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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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첨단측정연구동 지하 1층 2호 실험실. 이광철 책임연구원(공학박사)을 따라 들어가니 왼쪽에 흰색의 철 구조물이 보인다. 거대한 BMW오토바이 엔진 박스처럼 보이는 건 진공 체임버. 그 안에는 키블저울이라는 ‘절대저울’이 들어 있다. 정확하게 질량을 재는 키블저울은 질량 표준기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광철 박사는 지난 6년간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세팅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KRISS 내 키블저울팀 책임자다.

“내년 5월 20일 국제 측정의 날에 1킬로그램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가 바뀐다. 그에 맞춰 키블저울을 개발해왔다. 그동안에 질량 표준이었던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새 정의가 대체한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영어로 ‘Big K’(프랑스어로는 Le Grand K)라고 불린다. 정확히 1킬로그램의 질량을 갖고 있다.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만들었고, 1889년부터 프랑스 파리 교외의 국제도량형국 건물 지하에 보관돼 있다. 각국은 이 원기의 복제본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복제본을 갖고 자국의 질량 표준으로 삼는다. 한국은 복제본 세 개를 갖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동(201동) 1층 질량실에 복제본들이 있다.

‘빅 K’는 130년간 질량 표준으로 사용돼왔지만 국제도량형국의 킬로그램 단위 재정의에 따라 퇴장한다. ‘빅 K’를 대체할 새로운 질량 표준기 중 하나가 키블저울이다.

“키블저울의 정확도에서 선두는 미국, 캐나다이고, 추격 그룹은 스위스, 프랑스, 한국이다. KRISS는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2010년에 시작했으나 빨리 따라잡았다.” 독일과 일본은 키블저울이 아닌 ‘실리콘 구’를 갖고 질량 표준 연구를 하고 있고, 중국은 또 다른 독특한 개념을 갖고 하고 있다고 이광철 박사는 말했다.

키블저울 연구는 국제도량형국의 권유에 의해 시작했다.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할수록 새로운 질량 재정의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국제도량형국은 기대했다. 현재의 ‘빅 K’는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하게 질량이 달라지는 약점을 갖는다. 때문에 국제도량형국은 변화가 없는 자연상수에 근거해 킬로그램을 재정의하기로 했다. 질량의 경우 자연 상수는 플랑크 상수이다. 플랑크 상수는 광자(빛알갱이)가 가지는 에너지와 진동수의 비례관계를 나타내는 상수.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알아냈다. 질량과 함께 온도, 전류, 몰질량 단위가 내년에 재정의된다. 전체 7개 국제 단위 중 4개가 바뀐다.

현재 빅 K를 기준으로 한 플랑크 상수의 정밀도(상대불확도)는 1.2×10-8이다. 국제도량형국은 킬로그램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바꿔도, 이 정도의 정밀도를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도량형국 산하의 질량 및 관련량 자문위원회(CCM)는 두 가지를 킬로그램 재정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다. 즉 3개 이상의 표준과학연구기관이 수행한 실험에서 플랑크 상수의 값이 5×10-8 이하에서 서로 일치해야 하고, 그중 최소한 하나의 결과는 2×10-8 이하의 정밀도(상대불확도)를 가져야 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010년 키블저울 연구팀을 만들었다. 당시 팀장은 김진희 박사(현 KRISS 양자기술 연구소장)였고, 팀원은 이광철·우병칠 박사였다. 당시 김명수 원장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김진희 박사는 처음 3년간 개념 설계 시기에 팀을 이끌었다. 이광철 박사가 팀장이 된 건 2015년 1월.

이광철 박사는 “2011년 미국 워싱턴 교외에 있는 국가표준기관 NIST에서 두 달간 공부했다. 또 캐나다, 스위스, 프랑스 표준연구기관과 국제도량형국(프랑스 파리 인근)을 찾아가 배우며 키블저울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병칠 박사는 전기측정 시스템을 책임졌다. 2013년 합류한 김동민 박사는 기구 설계를 했다. 김 박사는 삼성생산기술연구원에서 반도체 장비 개발을 담당한 바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KRISS 키블저울. 변하지 않는 자연 값인 플랑크 상수에 근거해 질량을 잰다. 키블저울은 1975년 영국표준기관의 브라이언 키블이 제안했다. 이 저울은 기계적 일률과 전기적 일률이 서로 같다는 원리를 이용한다. 전기적 일률은 플랑크 상수와 비례하므로 키블저울을 통해 정확하게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photo KRISS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KRISS 키블저울. 변하지 않는 자연 값인 플랑크 상수에 근거해 질량을 잰다. 키블저울은 1975년 영국표준기관의 브라이언 키블이 제안했다. 이 저울은 기계적 일률과 전기적 일률이 서로 같다는 원리를 이용한다. 전기적 일률은 플랑크 상수와 비례하므로 키블저울을 통해 정확하게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photo KRISS

이광철 박사팀은 국제도량형국이 2017년 7월 1일까지로 마감한 플랑크 상수 값을 제출하지는 못했다. 키블저울의 제작 설치가 2016년에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시스템 정밀도 향상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미국과 캐나다, 국제도량형국이 측정한 플랑크 상수 값의 평균값인 6.62607015×10-34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2016년 처음으로 키블저울 설치가 끝났을 때는 불확도가 10-6 수준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울의 자석 균일도가 나빠, 자석부를 다시 깎았다. 그리고도 수치가 잘 나오지 않아 살펴보니 질량비교기에 문제가 있었다.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울을 해체해야 했다. 뜯어보니 판 모양의 스프링이 휘어져 있었다.” 이광철 박사는 “2017년 6월부터 10-7 수준으로 수치가 나오고 있다”라며 “3년 내에 10-8 불확도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광철 박사는 “2~3년 후 키블저울을 가진 나라끼리 정밀도를 비교하게 된다. KRISS 키블저울이 ‘제1차 국제비교’에 참여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측정 작업은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밤에 하고 있다. 건물 안에 있는 다른 실험실에서 오는 미세한 진동마저 정밀한 측정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키블저울이 없으면 키블저울이 있는 나라에 가서 질량이 정확한지 교정받아야 한다. 이 박사는 “6월에 태국 질량실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질량 표준 관련 기술을 전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앞선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뒤에 있는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

국제도량형국은 단위 4개의 재정의에 대해 “큰 변화, 하지만 무 변화(huge change, but no change)”라고 설명한다. 단위가 개념적으로 크게 달라지나, 일상생활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국가 킬로그램 원기를 갖고 있는 KRISS의 질량실과, 산업현장에서 정확한 질량을 필요로 하는 업체를 연결하는 일은 ‘교정기관’이라고 불리는 전문업체가 한다. 교정기관들은 일정 주기로 KRISS를 찾아와 보유하고 있는 분동(分銅)의 질량이 정확한지 교정받는다. 질량을 재정의해도 변화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내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교정기관’부터는 기존과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이광철 박사는 카이스트 86학번으로, 포항공대에서 석사(초전도)·박사(질량센서 MEMS) 학위를 받고, 2003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합류했다.

현행 질량 정의 “킬로그램은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과 같다.”

새 질량 정의 “킬로그램은 플랑크 상수 h의 수치를 kg㎡s-1과 동일한 Js 단위로 나타낼 때, 6.62607015×10-34으로 고정함으로써 정의된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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