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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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 정선주 박사는 제2의 지구를 찾는 여성 천체물리학자다. 지구형 행성을 찾는 일은 언젠가 인류가 지구를 떠날 때를 대비해서, 또 외계 행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필요하다. 지난 5월 2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천문연 ‘이원철 홀’ 3층의 한 사무실에서 정 박사를 만났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한쪽 벽면에 대형 모니터들이 이어 붙어 있고, 화면 위쪽에 ‘외계행성 탐색 시스템(KMTNet)’이라고 쓰여 있다. 모니터 화면 하나하나에는 똑같이 생긴 천문대 세 곳의 외관 모습이 떠 있다. 실시간 화면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칠레의 관측소들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3대의 관측소가 돌아가며 외계행성을 찾고 있다.”

정 박사가 가리키는 화면을 보니, 남아공은 오전 4시28분, 호주는 낮 12시28분, 칠레는 오후 11시28분이다. 천문연이 2009년 300억원을 들여 건설에 들어가 2015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시설들이다. 정 박사는 “동일한 망원경으로 별을 24시간 관측하는 건 천문연의 KMTNet이 세계 처음”이라며 “지금은 칠레에서 별을 관측한다. 몇 시간 후 칠레에 아침이 찾아오면 호주가 이어받아 관측한다. 또 호주에 아침에 찾아오면 남아공에서 하늘을 관측한다”라고 말한다.

천문연에는 하늘을 관측하는 망원경 종류에 따라 조직에 이름을 붙였다. 광학망원경으로 관측하는 곳은 광학천문본부, 전파망원경으로 연구하는 곳은 전파천문본부다. 정 박사는 한국광학천문본부 소속. 그중에서도 변광(變光)천체그룹에서 일한다. ‘변광’은 별의 밝기가 변하는 걸 말한다. 정 박사는 변광천체그룹이 수행하는 두 가지 과제 중 하나인 ‘변광 현상을 이용한 별과 외계행성 탐색 연구’ 과제 책임자다.

외계행성 찾기는 최근 천문학계의 큰 흐름이다. 천문연이 KMTNet 사업 추진을 위해 만든 151쪽 분량의 책자 ‘2008 외계행성 탐색 시스템 개발 기획연구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외계행성 연구는 현대 천문학의 핵심 주제’이다. 보고서는 “1990년대가 외계행성의 존재를 입증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본격적으로 외계행성과 외계생명체 연구를 하는 천문학의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외계행성은 1991년 처녀자리에 있는 중성자별 PSR 1257에서 최초로 관측됐다. 미항공우주국 사이트에 따르면 현재까지 3725개의 외계행성이 확인됐다.

정선주 박사는 외계행성을 ‘미시중력렌즈’ 방식으로 찾는다. KMTNet(Korea Microlensing Telescope Network)이란 이름에 ‘미시중력렌즈(Microlensing)’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 ‘미시중력렌즈’ 방식에 대한 천문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정 박사는 충북대 물리학과 95학번으로, 2008년 ‘미시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한 외계행성 탐색’(지도교수 한정호)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쓴 바 있다. 정 박사는 2009년 박사후연구원으로 천문연과 인연을 맺었고, 2012년 정직원이 되었다. KMTNet 내 중력렌즈 연구자는 모두 5명이고, 정 박사가 이중 선임이다.

나는 중력렌즈 현상에 관해서는 들어봤으나, 미시중력렌즈 현상은 낯설었다. 중력렌즈는 먼 곳의 별이나 은하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의 관측자를 향해 오다가 다른 천체(중력렌즈)와 만날 경우에 광학렌즈에 의해 빛이 휘어지는 듯이 빛의 경로가 굴절되는 천체물리학 효과를 말한다. 하나의 빛인데, 관측자가 보기에는 여러 개로 갈라지거나 일그러지며 밝기도 변한다. 이 빛을 잘 분석하면 중력렌즈 역할을 한 중간 천체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중력렌즈 효과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독일계 미국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바 있다.

중력렌즈 현상을 촬영한 사진. 원 모양의 빛은 가운데 있는 별에 의해 뒤에서 오는 별빛이 퍼지면서 나타난 것이다.
중력렌즈 현상을 촬영한 사진. 원 모양의 빛은 가운데 있는 별에 의해 뒤에서 오는 별빛이 퍼지면서 나타난 것이다.

4가지의 외계행성 관측법

정 박사는 “중력렌즈가 은하가 일으키는 천문학 효과라면, 미시중력렌즈는 별이나 행성처럼 질량이 작은 천체가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별이 있고, 그 별을 보는 관측자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중력렌즈로 작동하는 다른 별이 진입하고 있다고 하자. 이때 중력렌즈 별이 행성을 갖고 있을 때와, 행성을 갖고 있지 않을 때 별의 밝기·모양이 달라진다. 정 박사는 벽면의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가우스 곡선 알죠? 행성이 없을 때는 별의 광도(光度)곡선이 대칭적인 모양이다. 그런데 행성이 있으면 대칭적인 광도곡선에 불규칙성이 나타난다. 이같은 밝기 변화는 행성이 있다는 신호다.” 정 박사가 가리키는 광도곡선은 종 모양. 행성신호라는 부분에 높은 선이 짧고 날카롭게 나타나 있다.

정 박사는 외계행성 관측법으로 4가지를 설명했다. ‘직접 관측’ ‘시선속도(radial velocity)’ ‘횡단(transit)’ ‘미시중력렌즈’ 등이다. ‘직접 관측’은 망원경으로 행성을 직접 본다. 다른 세 가지 방법은 간접적으로 행성을 관측한다.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 관측이 어렵지만, 행성을 갖고 있는 별을 잘 관측하면 그 별에 행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선속도’ 측정법은 1990년대 중반 외계행성 탐사가 시작된 이후 초기 10년간 성과를 많이 올렸다. 가령 태양은 미미하지만 행성들의 중력 영향을 받으며, 그 질량 중심이 태양 중심에서 약간 밖으로 이동해 있다. 별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행성이 있는 별은 관측자가 볼 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운동을 반복한다. 그 운동속도(도플러 효과)를 측정하면 된다.

또 다른 외계행성 관측법은 ‘횡단’이다. 정 박사는 “2009년 발사된 미국의 외계행성 탐색 우주망원경 케플러가 ‘횡단’법으로 외계행성 2327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횡단법은 별 앞을 행성이 지나가고, 그걸 관측자가 포착하는 방법이다. 행성이 별 주변을 돈다 해도 지구의 관측자가 직접 관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별의 밝기가 일시적으로 약해지므로 이를 관찰하면 행성이 지나감을 추정할 수 있다.

미국은 케플러 망원경에 이어, 후속 외계행성 탐색 망원경인 TESS 우주망원경을 지난 4월에 쏘아 올렸다. 유럽도 외계행성 탐색 전용 우주 망원경을 진작에 우주에 올려놓았다. COROT 외계행성 탐색 망원경을 2006년에 쏘아 올렸다. 한국은 지구궤도나 우주에 망원경을 쏘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지상에서만 관측한다. “저비용 고효율의 지상 관측 시스템을 갖춰 지구형 외계행성을 발견하겠다”는 게 KMTNet의 소박한 목표다.

KMTNet은 우리은하 중심을 집중적으로 관측한다. “우리은하의 팽대부(bulge)에는 수없이 많은 별이 모여 있다. 그곳을 관측한다. 별이 많아야 미시중력렌즈 방식으로 행성 신호를 잡아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시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한 외계행성 발견 가능성은 다른 방법에 비해 낮다. 두 개의 별이 관측자가 보기에 시선 방향으로 일치해야 미시중력렌즈 현상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관측기술로는 별 1000만개를 봐야 1개 행성신호를 잡을 수 있다. 때문에 넓게 촬영해야 한다. 그리고 자주 같은 곳을 찍어야 한다. 정 박사는 “행성의 질량이 가벼울수록 중력렌즈 효과에 의한 행성신호가 나타나는 시간이 짧다. 행성신호 지속 시간이 목성형 행성은 2~3일이고, 지구형 행성은 1~2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은 질량의 행성 검출을 위해서는 같은 별을 잦은 빈도로 촬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KMTNet은 광시각 렌즈를 갖고 있어 한꺼번에 넓은 지역을 관측, 촬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KMTNet은 15분에 한 번씩 우리은하 중심의 네 구역을 돌아가며 관측한다. 정 박사는 “미시중력렌즈 방식이 은하를 넓게 들여다보고 있어, 우리은하 전체에 위치한 행성의 분포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했다.

‘시선속도’ 방식과 ‘횡단’ 관측 방식에 비해 미시중력렌즈 방식은 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을 찾는 데 좋다. 태양계로 말하면 태양에 가까운 금성, 수성보다는 지구, 화성, 목성을 찾기에 유리하다. “‘횡단’ 방식은 모성(母星)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 공전주기가 짧은 별을 찾는 데 좋다. 별 앞을 지나는 모습을 자주 관측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반면 우리가 미소중력렌즈 방식으로 찾고 있는 별은 주기가 길다.”

정 박사 사무실은 인터뷰를 하느라 앉아 있었던 회의실 옆에 있다. 자그마한 방. 대형 컴퓨터 모니터 두 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어린 딸이 그린 그림이 책상 주변에 잔뜩 붙어 있다. 21세기 천문학자는 책상 앞에서 일하지, 천문대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일하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안드로메다 은하를 발견한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윌슨산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하던 시절은 옛날 이야기다. 남반구 세 곳의 KMTNet 망원경의 CCD카메라(4억화소)에 저장된 별빛 데이터는 천문연에 있는 서버컴퓨터로 전송되어 온다. 자료는 분석을 위한 측광처리를 거쳐 천문연 내부 사이트에 올라온다. 그러면 연구자 개개인이 관측일로부터 며칠 지나 이 데이터를 보게 된다.

올 상반기에만 4개의 외계행성 발견

천문연은 2015년 10월 연구를 시작, 올 상반기에만 외계행성 7개를 발견했다. 지난해 4월 천문연 이충욱 박사 등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구질량 외계행성을 발견해 주목받았다. 이 행성은 지구 질량의 1.43배이고 지구로부터 1만3000광년 떨어져 있다.

“이 행성은 크기는 지구와 비슷하나, 이 행성이 돌고 있는 별이 너무 작았다. 태양 질량의 7.8%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행성의 표면온도가 차갑다. 태양계 외곽의 명왕성보다 낮다.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정 박사는 출근하면 KMTNet이나 OGLE가 보내오는 ‘사건’ 리스트에서 가우스 곡선에 변형이 보이는 걸 살펴보는 게 일과다. 크게 세 가지 사건이 거기에 나타난다. 행성 사건, 갈색왜성 사건, 쌍성 사건이다. 정 박사는 “솔직히 갈색왜성을 많이 발견하고 있다. 행성 주위를 도는 외계달(exo-moon)로 추정되는 사건도 있다. 곧 출판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연구자로서 “우리은하의 행성 분포를 통계적으로 알고 싶다”고 말했다.

쌍둥이 지구를 찾는 건 우주로 나아가는 인류의 새로운 목표다. 그곳에 누군가 살고 있을까? 아니면 코스모스에는 우리밖에 없는가? 정선주 박사와 같은 행성 추격자가 그 의문에 답할 것이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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