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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과학
[2499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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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의 과학자들]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열수력중대사고 안전연구부장

사고 막기 위해 사고 치는 남자

최준석  선임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안전을 연구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가 보였다. 지난 2월 23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최기용 박사(열수력중대사고 안전연구부장)를 만나러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었다. 플래카드 글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 안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보조를 맞추려고 내건 것으로 보였다. 최기용 박사는 대덕연구개발특구 북쪽 끝에 자리 잡은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하재주) 내에서 가장 많은 인력과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원전 안전실험을 위해 그가 관리하고 있는 실험동(棟)만 8개. ATLAS(경수로 열수력안전장치), RCP(원자료 냉각제 펌프) 성능안전시험 설비, ATHER(핵연료 봉다발 재관수 실험장치), BOMIX(붕소 혼합현상 규명장치). 내겐 모두 낯선 시설이다.
   
   최 박사의 직함에 적힌 ‘열수력중대사고안전연구’라는 문구는 그가 하는 일을 말한다. 그는 ‘열수력 안전’과 ‘중대사고 안전’ 두 가지 분야를 관장한다. 이 중 중대사고는 원전에서 설계 당시 예상을 뛰어넘는 사고를 말한다. 최 박사는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1979), 러시아 체르노빌(1986), 일본 후쿠시마 원전(2011) 사고가 실제로 발생한 3건의 중대 사고”라고 말했다. ‘중대 사고 안전’ 분야 말고 ‘열수력 안전’이 최 박사의 연구 분야다. 원전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온도를 떨어뜨리는 일이 ‘열수력 안전’이라고 할 수 있 다.
   
   최 박사는 사무실 벽 책꽂이에서 세 권의 자료집을 꺼내 보여줬다. 자료집 표지에는 영어로 ‘International Standard Problem No.50(국제 표준 문제 No.50)’라고 쓰여 있다. A4 사이즈이고 각 권은 수백 쪽 분량이었다. “혼신을 다해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작이다.” 최 박사는 “보고서 3권을 혼자 다 썼다”면서 “이 자료집으로 명예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어로 쓰인 두툼한 자료집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노고를 말하고 있었다. 이 자료집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의 NEA(원자력에너지기구)가 2012년 2월에 발행했다. 보고서를 만들 때 최 박사가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열수력안전부의 과제책임자였고, 당시 열수력안전부장은 백원필 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이었다.
   
   최 박사에 따르면, NEA는 원전 안전성 강화를 위해 원전 선진국에 관련 정보를 국제사회와 공유하도록 권장한다. NEA가 운영하는 안전 관련 프로그램 중 하나가 ISP(International Standard Problem). “원전 선진국이 그간 49건의 안전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한국은 50번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ISP 프로그램을 NEA와 함께 운영한다는 건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원전 안전 관련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ISP50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었던 건 ‘미니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실험장비 ATLAS를 수년간 운영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가능했다. ATLAS는 백원필 현 부원장이 2006년에 완성했으며, 이 거대한 장비에 여러 가지 상황을 주고 실제 원전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최기용 박사의 첫 사무실은 수십m 높이의 ATLAS가 들어있는 실험동 한쪽에 있었다. 그는 이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ATLAS를 붙잡고 연구해왔다.
   
   “실제 원전을 갖고 온갖 유형의 실험을 할 수는 없다. 다른 물건은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충돌시켜 보기도 하지만 발전소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현상이 어떨지를 시뮬레이션해 본다.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모르는 게 많다. 예측을 위한 실험을 하고, 실험을 위한 모델을 만든다.”
   
   ATLAS는 실제 원전과는 달리 우라늄을 연료로 하지 않고 전기로 돌린다. 이 미니 발전소를 돌리는 목적은 사고 예측을 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안전해석 전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아틀라스는 전산 프로그램 검증이 목적이다. 실험 결과를 가지고 소프트웨어를 개선한다.”
   
   프로그램상에서 사고를 일으켜 보고, 프로그램이 맞냐 틀리냐 확인하기 위해 ATLAS를 돌린다. 이 전산 프로그램은 파일 사이즈가 대단히 크다. “미국에서는 이 전산 프로그램 개발에 20년을 쓴다.” 최 박사에 따르면, 원자력안전법에 ‘설계기준 사고’가 명시되어 있다. 원전을 설계할 때는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전산 프로그램을 써서 안전사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 결과 괜찮다는 내용의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관련 규제기관에 제출한다. 그러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안전성 검증 프로그램을 돌려보고, 한수원의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검증한다. “가동 중인 원전은 10년마다 주기적인 안전성 평가를 받는다. 계산을 다시 한다. 안전하게 나오면 10년 연장한다”는 것이 최 박사의 말이다.
   
   “ATLAS를 3년간 가동해 축적한 자료를 갖고 ISP50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ISP50은 2009~2011년에 가동했다. 13개국 21개 기관이 이 프로그램 회원이었다.” DVI 배관 50% 사고를 모의한 데이터들을 당시 공개했다. 원자로에 비상 냉각수를 주입하는 관인 DVI 배관이 파손되면 위험하다. 때문에 이를 시뮬레이션해 봤다. 압력, 온도, 유량, 수위 등 무려 1500개 변수를 봐야 한다.
   
   프로그램 운영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을 갖고 최 박사는 유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ISP50이 무료 프로그램이라면 2014년 4월에 시작한 ATLAS-OECD 프로그램은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고 시작했다. “2017년까지 3년간 진행했다. ATLAS를 이용해 8개 분야 실험 데이터를 생산했다. 독일 원전기업 AREVA와 한국원자력연구원 두 곳이 NEA(원자력에너지기구) 후원의 원전 안전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한국이 독일보다 고압 실험장치 능력이 낫다고 자부한다.”
   
   발전소 전원 완전상실사고(station black-out) 모의실험, 피동보조급수계통 성능실험(냉각수 펌프를 쓰지 않고도 노심 잔열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 등을 실험했다. 3년간 6번 프랑스 파리와 대전을 번갈아가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돈을 받고 하니 정확한 데이터를 얻어내야 한다. 새벽 5시에 나와서 ATLAS 가동 준비 작업을 하고 늦으면 밤 10시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다.”
   
   최 박사는 “독일, 벨기에, 프랑스가 우리 데이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추가로 데이터를 얻고 싶다면서 회의 때마다 주문해왔다. 그래서 제2차 OECD-ATLAS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착수한 2차 프로젝트에는 1차 회원국들에다 체코가 새로 참여했다. 체코가 한국 원전에 관심 있다는 뜻으로 최 박사는 해석했다.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사고에 연구를 집중한다. 4월 말 아부다비에서 프로젝트 리뷰그룹 미팅이 있고, 10월 대덕에서 시험을 보여주는 모임이 예정돼 있다.”
   
   그의 직속상사였던 백원필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최 박사에 대해 “원전 안전 분야에서 글로벌 톱 10 학자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최 박사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87학번이고,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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