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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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원장 임철호·이하 항우연) 유철성 박사는 말을 아꼈다. 유 박사는 나로호 후속 우주발사체 프로젝트인 ‘한국형 발사체’ 개발자 중 한 명. 엔진 연소기·가스발생기 구조설계 전문가다. 유 책임연구원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떠벌이는 성격이 아닌 듯했다. 그는 “혼자 한 게 아닌데”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주지 않았다. 연소기팀 최환석 팀장은 그에 대해 “우직하시다”고 말했다.

항우연은 한국 독자 기술로 만든 첫 위성발사체를 오는 10월에 발사한다. 75t 추력을 갖는 1단 엔진을 사용한 시험발사체다. 항우연은 이어 75t 엔진 4개를 묶은 3단형 발사체를 2021년 3월까지 개발 완료할 예정이다.

지난 3월 12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항우연 본원 내 유 박사 사무실 건물에 가니 1층 입구에 액체로켓 엔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항우연은 크게 두 종류의 발사체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과학로켓(KSR) 시리즈 3개(1990~2003)와 나로호(2002~2013)다. 과학로켓들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짧은 시간 동안 탑재된 관측 장비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로호는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리는 위성발사체였다. 나로호의 2단에 사용된 엔진은 항우연이 개발했으나 1단에 사용된 주 엔진이 러시아 제품이었다. 이런 축적된 발사체 개발 경험을 갖고 항우연은 2010년부터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해왔다.

유철성 박사는 1층에 전시된 30t급 모형 엔진(2006)을 가리키며 “엔진을 구성하는 주요 부품은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그리고 연료와 산화제(액체산소)를 공급하는 밸브류와 각종 라인, 센서들”이라고 했다. 그는 작동원리와 관련 “가스발생기에서 만든 가스로 터보펌프를 구동시키고, 구동된 터보펌프에서 연료(등유)와 산화제(액체산소)를 고압으로 가압하여 연소기로 보낸다. 연소기에서 연료와 산화제를 연소시켜 열에너지를 얻고 이게 운동에너지로 바뀌며 추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형 발사체의 1단 및 2단 엔진은 형상 및 사이즈가 이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충남대 기계공학과 85학번. 그는 1999년 항우연에 들어와 KSR-3 개발에 참여했으며 이후 20년을 로켓 연소기 설계·해석·개발 업무를 해왔다.

유 박사는 현재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본부 내 연소기팀 소속이다. 연소기팀에는 ‘설계시험 파트’ ‘열유체 파트’ ‘구조제작 파트’ 3개 파트가 있고, 유 박사는 구조제작 파트 소속이다. 구조제작 파트에는 유 박사를 포함해 3명이 일한다. 설계시험 파트가 요구 성능을 만족시키는 연소기를 설계하면, 구조제작 파트는 이를 제품으로 구현한다. 상세설계와 구조해석, 공정설계와 제작관리가 주 업무이다.

“액체로켓 엔진 연소기는 고온고압이라는 극한 조건에서 작동한다. 연소기 챔버에서 생성된 연소가스 온도는 섭씨 3500도다. 이 온도에서는 대부분 금속이 녹아내린다. 따라서 연소기가 열과 압력에 의해 손상되지 않게 설계, 제작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형 발사체는 액체로켓 엔진이다. 액체로켓은 주로 위성발사체로 사용된다. 군사용 미사일은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연료가 채워져 있는 고체로켓형이다.

유 박사가 항우연에 들어가기 전 한국은 액체로켓 연소기는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업무를 가르쳐줄 전임자도 없었다. “모든 게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다.” 그는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기술을 개발할 때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꼼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설계해석 기술은 발사체 선진국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의 유무가 큰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기술은 있으나 경험이 없었다. 경험이 반영된 설계뿐만 아니라 제작 또한 힘들었다. 만약 외국 전문가가 1분만 말해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하자.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해결에 몇 년이 소요될 수도 있다.”

한국형 발사체 연소기·가스발생기 개발은 2003년부터 시작했다. 나로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병행했다. 축소형 연소기와 가스발생기를 먼저 개발했다. 이어 30t급 연소기, 그리고 75t 엔진용, 7t 엔진 순으로 개발했다. 한국형 발사체

1단과 2단에는 75t급 엔진이 들어가고, 3단에는 7t급이 들어간다. 같은 75t 연소기라도 1단과 2단은 노즐부의 형상 및 크기가 다르다. 2단 연소기에는 노즐팽창비가 큰 확대노즐부가 있다. 고공에서 가동하기 때문이다. 고공 환경에 맞춰 최대 추력을 내려면 노즐팽창비가 증가한다.

“액체로켓 엔진 선진국들도 엔진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다. 성능검증 연소시험 및 이때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4~5년 걸렸다. 연소기는 요구되는 성능, 즉 추력 빛 비추력 등 여러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열손상뿐 아니라 구조 변형이 발생하면 안 된다.”

75t급 연소기의 경우 설계에 2~3년, 초도품 제작에 1년 이상이 소요됐다. 유 박사는 “소재부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열전도도와 강도가 좋은 구리 합금이 재생냉각챔버에 사용되는데, 대변형에 의한 파손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문제 해결에 4~5년 걸렸다. 또 연소기를 구조적으로 안정되게 설계하면 발사체 중량이 증가하는데 발사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소기 중량을 가볍게 해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소한의 구조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중량을 최소화하는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연소기 제작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협력업체 비츠로넥스텍(대표 이병호)이 했다. 연소기 부품뿐만 아니라 제작 완료 후 최종 구조시험도 비츠로넥스텍에서 수행했다. 유 박사는 “연소기 구조시험은 고압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구조시험 중 사소한 실수는 큰 위험을 초래하고, 오랜 시간 제작한 연소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 해당업체에서 초기와 최종 구조시험을 할 때 유 박사는 직접 안산에 갔다. 시험 공정 및 조건을 확인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유 박사는 임무 수행의 어려움에 대해 “속이 바싹 타는 정도로는 표현이 안 된다”고만 말했다. 그가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마디 더 했을 때, 나는 말을 아끼는 충청도 출신 엔지니어가 감내해낸 고통을 조금은 더 느낄 수 있었다.

연소기 시험의 관건은 연소불안정. 유 박사는 이 분야가 다른 연구원이 담당하는 분야여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외국도 이 문제 해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도 초기에 연소불안정이 일어났다. 연소기가 열손상을 일으켰다”고만 말했다. 30t급용 연소기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75t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 또한 해결에 수년이 걸렸다.

유 박사는 크게 성취감을 느낀 순간에 대해 “작년 초 75t 연소기의 연소시험에 성공했을 때”라고 말했다. 최환석 연소기팀장에게 유 박사가 가장 고마웠던 순간을 물었을 때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유 박사는 7t급 엔진에 들어갈 연소기·가스발생기 막바지 시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불철주야 일해온 그의 시선은 이제 10월 시험발사체 발사로 향해 있다. 올가을 시험발사체의 멋진 비행을 기대해 본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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