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시교(因材施敎)는 획일적이 아니라 저마다 타고난 소질에 맞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나온 말이다. 자녀에게 내재된 저마다의 특성을 잘 살려 행복한 삶으로 이끈 부모의 성공 교육철학을 연재한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팝피아니스트 윤한(본명 전윤한·30).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친아’다. 노래면 노래, 작곡이면 작곡, 피아노 연주면 연주, 못하는 게 없다. 두 장의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은 윤한 혼자서 작곡하고 연주하고 불렀다. 지난해에는 뮤지컬에도 뛰어들어 ‘모비딕’ 주연을 맡았다. 미국 버클리음대 출신에다 패션모델을 해도 손색없을 몸매, 훈훈한 외모까지. 아닌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소위 길거리 캐스팅을 꽤 여러 번 받았다.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듣는 지점도 같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하는. 피아니스트, 작곡가, 가수, 뮤지컬 배우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력 때문이다. 올 연말에는 전국투어 단독콘서트도 잡혀 있다. 서울 공연은 예술의전당에서 할 예정이다.

엄친아 스펙은 이뿐이 아니다. 초·중·고 12년 내내 학급 리더를 맡았고, 수학을 잘해 수학경시대회에서 종종 상도 받았다. 고 3 때 내신은 1등급. 세 살 위의 형은 의사다. 이쯤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부모는 두 아들을 도대체 어떻게 키웠을까. 윤한과 그의 어머니 최혜영(60)씨를 지난 6월 18일에 만났다. 어머니 최씨는 환갑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사진기자에게 “누나처럼 나오게 해 달라”며 농을 했다. 언론 인터뷰가 처음이라는 최씨는 개그감이 넘쳤다. 기자가 윤한에게 엄마 자랑을 해보라고 요청하자, 엄마는 아들 옆구리를 툭툭 치며 “야, 좀 잘해봐” 하더니 정작 엄마 자랑을 늘어놓는 아들의 말허리를 자르면서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개그콘서트 대사를 친다.

윤한에게는 두 명의 롤모델이 있다. 가수 김동률과 어머니 최혜영씨. 김동률은 직업 롤모델, 어머니는 성격과 관계의 롤모델이다. 작은 성공을 이루어가는 중인 그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결정적 인물로 두 사람을 주저없이 꼽는다. 가수 김동률은 그에게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안겨줬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윤한은 그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그는 장래희망란에 ‘의사’ ‘변호사’ 등을 별 고민 없이 썼다. 꿈 없는 모범생은 철이 들면서 망가져갔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잃으면서 방황을 시작했다. 머리에 노란물을 들이고 한껏 멋을 내 압구정동으로 놀러 다녔다. 성적표에 최초로 ‘양’도 받아봤다. 그러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한 남자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머리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김동률이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인생의 궤도를 확 틀었다.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 연주도 웬만큼 하는 그는 뮤지션으로 꿈을 정했다.

모범생 아들이 돌연 음악가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의 반응은 어땠을까. 어머니 최씨는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한 번 당해본 적이 있어서. 쟤는 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며 웃었다. 의사가 된 형은 경제학도였다. 서강대 경제학과 1학년을 마치고 불쑥 폭탄선언을 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형은 의료봉사에 내내 마음이 쏠렸고, 마침 의학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마음을 굳혔다. 그의 부모는 반대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해라”라고 했고, 형은 일주일 후 “지금 바꾸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의사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수능공부를 다시 했고, 대입 수능에서 전 과목에서 단 세 개 틀리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 입학했다.

이때 생긴 항체 덕에 어머니는 동생 윤한 때는 담담했다. 둘째 아들이 음악가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자 첫째 아들 때의 매뉴얼대로 했다. 일주일간 시간을 줬고, 윤한 역시 일주일 후에도,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음악가가 되겠다는 갈망이 커져서 음악가의 꿈으로 못을 박았다. 엄마는 단번에 오케이했다. “음악가를 해서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겠냐”며 걱정하는 아빠 역시 엄마가 설득했다.

아들들의 꿈이 영글기 전, 엄마는 전형적인 ‘강남 스타일’ 엄마였다. 대치동에 살면서 대치동의 이름난 학원을 줄줄이 보냈고 과외도 시켰다. 공부뿐 아니라 별별 학원을 다 보내봤다. 바둑, 태권도, 미술, 한자, 컴퓨터, 서예, 피아노 등. 꿈 없이 치는 피아노는 재미없었다. 윤한은 “피아노가 치기 싫어 의자 밑에 숨어있기도 했다”고 했다. 운동도 많이 시켰다. 수영, 라켓볼, 골프 등. 윤한의 라켓볼은 세미프로 수준이다. 어머니 최씨에게는 교육 원칙이 있었다. 첫째, 억지로 시키지 않기, 둘째,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주기. 온갖 학원들은 윤한의 꿈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기회들이었던 셈이다. 그는 늘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공부든 뭐든 네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그것이 무엇이든.”

꿈이 생기면서 아들은 무섭게 변했다. 희망 대학은 버클리음대. 김동률이 재학 중인 학교였다. 오로지 버클리음대여야 했다. 엄마가 꿈의 지지자로 적극 나섰다. “하려면 제대로 해라”라며 버클리음대 입학자격 요건을 알아보고, 버클리음대 출신 음악가를 연결해 주는 등 디딤돌이 돼 주었다. 윤한은 버클리음대가 요구하는 입학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에너지 100%를 쏟아부었다.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빼고 5~6개월 내내 영어와 피아노 연습에 몰입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기계보다 드럼을 더 잘 치는 사람, 빗소리를 음으로 재현하는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 등 음악천재들 지천인 그곳에 합격한 건 행운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발전하는 모습을 좋게 봐 준 것 같다. 다른 버클리 학생들에 비해 나는 많이 부족했다. 노력으로 채워야 했다. 입학 후에도 하루 12~13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을 했다. 학교 연습실의 그랜드피아노를 차지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갔고, 새벽 두 시까지 연습하다 돌아오는 날도 허다했다.”

뮤지션의 꿈을 이룬 지금 그는, 엄마가 롤모델이라고 말한다. 삶의 방식과 지혜,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배웠다고 했다.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는 아들은 종종 있어도 어머니를 롤모델로 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아버지는 늘 바빴다. 엄마 최씨가 형제의 주 양육자의 역할을 도맡았다. 최씨는 “제가 좀 터프해요. 애교는 아빠의 역할이었죠”라며 웃었다. 그의 아버지는 몇 해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으나 다행히도 완치됐고, 이후 삶의 방식이 확 바뀌었다고 했다. 직장도 버리고, 여행도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는 법을 뒤늦게 체득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과의 관계도 무뚝뚝한 아빠에서 친구 같은 아빠로 변했다고 한다.

윤한이 엄마를 롤모델로 꼽는 지점은 ‘인간관계’다. 윤한은 “성공은 관계가 만든다”며 이렇게 말했다. “운과 실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인과의 관계가 성공의 열쇠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여기까지 오는 데는 나를 좋게 봐 주신 주변인들의 도움이 컸다. 나는 원래 꽉 막힌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날카로운 편이고, 자존심 강하고 지는 걸 싫어해 먼저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 철이 들면서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

지난해 뮤지컬에 도전할 때에도 엄마의 말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모비딕’ 초연 때 섭외요청을 받고 거절한 그는, 지난해에도 역시 거절하려 했다. “음악으로도 아직 멀었는데 연기까지 도전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뜨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비쳐질까봐 두렵기도 했다”는 게 거절하려는 이유였다. 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설득했길래 아들의 마음을 단번에 바꿔놓았을까. 엄마는 애써 도전정신을 운운하며 불씨를 댕기지 않았다. 그저 “너무 겁먹지 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라”라고 했다. 윤한은 마음이 확 열렸다. 어머니 최씨의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 아이는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아이랑 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사람 가리지 마라. 관계는 상대적인 거다. 관점에 따라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된다’는 말을 자주한다.”

최씨는 잔소리 고수다. 엄마는 윤한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지만 윤한은 한 번도 엄마의 말을 잔소리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다. 그 비결은 어머니 최씨의 훈육방식에 있다. 성향이 상반되는 두 아들을 대할 때 아들별 훈육 작전이 다르다. 그의 말이다. “첫째는 혼내는 게 통하지만, 윤한은 통하지 않는다.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오히려 엇나가는 성향이다. 그래서 윤한에게 지적할 일이 생기면 일단 일보 후퇴한다. 나중에 감정이 누그러지면 그때 말한다. 큰 반응은 없지만 나중에 보면 엄마 말대로 하고 있다.(웃음)”

인생의 롤모델로 엄마를 꼽는 윤한은 이상형 역시 “엄마 같은 성격에 애교 있는 여자”를 꼽았다. 엄마는 “그런 여잔 없어”라며 통 크게 웃었다. 전형적인 엄친아 아들을 둔 엄마 최씨는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그런 아들로 키울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나고 보니 대치동 교육을 시키나 안 시키나 결과 면에서는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아이 버클리음대 선배들을 보니 천차만별이더라.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뒤늦게 자신의 꿈을 찾아서 온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돼 있다. 방목하듯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엄마가 강요한 꿈이 아닌, 아이 스스로의 꿈을 찾을 수 있다. 완전한 방목은 안 된다.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커다란 울타리를 만들어두고 꿈이 생기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어머니 최혜영씨의 TIP

스스로 찾은 꿈이어야 행복한 성공 확률이 높다

❶ 선택지를 넓게, 다양한 경험을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양한 기회를 접하게 해 봐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알게 된다. 아이의 성향을 부모의 잣대로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줘라. ‘이 아이는 커서 ○○이 됐으면 좋겠다’고 미리 프로그램을 짜 놓는 것은 위험하다. 아이가 부모의 꿈의 대리인이 될 우려가 있고, 부모가 이끄는 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❷ 꿈 없는 모범생은 위태롭다

간절히 하고 싶은 것 없이 그저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릴 적에는 부모가 시킨대로 하지만 철이 들면서 ‘공부를 왜 하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면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건 당연한 시나리오. 꿈 없는 모범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❸ 방목하라. 큰 울타리 안에서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주는 것이다. 찾는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돼야 한다. 부모가 강요하는 꿈이 아닌 아이 스스로 찾은 꿈이어야 스스로 행복한 성공을 이룰 확률이 높아진다. 스스로 꿈을 찾게 하기 위해서는 방목하듯 키워야 한다. 단 울타리는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에는 분명한 제재를 해야 한다.

❹ 인생을 걸어도 되는 꿈인지 검증은 필수

아이는 미숙한 존재다. 롤모델을 보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은 즉흥적일 수 있다. 엉뚱한 꿈을 불쑥 꺼낸다면 그 자리에서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라. 생각의 시간이 길면 안 좋다. 본질을 흐릴 수 있고, 간절함이 흐지부지되고, 방황의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한 달 내외가 적당하다.

❺ 롤모델은 꿈의 추동체

롤모델은 꿈을 이루기 위한 날개이자 훌륭한 동기부여가 된다. 롤모델에 가깝게 되도록 부모가 조력자가 돼라. 롤모델이 걸어온 길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 길을 터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머나먼 별을 꿈꾸면 별에 다다르지는 못해도 달 가까이는 갈 수 있다. 높은 꿈은 분명 생의 큰 에너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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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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