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태풍 ‘란(LAN)’의 영향권에 든 강원 동해시 대진항. ⓒphoto 뉴시스
지난해 10월 태풍 ‘란(LAN)’의 영향권에 든 강원 동해시 대진항. ⓒphoto 뉴시스

최근 지구온난화로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한국이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받게 될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자연재해 중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는 것 중 하나가 태풍이다.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졌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그로 인해 한국이 치명적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것은 어떤 맥락일까.

온난화의 역습, 태풍 속도 20% 느려져

지난 6월 6일(현지시각),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1949~2016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태풍)의 평균 이동 속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국가환경정보센터(NCEI)의 제임스 코신 박사팀이 총 7585건의 인공위성 관측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한 결과다. 그 분석에 따르면 지난 68년간 열대성 저기압의 이동 속도가 지구 전체적으로 10% 이상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성 저기압은 발생하는 지역에 따라 허리케인, 사이클론, 태풍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 중 북태평양 남서쪽에서 발생하는 것이 태풍이다. 북대서양이나 카리브해에서 발생하는 것은 허리케인, 인도양이나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이클론이라 한다.

코신 박사팀의 연구에서는 특히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북태평양 서쪽 지역의 태풍 이동 속도가 가장 느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속도가 무려 20%가 줄어들었다. 뒤를 이어 호주가 속한 남서태평양이 15%, 북동태평양이 4%, 북대서양 6%,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이 속한 서인도양이 4% 정도 속도가 줄어들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태풍 이동 속도가 평균보다 훨씬 높은 30%나 느려졌다는 점이다.

태풍의 이동 속도는 왜 이렇게 느려진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온난화로 적도지방과 극지방 사이에 에너지 격차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은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맞추려는 작용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자전) 지역에 따라 태양으로부터 받는 열량에 차이가 생긴다. 적도 부근은 태양열을 많이 받아 에너지가 많고 극지는 적어 열의 불균형이 생긴다. 두 지방 사이의 에너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구는 자체적으로 태풍을 통해 저위도의 열을 고위도로 옮긴다. 태풍이 중요한 지구 자정작용 역할을 하는 셈이다. 태풍의 속도가 빠를수록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이 쉽게 해소된다.

바람은 두 지점 사이의 기압 차가 클 때 세게 분다. 또 공기 밀도는 특정 지역을 내리쪼이는 태양열의 양에 차이가 생기면 달라진다. 즉 열을 적게 받으면 공기 밀도가 높아져 고기압이 형성되고, 열을 많이 받으면 밀도가 낮아져 저기압이 형성된다. 바람은 항상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불기 때문에 저기압이 형성되면 바람이 불어오는데, 지구온난화로 적도와 극지 사이의 에너지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태풍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게 코신 박사의 설명이다.

문제는 태풍이 느려지면 호우 피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 이는 결국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태풍 취약 지역으로 바뀔 수 있음을 뜻한다.

태풍 속도가 느려졌다면 바람도 약해져 피해를 덜 입어야 하지 아닐까. 물론 태풍의 강도는 중심부의 최대 풍속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릴 경우 거센 바람으로 인한 영향은 덜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대기가 머금는 수증기 양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1도 높아지면 습도는 7% 올라간다. 수증기 양 증가에 태풍 이동 속도의 느림이 더해지면 태풍이 특정 지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집중적으로 폭우를 쏟아내게 된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5호 태풍 노루 긴급점검회의에서 박영연 기상예보관이 상황보고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8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5호 태풍 노루 긴급점검회의에서 박영연 기상예보관이 상황보고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상하는 태풍의 이동 경로도 위험

여기에 이동 경로도 한몫한다. 2014년 5월 ‘네이처’와 2016년 8월 ‘미국기상학회지’에 코신 박사가 발표한 1980~2013년의 세계 태풍 이동 경로를 보면, 태풍이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매년 북반구에서는 5.3㎞씩, 남반구에서는 6.2㎞씩 극 쪽으로 이동했다. 지난 30년간 북반구에서 태풍의 세력이 가장 강력한 지점이 적도 부근에서 약 160㎞ 올라왔다는 뜻이다. 그 영향을 직접 받는 위치가 바로 한반도 부근이다. 즉 한국은 느려진 ‘태풍 이동 속도’에 ‘경로’ 변화까지 영향을 받아 태풍 피해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코신 박사의 설명이다.

태풍의 정체는 강한 바람과 비구름을 품은 거대한 공기 덩어리다. 태풍은 주로 남·북위 5° 이상의 따뜻한 공기가 수증기의 응결로 인해 나오는 열을 받아 생긴다. 지구온난화로 지구 전체의 온도가 올라가면 대기(공기)의 에너지가 세지고,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라 높아진 에너지는 대기를 더 빠르게 움직여 비구름을 만들고 강한 비를 뿌린다.

국가태풍센터 통계에 따르면 보통 태풍은 평년에 11.2개 정도 발생한다. 올해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은 숫자의 태풍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 2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태풍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언제 경로를 바꿔 더 많은 태풍이 한국을 향할지 모른다.

기상청이 발표한 ‘2010 이상기후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는 1912년부터 2010년까지 약 100년간 기온이 1.7도 상승했다. 이는 지구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수치다. 연 강수량도 변동성이 매우 커 20세기 초반 10년에 비해 최근 10년 동안 약 19% 정도 증가했다. 반면 강우 횟수는 감소해왔다. 집중호우로 수해와 가뭄 피해가 동시에 심화돼온 셈이다.

지금도 기상환경이 좋지 않은데 앞으로 한반도는 더 큰 위기에 빠질 전망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5차 보고서와 기상청·환경부의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는 2050년까지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이 2도에서 최대 4도까지 상승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온실가스 배출 추세를 현재대로 유지할 경우 21세기 후반(2071~2100년) 한국의 기온은 현재보다 5.3도 높아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태풍의 이동 속도가 더욱 느려지고 특정 지역에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더 길어져 지금보다 파괴력이 훨씬 더 커진다는 의미다. 적도와 극지 사이의 에너지 순환이 일어나는 범위가 줄어들어 지구의 자정작용에 구멍이 생길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과학계에서는 앞으로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로 한반도에서 이례적이고 강력한 태풍을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한국의 앞날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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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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