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다. 가상화폐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투기성 투자가 늘자 사회문제로까지 떠올랐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손꼽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보안기술이다.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가상화폐만이 아니라 온라인 투표 같은 사회시스템 등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10분 단위로 갱신되는 블록

사람들은 블록체인 하면 곧바로 가장 잘 알려진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떠올린다. 블록체인이 비트코인의 기반기술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은 거래 명세를 담은 ‘블록(Block)’들이 ‘사슬(Chain)’처럼 이어져 하나의 장부(帳簿)를 이룬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거래가 새롭게 이뤄질 때마다 그 거래 내용이 담긴 새로운 블록(장부)이 만들어져 기존에 있던 블록에 줄지어 연결되는(체인) 식이다.

일반적으로 화폐는 정부의 중앙기관에서 발행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중앙기관 자체가 없다. 그런데도 신뢰성을 가지고 거래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비트코인은 개인과 개인이 서로 직접 거래하는 ‘P2P(Peer to Peer)’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증명해주는 화폐이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증명할까. 그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기록된 거래목록(디지털 장부)이 모든 참여자의 컴퓨터에 분산된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서 주문한 메뉴를 가져가라는 신호인 진동벨이 울렸다고 하자. 이때 ‘누군가가 내 자리를 지켜보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의자에 놔둔 채 메뉴를 가지러 간다. 마음 한구석에는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으니까 누가 가방을 훔쳐가진 않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방을 자리에 두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가상화폐(가상통화·암호화 화폐)를 거래하는 순간 누구와 거래했는지 등의 거래 내용이 중앙 서버가 아닌 참여자들의 컴퓨터에 각각 저장되어 그 정보가 참여하는 사람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성을 가진다. 시스템에 연결된 모든 참여자들이 ‘처음 이뤄진 거래부터 가장 마지막에 거래한 명세 장부까지’ 저마다 저장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어떻게 사고팔까. 가장 손쉬운 구입 방법은 비트코인 거래소라고 하는 온라인 환전소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컴퓨터로 암호화된 연산 문제를 풀어 얻는다. 암호를 풀면 돈이 없어도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 이를테면 전 세계 비트코인의 거래 내용, 즉 블록(장부)은 대략 10분 단위로 갱신되는데, 이 블록이 ‘공개키 암호’라는 방식으로 잠겨 있다. 10분마다 자동 생성되는 이 암호를 가장 빨리 푸는 사람에게 상금으로 비트코인이 지급된다. 암호를 푼 사람에게 주어지는 금액은 12.5비트코인. 1월 16일 현재 미국 시세로 1비트코인이 약 1만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큰돈이다. 이렇게 암호를 푸는 과정을 ‘채굴’이라 하고, 비트코인을 캐는 사람들을 ‘채굴자(광부)’라고 부른다.

암호를 푸는 작업은 상당히 어렵다. 처음에는 가정용 컴퓨터를 이용해서 개인이 채굴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암호 난이도가 높아져 고성능 컴퓨터가 없으면 해독이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의 경우 정해놓은 수준보다 암호가 빨리, 쉽게 풀릴 경우 자동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도록 돼 있다. 요즘은 암호가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에 여럿이 컴퓨터를 공유하면서 암호를 풀거나 전문 채굴회사들이 암호 해독에 나서고 있다. 여러 채굴자가 암호를 함께 해독했다면 기여도에 따라 상금을 나눠 갖는다. 채굴작업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고 그 다음은 미국이다. 물론 국내에도 채굴회사가 있다. 이들 회사가 채굴을 해 비트코인을 생성하면 거래소를 통해 개인들이 사고판다.

블록체인 시스템에서는 채굴자가 블록의 암호를 채굴할 경우 정보가 갱신돼 모든 참여자들에게 도달한다. 이렇게 ‘새로운 블록’(새로운 거래 내용)이 만들어지면 참여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장부들과 일일이 비교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때 만일 그 내용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 블록은 시스템에 등록하지 못한다. 따라서 해킹을 통해 정보를 조작하기란 힘들다.

언뜻 생각하면 모든 정보가 만인에게 노출되므로 더 위험할 듯싶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안전하다. 만약 어떤 해커가 거래장부 내용을 조작하려고 한두 대의 컴퓨터를 해킹했다고 하자. 블록체인 시스템에선 그래도 전혀 문제없다. 같은 데이터를 모든 참여자가 공유하기 때문에 다른 수만, 수십만 개의 컴퓨터에 기록이 남는다. 완벽하게 해킹하려면 흩어져 있는 이들 컴퓨터의 과반수 이상 장부를 10분 안에 거의 동시에 해킹해야 한다.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높은 보안성이다.

2040년까지 2100만개 발행 가능

그런데 왜 가끔씩 가상화폐가 해킹됐다는 뉴스가 나오는 걸까. 이는 블록체인을 해킹한 게 아니라 가상화폐를 담기 위해 발급받은 전자지갑 또는 가상화폐거래소의 시스템이 해킹된 것이다. 가상화폐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먼저 온라인 전자지갑을 만들어 컴퓨터나 USB에 저장해야 한다. 이 전자지갑을 해커들이 통째로 빼내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상화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정체불명의 일본인 니카모토 사토시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중 가장 많이 거래되고 시가총액도 가장 높다. 그 다음으로는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이 높다. 2014년 캐나다인 비탈리크 부테린이 개발한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가상화폐이지만 거래속도가 비트코인보다 빠르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다. 첫 발행 때는 10분에 50비트코인씩 생성되었지만 4년마다 10분당 발행량이 반으로 줄어들고 있다. 2040년까지 총 2100만개를 발행하면 끝난다. 현재 1600만개쯤 채굴된 상태이다. 반면에 이더리움은 발행량에 제한이 없다.

2012년 간편송금을 목적으로 탄생한 ‘리플’이라는 가상화폐도 있다. 리플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달리 채굴이 불가능하다. 발행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리플사’에서 독점하고 있다.

가상화폐는 아직 달러나 유로, 원화처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화폐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화폐(현금)로 바꾸거나 물건을 구입할 때 쓸 수 있다.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꿔 쓸 수 있는 자동입출금장치까지 등장했다.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전 세계 1만여곳. 온라인 쇼핑몰인 미국의 ‘아마존’을 비롯해 피자를 주문하거나 자동차를 살 때도 비트코인을 받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도 있긴 하지만 흔치 않다. 컴퓨터의 전자지갑에 보관된 가상화폐의 결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마치 이메일을 보내듯 상대방의 전자지갑 주소와 보내는 돈 액수를 적어 보내면 된다.

현실에서는 진짜 화폐처럼 필요해서 가상화폐를 구매하기보다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외여행 때 쓰려고 달러를 사는 게 아니라 달러환율이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사놓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트코인의 환전 가격은 마치 주식처럼 수요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 1비트코인이 50원에 불과했는데, 최근엔 1만달러(약 1090만원) 선을 오간다. 그러다 보니 시세차익만 노리는 투기성 거래자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가상화폐는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받는 화폐가 아니라서 익명성이 확보되어 있다. 따라서 테러 자금이나 뇌물 등 ‘검은돈’을 세탁하려는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공인 관리기관이 없으니 당연히 자금 추적도 어렵다. 이렇게 ‘어둠의 가상화폐’가 잠재력이 크고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쓰이자 정부는 규제 대책을 마련하느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저작권료 정상화에도 도움

그렇다면 블록체인을 이용한 가상화폐는 무조건 나쁜 걸까. 아니다. 가상화폐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투기 등 그것을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의 광풍(狂風)이 문제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보안기술인 블록체인을 단지 화폐나 금융권에 적용할 수 있는 겉모습만 보고 접근하면 안 된다. 블록체인은 향후 매우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기술이다.

세계는 블록체인 특유의 안전성과 투명성, 비밀보장성을 바탕으로 선거를 비롯해 인터넷 파일 공유시스템에도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스페인을 비롯한 에스토니아, 미국, 독일 등은 이미 블록체인을 통해 예비선거, 온라인 탄원, 정당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투표를 활발히 이용하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신생 정당 ‘포데모스’는 이미 ‘아고라 투표(Agora Voting)’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집행부 26명을 선출했는가 하면, 당내 의사결정이나 당의 방향성 제시도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또 ‘루미오(Loomio)’라는 앱을 통해 다수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책 제안과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활용 중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필요 없다. 개인이 직접 본인 컴퓨터 속의 블록 정보에 후보자를 선택해서 입력하면 되고, 비트코인의 사례처럼 이 모든 정보는 한 곳에만 저장되지 않고 투표에 참여한 국민의 모든 기기에 저장된다. 투표 결과는 익명으로 공유되는데, 자신의 투표 결과는 본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투표 결과는 선거가 끝난 뒤 투명하게 공개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해 그야말로 공정선거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의 권리를 정당하게 누릴 수 있다. 음원, 미술 작품 등 개인이 생산한 창작물은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유통돼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임의로 누군가가 유통할 때 자동으로 돈이 지불되도록 할 수 있다. 또 블록체인에 올려진 노래를 다운받을 때 저작권료로 가상화폐를 낼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가상화폐는 ‘현금을 대체하는’ 상징물 중 하나다. 물론 현금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지만 가상화폐의 이용이 확산되면 신용카드처럼 결제가 가능하고, 지금의 지폐와 동전의 퇴장이 빨라져 ‘현금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의 숨은 가치와 미래 활용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해 가상화폐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제도권 화폐로 인정하는 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키워드

#과학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