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백을 물고 있는 돌고래. 고래와 돌고래의 50% 이상이 플라스틱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photo dolphinproject.com
플라스틱 백을 물고 있는 돌고래. 고래와 돌고래의 50% 이상이 플라스틱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photo dolphinproject.com

최근 돌고래의 소변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인 프탈레이트가 검출돼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먹잇감이 된 게 그 원인으로 분석된다. 간혹 돌고래의 지방이나 피부에서 프탈레이트를 검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적은 있지만 소변에서까지 검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생 병코돌고래 프탈레이트와 위험한 동거

지금 세계는 플라스틱과 전쟁 중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땅에 매립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강이나 배수구 등을 타고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만 3500만t에 이를 정도. 2025년이면 해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현재의 2배까지 폭증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건 해양생물이다. 지난 2월 미국·호주·이탈리아 국제 공동연구팀은 바닷속에 살고 있는 거대한 고래는 물론 상어, 가오리 등 생태계를 주도하는 생물들이 플랑크톤 등 작은 크기의 먹잇감과 함께 떠다니는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으로 생존에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특히 고래와 돌고래의 경우 50% 이상이 플라스틱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래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 때문에 위가 파열돼 종종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 최근엔 스페인 남부 카보데팔로스 해변에서 몸길이 10m의 고래가 죽은 채로 발견됐는데, 위장에서 비닐백과 플라스틱 물병 등이 나왔다. 사망 원인은 복막염. 이 고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무려 29㎏이나 삼킨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친 해류와 태양 자외선(UV)에 의해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유해물질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5㎜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 돼 해양생물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작은 유기체들이 미세플라스틱을 먹을 경우 내장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각류에서는 수시간 뒤면 배설되고, 홍합에서도 며칠 머무르다가 나온다.

진짜 문제는 독성이다. 플라스틱 제품에 코팅된 화학첨가물이 물에 녹아나오는 것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비스페놀이나 프탈레이트처럼 플라스틱 그 자체가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미국 찰스턴대학과 시카고 동물학협회 연구팀은 야생 돌고래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인 프탈레이트가 발견됐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2016~2017년까지 플로리다주 새러소타만에 사는 야생 병코돌고래 17마리의 소변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12마리에서 적어도 1종류 이상의 프탈레이트가 발견됐다는 것. 이 물질은 3~6개월이 지나도 배설되지 않은 채 체내에 남아 돌고래의 내분비계를 교란시킨 경우도 있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은 인체의 호르몬과 구조가 비슷해 일단 몸속으로 들어가면 세포물질과 결합하여 내분비계 기능을 교란시키는 물질이다. 즉 동물이나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물질을 총칭한다. 대표적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증가시켜 남성의 여성화를 만들고, 여성의 경우 유방암 증가와 초경 같은 2차 성징을 앞당기는 등 생식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야생동물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끼쳐 수컷의 생식능력 저하로 멸종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물질은 쉽게 분해되지 않아 토양이나 물속에 수년 동안 남아 있고, 특히 생물체에서는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특징이 있다.

이번에 연구팀이 조사한 야생 병코돌고래의 몸속 프탈레이트는 돌고래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의 양은 아니다. 하지만 꽤 다량이 검출되었다는 점에서 놀랄 만한 일이다. 일부 돌고래에서는 사람에게서 검출되는 농도와 비슷한 양이 검출되기도 했다. 프탈레이트는 적은 양일지라도 돌고래의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쳐 개체수를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머지않은 시기에 멸종 위기에 놓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인간은 흔히 프탈레이트에 노출되어 있다. 각종 세제나 화장품 등을 통해서다. 하지만 프탈레이트가 깊은 바다에 사는 돌고래의 먹잇감까지 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대체 어쩌다 프탈레이트가 돌고래의 몸속까지 들어가게 되었을까. 그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잘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 도시에서 바닷물을 통해 먼 거리의 돌고래 서식지까지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내가 쓴 화장품이 돌고래를 죽게 만든다?

어떤 플라스틱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바다로 들어가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플라스틱 소비자인 우리가 오염 감소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돌고래의 몸속까지 오염시킨 프탈레이트는 대체 어떤 물질일까.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첨가하는 화학물질의 일종이다. 탈산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장난감이나 가전제품 등 플라스틱이 원료인 제품에 널리 쓰인다. 방향제나 로션, 방취제, 세제 등의 각종 폴리염화비닐 제품은 물론 말랑말랑 기분 좋은 감촉을 내는 고무 제품에도 들어 있다. 체내 반감기는 12시간. 짧지만 워낙 흔하게 사용되어서 생활 속에서 피해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몸속에서 내보내면 다시 들어오고 또 내보내면 다시 들어오는 식이다. 즉 우리는 늘 프탈레이트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프탈레이트가 기준치를 초과해 다량 함유된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생식기능 등 내분비계에 교란이 일어나 신체발달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프탈레이트를 1999년부터 내분비계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으로 지정해 관리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미국 찰스턴대학 연구팀의 야생 병코돌고래 연구가 프탈레이트 오염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있다. 바다 생태계 최강자인 고래까지 프탈레이트에 오염됐다는 것은 이미 다른 해양생물들도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래상어의 경우 이미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의 멸종위기동물 목록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해양 생태계가 교란되면 어떻게 될까. 그 영향은 결국 전 지구적으로 확산돼 인간도 파멸을 피하기 어렵다. 먹이사슬을 타고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조개를 사람이 먹게 된다면 조개 속의 미세플라스틱이 사람의 뱃속으로 옮겨오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는 건 당연하다. 바다 생태계의 멸종이라는 극단적 사태를 피하려면 지금 바로 특단의 대책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인간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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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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