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에 분해되는 종이 생수병. ⓒphoto Youtube
바닷물에 분해되는 종이 생수병. ⓒphoto Youtube

바닷물에 분해되는 종이 생수병을 개발한 영국의 사회적 사업가. 제임스 롱크로프트. ⓒphoto Youtube
바닷물에 분해되는 종이 생수병을 개발한 영국의 사회적 사업가. 제임스 롱크로프트. ⓒphoto Youtube

지난 5월 1일(현지시각),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사회적 기업가 제임스 롱크로프트(James Longcroft·27)가 개발한 일회용 종이병(Paper Bottle)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더 나은 지구를 위한 생수병(Boxed water is better for earth)’이라는 이름의 이 종이병은 식물 추출물과 종이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바다에 던져 넣으면 불과 3주 만에 분해가 된다.

이 생수병을 만든 롱크로프트는 영국 더럼(Durham)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재원. 그는 대학 졸업 후인 2016년 비영리 생수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를 세운 목적은 단 하나. 생수 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을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에 식수를 제공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선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있었다. 아프리카에 제공할 생수가 담기는 페트병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이었다. 플라스틱은 현대 화학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자연분해되는 데는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린다. 특히 생수병은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플라스틱을 대체할 생수병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의 목표는 간단했다. 바다나 토양을 더럽히지 않으면서도 생수만큼은 신선하게 유지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병의 외부는 재활용할 수 있도록 종이로 만들고, 물이 새지 않게 내부는 방수처리를 하기로 했다. 또 병의 형태를 지탱할 만큼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롱크로프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개월간 실험을 반복했지만 실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모든 재료를 나무와 식물 등에서 추출한 후 몇 가지 성분을 섞어 나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물이 새기도 하고 병이 힘 없이 주저앉기도 했다. 그렇게 거듭되는 실패 끝에 어느 날 원하던 종이병이 완성되었다.

실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종이병을 바다에 던져 넣거나 땅에 매립하여 분해되는 과정을 살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몇 시간 지나 분해가 시작됐고 바닷물에서는 3주 만에 완전히 녹았다. 더구나 이 종이 생수병은 90% 이상 재활용이 가능했다. 재활용 비율이 약 14%인 페트병하고는 비교가 안 됐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적 종이병이라서 바다 생물이 먹게 되더라도 안전하고 땅에 버려지거나 매립될 경우 종이가 산성 상태의 토양을 중화시키는 이점도 있었다.

대량생산 위해 크라우드펀딩

롱크로프트는 친환경적 종이병이 생수병 업계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종이병의 생산비용은 페트병보다 5%가량 높지만 “플라스틱 물병만이라도 쓰지 않고 줄인다면 자연환경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는 친환경적 일회용 종이병을 상업적 규모로 생산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만5000파운드(약 3700만원)를 모았다.

사실 하루에도 수십t씩 쏟아져 나오는 일회용 페트병은 지구가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원유로 만든 플라스틱은 첨가하는 재료나 방법에 따라 100여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염화비닐(PVC), 폴리스티렌(PS), 페트(PET), 에이비에스(ABS) 등이다. 모두 가열하면 녹는 열가소성 플라스틱들이다.

플라스틱은 수많은 분자들을 인공적으로 결합시켜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다. 탄소 원자의 긴 배열에 약간의 다른 원자들이 붙어 있다. 이 탄소 배열은 자연계에는 없다. 이는 플라스틱이 자연적으로 ‘생체 분해’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은 녹여서 재사용할 수 있지만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을 함께 녹여 사용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이를테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페트병, 포장지, 기계부품 등을 함께 섞어 녹일 경우 다시 페트병, 포장지, 기계부품 등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각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종류대로 플라스틱을 분류해서 재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재활용쓰레기를 비롯해 환경 관련 이슈가 많은 요즘, 우리나라 환경부도 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음료업체 19곳과 업무 협약을 체결해 제조·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 페트병을 재활용이 쉬운 무색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재활용률을 70%까지 높이기로 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플라스틱 폐기물은 절반으로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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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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