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두 마리만 살아남은 북부흰코뿔소. ⓒphoto AP
전 세계적으로 두 마리만 살아남은 북부흰코뿔소. ⓒphoto AP

최근 코뿔소의 수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코뿔소는 5종. 대부분 멸종 위기에 놓여 있지만 특히 북부흰코뿔소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 가운데 코뿔소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화제다. 세계 최초로 코뿔소의 인공배아를 성공시킨 연구가 그것이다.

북부흰코뿔소의 비극

북부흰코뿔소는 전 세계적으로 자연번식이 불가능한 암컷 두 마리만 살아 있다. ‘파투’와 그의 딸 ‘나진’이 케냐 올페제타 보호구역에서 보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을 뿐이다. 지난 3월 19일에 마지막 수컷 ‘수단’이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사실상 대가 끊긴 셈이다.

북부흰코뿔소의 멸종 위기는 인간 탓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부흰코뿔소는 사하라사막 이남의 중부와 동부 아프리카에서 2000여마리가 넘게 존재했다. 그런데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훼손과 밀렵으로 종이 급감한 것. 특히 1㎏당 6만5000달러(약 7510만원)에 이르는 높은 뿔 가격 때문에 밀렵꾼들의 표적이 돼 1980년대 초에 15마리로 줄었고 지금은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 북부흰코뿔소에 앞서 이미 2011년에는 서아프리카의 검은코뿔소가 멸종돼 복원할 길이 전혀 없는 상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북부흰코뿔소를 ‘멸종 위급’ 동물로 지정하고, 그동안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생물학자들을 투입해 북부흰코뿔소의 종 보존에 힘써왔다. 케냐 정부 또한 파투와 나진이 비록 마지막 수컷인 수단의 딸과 손녀지만, 멸종 직전 수단과 두 암컷과의 인공수정을 통해 새끼를 낳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개체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실상 북부흰코뿔소 멸종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 4일(현지시각), 독일 라이프니츠(Leibniz) 동물야생연구소와 이탈리아 크레모나 생식기술실험실, 일본 규슈대 공동 연구팀이 북부흰코뿔소와 남부흰코뿔소 사이의 배아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배아는 분열을 막 시작한 상태의 수정란으로, 인체 모든 조직으로 분화하는 능력을 가진 줄기세포다. 북부흰코뿔소의 냉동정자를 남부흰코뿔소 난자에 주입해 잡종배아(hybrid embryo)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다.

냉동보관 정자로 인공배아 성공

코뿔소에서 인공수정이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문을 이어갈 북부흰코뿔소 수컷이 한 마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행히도 과거 북부흰코뿔소의 정자를 수컷 4마리로부터 채취해 보관해왔다. 반면 남부흰코뿔소는 약 2만1000마리가 남아 있는데, 연구팀은 이 중에서 암컷의 난자 20개를 얻어 시험관에서 수컷 북부흰코뿔소가 남긴 정자와 수정시킨 다음 유전자 발현을 돕는 물질을 처리해 분화를 유도했다. 분화는 세포가 분열하고 증식하면서 고유한 구조와 기능을 갖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어린이가 어른으로 자라면서 키와 몸매가 결정되고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현재 이 인공배아(수정란)는 다른 신체기관으로 분화를 막 시작하려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 연구팀은 몇 달 안에 일단 4개의 혼합배아를 남부흰코뿔소 대리모 자궁에 착상할 계획이다. 라이프니츠 동물야생연구소 힐드브란트 박사는 “배아가 대리모에 온전히 착상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출산 과정이 원만하게 진행될 경우 이번 연구 성과는 멸종생물 복원 가능성을 알리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태어나는 새끼는 온전한 순종 북부흰코뿔소가 아니다. 혼합배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북부흰코뿔소 암컷의 난자를 쓰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두 마리만 남은 암컷에게서 난자를 채취하다가 혹여 사고라도 날 경우 복원의 길이 영영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새끼 출산의 결과가 성공적일 때 최종 목표인 ‘순수 북부흰코뿔소’를 복원할 계획이다. 파투와 나진, 두 마리의 암컷으로부터 난자를 채취해 활성화한 다음 보관 중인 냉동정자를 주입할 예정이다. 이 과정은 적어도 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체외수정 기술을 통해 북부흰코뿔소의 종이 온전하게 보존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근친교배는 ‘약세’ 현상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혈연이 가까운 수단과 딸 파투, 손녀 나진과의 교배를 계속하게 되면 그들이 가진 해로운 열성 유전자가 결합돼 자손의 내성·크기·번식력 등이 줄어든다는 것. 따라서 복원에 성공하더라도 또다시 멸종의 길로 들어설 위험이 있다. 또 북부흰코뿔소처럼 멸종 위기의 종들은 난자나 정자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인공수정란 실험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유도만능줄기(iPS)세포’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피부세포처럼 이미 분화가 끝난 체세포를 분화되기 이전의 배아 상태로 되돌린 세포를 말한다. 우리 몸의 일반 세포는 기능이 다른 여러 세포로 분화할 수 없다. 그런데 일반 세포에 몇 가지 유전자를 넣고 자극을 주면 분화 능력을 가진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변신시킬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도만능줄기세포라고 한다.

유도만능줄기세포도 나선다

이미 미국 샌디에이고동물원에는 북부흰코뿔소 12마리의 피부에서 떼어낸 세포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가 보관되어 있다. 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난자나 정자로 분화시켜 인공배아를 만들 경우 순수한 북부흰코뿔소 복원이 가능하다. 힐드브란트 박사는 유도만능줄기세포의 분화 방식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공동연구팀은 앞으로 10년 내에 냉동보관 중인 북부흰코뿔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로부터 정자와 난자를 얻어 수정시키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게 박사의 설명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을 동원해 종(種)을 보존하려는 연구에 호주 그리피스대학의 캐슬리 교수는 격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전공학 기술은 동물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보통 코뿔소는 17~18개월의 임신기간을 거쳐 단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어미 코뿔소는 출산 후 3년이 지나야 다시 새끼를 낳는다. 코뿔소의 번식은 이렇듯 느린데 사람들이 마구잡이 사냥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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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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