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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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이융교 박사는 하늘에 오래 떠 있는 무인 비행체 개발을 17년째 해왔다. 2001년부터 처음 9년은 비행선을 개발했고, 2010년 이후는 ‘고고도 태양광 무인기’를 개발해왔다. 현재 보직은 공력(空力)성능연구팀 팀장.

이 박사는 서울대 항공우주학과 출신이고, 미국 항공산업의 중심지인 캔자스주(로렌스 소재 캔자스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3월 9일 대전 대덕개발연구특구의 항우연에서 만난 이 박사는 “‘항공우주’에서 ‘항공’은 공기가 있는 영역, ‘우주’는 공기가 없는 영역을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공기가 희박한 성층권을 나는 항공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성층권(지상 10~50㎞ 구간)을 나는 대표적인 무인기가 미국 정찰기 ‘글로벌호크’다. 18㎞ 상공을 소리 없이 날아간다. 한국도 도입하려 했었다. 이 박사가 만드는 ‘고고도 태양광 무인기’는 글로벌호크와는 좀 다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주자인 페이스북이 만들고 있는 무인기와 비슷하다.

페이스북은 무선 인터넷인 와이파이(Wi-Fi) 서비스를 통신 오지 지역에 제공하기 위해 장기체공 무인기를 개발 중이다. 항우연이 만드는 고고도 무인기 역시 장기체공을 목적으로 하며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 감시, 태풍의 이동경로 근접 촬영, 대기오염 관측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이 박사는 말한다. 이 박사팀이 개발한 EAV-3(Electrical Aerial Vehicle)는 2016년 8월 글로벌호크의 비행고도인 18.5㎞에 도달해 90분간 비행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EVA-3는 무게 53㎏으로 성인 한 명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 초경량 탄소섬유 복합재를 사용했고, 날개 길이는 20m다.

성층권에 항공기를 올리려는 건 이 지역의 대기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성층권 20㎞ 상공에는 제트기류와 같은 바람이 없다. 물론 눈비도 없다.”

이 박사는 공력해석과 항공기 형상설계 전문가다. ‘공력해석’으로 박사 논문을 썼다. 바람의 힘을 해석하는 게 공기역학, 즉 공력이다. 공력해석을 바탕으로 항공기 모양을 만드는 일이 형상설계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KT-1 훈련기 공역 설계와 성능해석 작업을 하다 2001년 항우연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후 계속해서 성층권 비행체 연구를 해왔다.

“18.5㎞ 상공은 저밀도 공역이다. 공기 밀도가 지표면의 15분의 1, 공기 압력이 20분의 1이다. 공기 밀도가 작아도 비행기가 앞으로 나가려면 프로펠러 형상 디자인을 잘해야 한다. 날 힘을 만들기 위해 날개는 커야 하고 몸체는 가벼워야 했다.” 이 박사는 “비행선을 개발하기 전까지 항우연에는 성층권 프로젝트가 없었다. 그래서 부경대 기상학과와 같이 일하면서 성층권 기상 환경에 관해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비행선 개발에서 이 박사는 프로펠러 형상 설계를 했다. 헬륨 비행선은 지상 3㎞까지 올라갔으나 기체 크기가 너무 커져서 실용화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개발 프로젝트를 접어야 했다.

이 박사는 비행선 프로젝트에서 습득한 프로펠러 형상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고고도 무인기’ 개발 때는 비행기 전체 형상 설계를 할 수 있었다. 이 박사가 팀장으로서 날개와 동체가 어떻게 생기면 좋겠다고 전체 그림을 그렸고 이후 프로펠러, 꼬리날개와 꼬리날개 조종면, 주날개 조종면 개발을 팀원들에게 맡겼다. 팀원은 모두 15명. 이 중 절반은 풍동(風洞)실험(wind tunnel test)을 했다. 풍동실험은 비행기가 날 때 어떤 힘을 받는지 미리 모델을 만들어 바람 터널 속에 집어넣고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른 인력은 공력해석과 비행기 설계를 맡았다.

2011년 첫 독자모델인 EAV-2가 나왔다. 2013년 체공시간 24시간을 넘기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25시간 체공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10㎞ 고도에 도달했다. 그리고 2015년 처음으로 성층권 14.2㎞에 진입했다. 이 박사는 “이때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해에는 18.5㎞ 고도에 올라갔다.

가볍고 튼튼한 날개를 만들기 위한 ‘날개 휨 실험’을 많이 했다. 기체 제작은 성우엔지니어링(대표 김성남)이 했다. 이 박사는 “성우엔지니어링이 고생 많이 했다”고 말했다. ‘모터’도 시장에 맞는 게 없어 직접 개발해야 했다. 모터 설계 전문가인 정상용 성균관대 교수(정보통신공학부)가 해줬다. 제작은 대덕 테크노밸리의 업체 ‘스마텍’(대표 정순백)이 했다.

배터리 전력제어도 중요한 부분. 태양전지에서 나오는 전력을 저장하고, 태양전지에서 전력이 너무 세게 들어오면 차단해야 한다. 또 영하 70도란 낮은 온도에서 배터리가 제 성능을 발휘해야 한다. 카이스트 박사인 김성철 대표가 만든 ‘티움리서치’가 이 일을 해냈다. 유콘시스템(대표 전용우·송재근)은 지상관제 장비를 제작했고, 솔레이텍(대표 이만근)은 태양전지를 날개에 붙이고 모듈을 만들었다.

6년간 83억 들여

지상 실험은 대덕 항우연의 ‘비행시험동’에서 했다. 24시간 동안 계속 비행기를 돌리며 시험했다. 결과가 잘 나오면 다시 분해해서 무진동 트럭에 실어 고흥항공센터로 갔다. “2012년부터는 계속 무인기를 싣고 갔다. 비행실험을 위해 고흥에 100번 넘게 갔을 거다.” 그 과정에서 6, 7회 추락 사고도 경험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AUVSI 전시회에 참가했다. 그때 페이스북 사람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봤다고 한다. “‘너희는 어떻게 했냐?’ ‘고고도 갈 때 어떻게 가고 배터리 매니지먼트는 어떻게 했냐’ 등등을 물어왔다. 그래서 내가 ‘왜 묻느냐? 차라리 기술이전을 해가라’고 웃으며 말해줬다.”

이 박사는 작년 한 해는 다른 일을 했지만 올해는 고고도 무인기의 후속 개발 프로젝트에 다시 들어간다. “실시간으로 지상을 관측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한다. HD급 영상을 지상에서 바로바로 받을 수 있게 하려 한다. 지금까지는 촬영한 걸 나중에야 볼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대용량 경량통신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고고도 무인기 상용화를 위해서는 1주일간 체공할 수 있어야 하며 임무 장비를 실을 수 있는 무게를 더 늘려야 한다.”

고고도 무인기 프로젝트에는 6년간 83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이 박사는 “태양광 무인기로 성층권에 간 건 세계에서 세 번째”라며 “당장 못 쓴다고 내치지 말고 차세대 배터리가 나오면 잘 쓸 수 있는 만큼 가능성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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