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인식 지갑·홍채 인식 출입구 등 생체기술 급성장
매년 시장규모 20% 커질 듯… 2014년 93억달러 전망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9 국제 보안기기 및 정보 보호전’에 출품된 지문인식 출입 단말기. ⓒphoto 조선일보 DB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9 국제 보안기기 및 정보 보호전’에 출품된 지문인식 출입 단말기. ⓒphoto 조선일보 DB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가장 걱정하는 것은 ‘우리 집의 안전’, 즉 문단속이다. 예전에 사립문 안에 살 때는 문에 작대기 하나 걸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대문간 누렁이를 단단히 타이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그러나 탄탄하고 든든한 철문 안에 살게 된 요즘, 우리는 오히려 더욱 철통 같은 수비를 필요로 한다. 간단한 자물쇠 하나만 믿고 며칠 동안 집을 비우기에는 왠지 꺼림칙하다.

그래서 첨단기법으로 무장한 최신형 자물쇠로 현관문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으니, 이른바 사람의 신체를 ‘열쇠’로 사용하는 ‘생체 인식 기술’이다. 이는 사람마다 고유한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 개인을 식별하는 기술이다. 생체 인식 기술에 쓰이는 신체 특징으로는 지문, 얼굴, 망막, 홍채, 혈관이 주목받고 있다.

홍채 인식 기술, 일란성 쌍둥이도 구별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체 인식 수단은 ‘지문’이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손가락 무늬를 통해 개인을 식별하는 것이다. 문 잠금 장치나 현금 자동 입출금기, 증명서 자동 발급기에 지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에 나온 지문 인식 지갑도 생체기술을 이용한 신종 지갑이다. 미리 입력해둔 사용자의 지문과 일치해야만 지갑이 열리도록 돼 있고, 지갑이 사용자로부터 일정 거리(5m안팎) 이상 떨어질 경우, 휴대폰으로 경보음을 울려주기도 한다.

지문 인식 기술은 스캔을 통해서 저장된 지문과 사용자의 지문이 일치하면 전기신호를 보내 0.1초 만에 모터를 작동시키는 원리로 가동된다. 살갗에 이물질이 묻어 있어도 인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문은 심한 노동을 하면 지워지기도 하고, 땀이나 이물질이 묻으면 제대로 인식이 안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지문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이 홍채 인식이다. 홍채 인식은 홍채의 모양과 색, 망막 모세혈관의 형태를 분석해 사람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지문의 경우 다른 사람과 똑같을 확률이 640억분의 1로 매우 낮다. 그런데 홍채는 심지어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달라 그 어떤 암호보다도 보안성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홍채 인식은 어떻게 이뤄질까? 한마디로 홍채의 특성을 분석해 코드로 나타내고, 이를 영상신호로 바꾼다. 사람이 일정한 거리에 서서 홍채 인식기에 눈을 맞추면, 적외선 카메라가 줌렌즈로 초점을 조절해서 홍채만 촬영해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고 나면 홍채 인식 알고리즘이 홍채의 무늬를 영역별로 분석해, 0과 1만 사용하는 디지털 신호로 바꿔 개인 고유의 암호화된 홍채 코드를 생성해 저장한다. 이 홍채 코드가 각종 홍채 인식 시스템에서 신원확인에 이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LG U+, 상암동 DMC 사옥과 덕수궁미술관 미술품 보관실, 부산 해운대의 이안엑소디움 아파트 입구에 설치돼 있다.

홍채 인식과 같은 원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얼굴 인식이다. 얼굴 인식 장치의 기본원리는 양 눈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정교한 가면을 쓰고 있어도 발각될 위험이 있다. 얼굴 인식 기술에 3차원(3D)을 사용하면 사람의 얼굴 모습을 캡처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사람을 인식할 수 있다.

얼굴 인식 기술은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플루의 검역에 유용하게 쓰이면서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열 감지 카메라에 얼굴 인식 기술의 일부인 얼굴 검출 기술을 접목하면 검출된 얼굴 영역이 고열인지를 판별하는 방식으로, 고열 환자를 자동으로 신속하게 판정할 수 있다.

키보드 입력 속도·걷는 모습 구별해 ‘인식’

인간의 생체 정보를 암호로 이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행동 인식 기술’이다. 이는 손가락 움직임, 서명하기, 걷는 모습, 목소리 변화 등 ‘움직이는’ 행동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예를 들어 서명하기 인식은 서명을 할 때 손에 압력을 얼마나 주는지, 펜을 어떤 빠르기로 사용하는지, 특정 글자를 쓸 때 어떤 속도로 펜 끝을 회전시키는지 등을 감지한다. 현재 몇몇 선진국의 정보기관들이 이미 서명하는 방식을 암호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행동 암호 중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은 정보기기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키보드를 치는 속도와 방법, 터치스크린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법 등의 행동 암호가 그것이다. 이를 테면 자판에 숫자를 입력할 때 사람마다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암호로 쓸 수 있다. 세계적으로 IMB를 비롯한 5개 기업이 상용 제품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걸음걸이 방식도 행동 인식 기술의 암호로 관심을 끌고 있다. 걸음걸이만 보고도 누군지를 구별해내는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밤이나 낮, 그리고 어떠한 기후 조건에 상관없이 최대 152m 거리에서 사람을 인식하고 분석하여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영상 센서와 동작 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주로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를 찾아내는 데 쓰인다.

어디 그뿐인가. 생각만 해도 문이 열리고 은행계좌에 접근해 돈을 찾을 수 있는 뇌파 열쇠가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사람의 뇌파 신호는 똑같은 걸 생각하더라도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암호를 떠올릴 때 나오는 뇌파가 지문처럼 쓰일 수 있다. 캐나다 칼턴대학의 연구원 줄리 소프와 캐나다 유명 보안기술자 폴 반 오르쇼트 연구팀이 지금 그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사람이 생각할 때 나오는 뇌파를 이용해 개개인을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생체 인식 기술인 셈이다.

개인 사생활 침해 논란 과제

세계 각국은 전자여권 도입을 계기로 생체 인식 기술의 상용화를 본격화하였다. 특히 공항에서의 여행자 보안이 생체 인식 기술의 도입과 개선을 이끌고 있고, 이것이 상업적 부분으로 확산되는 길을 열고 있다. 또 신원확인이 필요한 여타 정부 부처들이 생체 인식 기술의 도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자연스럽게 민간 부문도 건물 출입 통제 문제 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넓게 이용하고 있다.

2009년 세계 생체 인식 시장의 규모는 34억달러였다. 전문가들은 2014년쯤에는 약 93억달러에 달해 매년 20%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09년 생체 인식 기술 전체 시장을 살펴보면 지문 인식 분야가 45.9%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얼굴 인식 분야가 18.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얼굴 인식 기술은 삼성전자가, 지문 인식과 홍채 인식은 LG전자가 가장 많이 출원한 상태이다.

앞으로는 보안성을 높이기 위해 지문, 얼굴, 홍채 등을 동시에 사용하는 다중 생체 인식 제품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행동 인식 기술이나 생체 인식 기술이 실용화되기까지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잘 사용하면 훌륭한 열쇠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내 행동을 감시당하는 족쇄의 덫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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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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