몰고 온 시베리아기단의 한기는 시베리아 지역에 내린 폭설의 여파이기도 하다. 지표면에 눈이 쌓이면 흰색의 눈이 햇빛을 반사하면서 대지가 태양열을 잘 흡수하지 못한다. 따라서 지표 근처의 공기가 더워지지 않아 기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태양열에 의해 더워진 지구 표면은 상공의 찬 공기가 내려와 식혀 주는 것이 자연의 순환(대류현상)이다. 따라서 이번 폭설과 한파는 일시적인 온난화 방지책이라 할 수 있다. 대류가 원활하지 못하면 자연히 더운 공기는 더운 공기끼리 뭉치게 되고, 찬 공기는 찬 공기끼리 뭉치게 된다. 그리고 이 두 개체가 닿는 곳에서 엄청난 폭우나 폭설을 쏟게 된다. 호주의 퀸즐랜드주 전체가 폭우로 잠긴 것도 이 때문이다.

즉 서로 다른 두 공기의 작용에 의해 이번처럼 폭설과 한파라는 기상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한반도는 북쪽 상공의 강한 찬 공기와 남쪽 상공의 더운 공기의 경계면에 있다고 보면 된다.

지구촌 곳곳에선 이미 암세포처럼 기후변화의 고통이 퍼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지구 전체가 골고루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후의 균형을 무너뜨려 기후 변동의 폭이 커지고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춥다고 야단이지만, 지구 다른 쪽에서는 겨울답지 않게 더워서 난리다.

기후란 매일매일의 날씨로 말하는 게 아니라 30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이 어떻게 변해 가느냐로 말한다. 따라서 일시적 한파와 폭설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스탠퍼드대 파울 에를리히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더워진 공기가 지구의 공기 순환을 빠르게 해 남극과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더 먼 곳까지 이동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기록적인 혹한을 겪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기상학자들은 이번의 혹한과 폭설은 아픈 지구가 스스로 기후시스템을 작동시켜 지구의 온도를 일시적으로 낮춤으로써 평형상태로 유지하려는 일종의 몸부림일 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눈은 지구의 평형유지 장치 중 하나인 셈이다. 지구의 온도 변화를 추적해온 미국의 칼 미어스 연구원은 “1988년과 1991∼1992년, 1998년에도 많은 지역에서 강추위가 찾아왔지만 지구 온도는 계속 상승 중”이라며 이 주기가 끝나면 지구는 다시 더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영화 ‘투모로우’ 현실로?

제트기류는 정상적 상태일 경우 미국 대륙에서 북유럽 쪽으로 타원형 형태로 걸쳐 있어야 하지만(점선), 최근에는 기류가 요동치면서 중·저위도까지 북극 한기의 영향을 받는다.<br></div>여기에 북극권에서 하강한 제트기류와 남쪽 바다에서 올라온 엘니뇨가 중위도 대륙 지역에서 충돌하면서 폭설까지 내렸다.
제트기류는 정상적 상태일 경우 미국 대륙에서 북유럽 쪽으로 타원형 형태로 걸쳐 있어야 하지만(점선), 최근에는 기류가 요동치면서 중·저위도까지 북극 한기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북극권에서 하강한 제트기류와 남쪽 바다에서 올라온 엘니뇨가 중위도 대륙 지역에서 충돌하면서 폭설까지 내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번 한파와 폭설로 큰 혼란을 겪으면서 진짜 빙하기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 크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영화 ‘투모로우’가 실제로 벌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2004년 개봉된 재난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온난화로 남북극의 빙하가 녹고 그로 말미암아 해수 온도가 내려가며 해류 흐름이 바뀌어 지구에 빙하기가 닥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번 한파와 폭설은 빙하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물리적 법칙으로 볼 때 영화에서처럼 따뜻해지던 지구에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오는 것은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퇴적층이나 극지방의 얼음을 통해 과거 지구 기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밝혀왔다. 그 결과 지구가 100만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수차례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지구 기후는 1만년 전의 가장 극심했던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 천천히 기온이 오르면서 간빙기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1만년 후의 간빙기 동안에도 500년 정도의 짧은 주기를 갖는 기후 변동이 있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를 ‘소(小)빙하기’라고 말한다.

이런 기후변화의 주된 요인은 태양과 지구의 공전궤도와 관련된 일조량의 변화이다. 1911년 천체물리학자 밀란코비치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궤도의 주기적인 변동이 기후 변화를 일으켜 빙하기와 간빙기를 발생시키는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지구온난화이면서 소빙하기?”

지구의 공전궤도는 타원형이었다가 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약 10만년에 한 번씩 반복한다. 또 지구의 자전축은 약 2만2000년마다 돌아가는 팽이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부르르 떨면서 도는 순간이 있다. 또 지구 자전축은 4만년을 주기로 기울기가 22~24.5° 사이를 넘나든다. 현재는 23.5° 기울어져 있다. 기울기가 커질수록 지표면의 복사열에 영향을 미쳐 계절 간 기온의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러한 주기들이 겹쳐지는 시점에 빙하기가 출현한다는 것이 밀란코비치의 주기 이론이다.

이런 지구 운동을 고려하면서 해양퇴적물로 얻은 결과를 연구해 보면 과거 지구 기후 변화의 실제 데이터와 잘 들어맞는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자들은 밀란코비치의 빙하기 생성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재 지구가 인간이 태우는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로 더워지고 있지만, 지구운동에 의한 예측은 이미 빙하기로 다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지구온난화의 상승곡선이 꺾일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극지기후연구센터의 윤호일 박사팀은 지난해 남극 세종과학기지 앞 맥스웰만 빙하해양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맥스웰만의 수면 아래에는 수심 100m 깊이에 빙하의 퇴적물이 가득 쌓여있는데, 이를 조사한 결과 지난 2000년 동안 남극에서 500년 주기의 소빙하기가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소빙하기의 증거로는 ‘빙하가 커지면서 퇴적물에 육지에서 흘러나온 물질이 늘어난 것과 바다 얼음에만 사는 빙하종 플랑크톤이 번성한 것’이라는 게 윤 박사의 설명이다. 또 소빙하기가 북극해에 인접한 북대서양 지역 심층수의 순환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500년 주기의 소빙하기가 북대서양 심층수의 생성이 느려지거나 정지되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주기로만 보면 극지방은 이미 소빙하기에 접어들었지만, 인간의 산업 활동에 의한 지구온난화 때문에 소빙하기의 기상 현상이 억제되고 있다”며 지난해나 올 겨울의 잦은 폭설과 한파 등 북반구의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와 자연주기에 따른 소빙하기가 충돌하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앞으로 온난화 현상이 줄어들 경우 소빙하기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고, 이때 극심한 한파와 같은 심각한 기후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일부 기상 과학자들도 지금 북반구의 모진 겨울이 더 추운 날씨를 향한 지구적 추세의 시작일 뿐이라며, 이 같은 현상이 20년 또는 30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나섰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 콜로라도주 소재 국립빙설자료센터는 북극의 여름바다 얼음이 2007년 이후 26%가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소빙하기 도래… 20~30년간 한파”

또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 이슈를 줄곧 제기해온 독일 키엘대학교 모지브 라티프 교수도 지난해 한랭화와 온난화 주기가 시작되는 곳인 해수면 아래 수심 약 914m 해양 수온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한 후 새로운 한랭화 추세를 예측했다. 과거 해양의 주기가 ‘따뜻한 모드’여서 지구온난화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차가운 모드’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최근과 같은 추운 겨울이 훨씬 더 자주 있을 것이고, 여름 역시 아마도 더 서늘해질 것이며, 이런 현상들은 20년 또는 그 이상 계속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빙하기의 도래를 논하기 위해 대비시킨 기후변화 측정 기간이 너무 짧다는 반론도 많다. 게다가 온난화로 인해 기후변화 주기가 과거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도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이 온난화 과정의 기후변화 곡선 중 깊지 않은 골에 해당한다면 빙하기의 도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상당수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지구온난화든 소빙하기든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겨울 한파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지구는 매우 민감한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베이징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달 미국 뉴욕에 폭풍을 발생시킬 수 있듯이 국지적인 대기의 변화는 10일 후면 전세계로 퍼진다.

이는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어느 순간 기후가 예측불가능한 상황으로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의 기후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기 전에 우리가 지구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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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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