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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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48)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위원은 신경생리학자다. 뇌신경세포 간의 신호전달 및 전기활동을 연구한다. 그는 지난 4월 5일 대전 KAIST(한국과학기술원) E18동 3층에서 주간조선과 만나 “특정 뇌신경세포의 활동성 조정을 통해 뇌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조율기술 개발을 위해 3년 전 IBS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단장 신창섭) 소속의 연구 그룹 7개 중 하나인 ‘신경생리학 실험실’을 이끌고 있다. 박사후연구원 두 명, 박사과정 두 명 등 모두 6명이 함께 연구한다.

그가 속한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특정 파장의 빛(光)을 이용해 특정 세포를 흥분시키거나 억제하는 광유전학 연구를 한다. 이를 통해 실험동물의 인지 및 사회성과 관련한 행동 양상과 신경계 기능을 연구한다.

“광유전학은 시공간적으로 매우 높은 해상도를 갖고 있어, 신경기능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단점은 외과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다. 광섬유를 뇌 속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공간 해상도가 높으면서도 외과수술은 하지 않는, 초음파를 이용한 신경세포 기능 조절법을 고민하고 있다.” 초음파를 사용하면 마취할 필요도 없다. 초음파는 비교적 익숙해 사람들이 거부감도 없다.

뇌의 광범위한 영역을 겨냥한 초음파나 전기자극술은 많이 시행되어 왔다. 문제는 원하는 뇌 영역이나 특정 세포를 선택적으로 자극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박 연구위원은 “기존의 비침습적, 즉 외과수술을 하지 않는 신경조율기술이 가지는 낮은 시공간적인 해상도와 낮은 효과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신경조율기술이 필요하며, 우리 실험실이 그걸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유일의 ‘초음파 유전학(sono-genetics)’ 연구자다. 초음파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바이러스를 이용해 원하는 특정 신경세포에서 발현시키고, 이후 낮은 강도의 초음파 자극을 통해 단백질이 발현된 세포만 자극하는 게 ‘초음파 유전학’이다. 초음파 유전학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영어판에도 단어가 올라오지 않았을 정도로 새로운 분야다. “외국에서 초음파 유전학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개념 관련 논문이 최근 나오고 있다.”

박 연구위원 실험실은 초음파 신경조율기술을 통해 뇌 속의 비(非)신경세포인 신경아교세포와 억제성 신경세포 기능을 조절하고, 이를 다양한 뇌질환 모델에 적용해 효과를 검증하고자 한다. 신경아교세포는 지금까지 신경세포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한다고만 했으나 최근에는 기억 및 학습을 포함해 뇌 발생 및 분화 등 다양한 신경세포 활동에 관여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비신경세포를 대상으로 한 신경조율기술 연구는 뇌 기능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흥분성 신경세포에 비해 ‘비신경세포’ 중심의 연구는 ‘비주류’처럼 인식돼 상대적으로 덜 연구되어왔다. 박 연구위원은 “비신경세포의 흥분성을 초음파를 통해서 선택적으로 조종하고, 이를 통해서 인접한 신경세포의 기능을 바꾸는 게 연구의 목표”라고 말했다. 비신경세포의 활성도를 조절함으로써 신경계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신경세포 기능 이상으로 생긴 신경질환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정 행동 관장하는 뇌의 영역을 찾아라

낯선 분야 취재를 하느라 머리가 빡빡해져 잠시 쉬기 위해 실험실을 보여달라고 있다. 실험실에 가니 테이블 위에 눈에 띄는 게 있다. 박 연구위원이 “생쥐의 살아 있는 뇌 절편”이라고 알려줬다. 유리 실험용기에 흰색의 조각 두 개가 들어 있다. 뇌 절편이 들어 있는 액체에 관으로 뭔가 공급되는 듯 자글자글 기포가 나온다. 뇌 조각을 보기는 처음이다. “인공뇌척수액에 담가놓고, 산소와 이산화탄소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뇌세포가 최대 10여시간까지 살아 있게 된다.”

박 연구위원이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연구는 조현병이다. 조현병에 걸린 생쥐를 연구 모델로 사용한다. 억제성 신경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특정 유전자가 망가진 생쥐를 공동 연구그룹인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들여왔다. 청정화 과정을 거친 뒤 새끼를 번식시켰다. 기억 및 학습, 사회적 행동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 실험을 수행하고 이후 살아 있는 뇌를 꺼낸다. 뇌 활동도를 포함해서 신경세포 활동도, 신경세포 간 전달되는 전기 신호와 구조 변화를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연구실 내 연구원과 학생들은 실험 이후에도 데이터 분석 및 최신 문헌을 비교 분석하고 얻어진 결과에 대한 해석을 위해 토론 준비를 한다.

내가 보기에 박 연구위원의 연구는 ‘막노동’에 가까웠다. 박 연구위원은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 그리고 다양한 연구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렸던 연구를 IBS에 와서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시작이며 가야 할 길은 멀지만, 그렇다고 막연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실험실 한 층 아래에 동물사육실이 있다. 수십 종의 유전자 변형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을 대상으로 뇌의 어느 영역이 어떤 행동 양상과 관련돼 있느냐를 알아내려 한다. 특정 병에 걸린 모델 동물을 통해 뇌의 특정 영역이나 세포가 해당 질환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한다. 그중에는 박 연구위원이 실험하는 조현병 증상 생쥐도 있다. 현재 50마리의 생쥐가 있다. 나는 생쥐도 조현병에 걸리는 줄 처음 알았다.

“동물에게도 조현병이 있다. 동물이 망상, 환각, 무논리증과 같은 증상을 갖고 있는지 확인은 어렵지만, 일부 조현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 사회성, 과다한 움직임, 전(前)자극억제(PrePulse Inhibition), 기억 이상이 관찰된다.”

박 연구위원은 비신경세포와 억제성 신경세포가 조현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뇌파를 이용한 전기생리학 방법으로 연구한다. 뇌파 변화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뇌파를 잘 읽으면 행동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신경과학자는 뇌파 변화가 행동과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신경조율기술을 통해 신경세포 기능을 변화시키면 뇌의 전기활동도를 포함해 뇌파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행동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조현병 연구는 마무리 실험을 하면서 논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초음파 유전학을 이용한 신경조율기술 개발과 관련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 만큼 IBS가 연구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올해 안에 결과를 학계에 보고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새로운 방식의 신경조율기술 개발 및 관련 기술 보급과 타 연구자들과의 공유가 목표라고 말해 내 귀를 솔깃하게 했다. 박 연구위원은 초음파에만 반응하는 단백질과 관련해서는 “무슨 단백질인지는 아직 밝힐 수가 없다”면서 “단백질이 성공적으로 뇌세포에서 발현된 것까지 확인했다”고만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신경생리학 박사학위를 2004년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신경과학부에서 박사후연구원과 연구원(RA)으로 일했고, 2012년부터 제주대 의대 생리학교실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국가과학자 1호인 신희섭 박사가 이끄는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 정년을 보장받은 영년직 연구위원으로 2015년 합류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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