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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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요셉 박사는 대전 대덕의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생물재난연구팀 팀장이다. 지난 9월 10일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지난 4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증명하듯 권 박사 책상 위에는 노로바이러스 소독제(Noro-Free Hand Sanitizer Type C)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식중독 증세인 복통, 구토, 설사를 한다.

권 박사는 설날이던 지난 2월 16일 전남 광주에서 노로바이러스 소독제를 싣고 강원도 평창을 향해 출발했다. 소독제는 권 박사와 김두운 전남대 교수(농식품생명화학부)가 공동으로 개발했다. 두 사람이 설립한 벤처기업 ‘BIO35’가 광주에 있는데 현지 업체가 OEM방식으로 소독제를 만들었다. 50mL와 250mL 두 가지 소독제 1만개를 급히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으로 날랐다. 개막식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발병해 행사 성공을 비는 한국인을 긴장시키고 있을 때였다.

당시 설 명절이라 택배업체도 용달업체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권 박사와 김 교수는 지인과 함께 개인 차량 4대에 물건을 싣고 직접 평창으로 가야 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설 귀성 차량 틈에서 가느라 8시간 반이 걸렸다. “당시 환자 수가 216명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때를 고비로 평창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노로바이러스 위세는 꺾였다. 모두 여섯 번 평창에 갔었고, 패럴림픽까지 끝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노로바이러스 발병 건이 잠시 문제가 됐다는 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진정됐는지는 기억나질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권 박사와 같은 이의 노고가 그 배경에 있었다.

권요셉 박사는 메르스, 지카, 노로바이러스와 같은 위협적인 바이러스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는 걸 목표로 연구한다. 그는 “단백질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분석화학자”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는 전북대 화학과 출신이다.

“시중에 노로바이러스 항체가 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나는 천연물인 작두콩에서 인간 노로바이러스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찾았다. 바이러스 분석을 위해 농축키트를 만들었으며 감염 여부 진단 속도가 기존 제품에 비해 빠르고, 가격이 훨씬 싸다.” 이 연구는 그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수행했는데 그 결과는 관련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 바이오머티리얼스(Biomaterials)에 지난해 게재됐다.

권 박사가 노로바이러스 연구를 한 건 2012년쯤 같은 교회에 다니던 김치공장 사장의 구속이 계기가 됐다. 당시 김치공장이 학교에 급식용으로 납품한 김치를 먹고 학생 수백 명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그 김치공장 사장은 구속됐다. 그러자 김치공장 사장이 다니던 교회 신도들은 구속 수사까지는 억울하다며 구속 해제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돌리고 서명을 받았다. 당시 권 박사는 김치공장 사장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제품인지 알고 판매하지는 않았고, 노로바이러스 진단에 어려움이 있다는 걸 확인해줬다. 권 박사에 따르면 식품공전에 명시된 방법으로 조사하면 노로바이러스 진단에만 4~5일이 걸린다. 신속한 검사법이 없어 김치공장 대표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었다.

“그때 콩 200개를 뒤져 작두콩에서 나오는 콘에이(conA)라는 단백질이 노로바이러스와 결합해 항체와 같은 효과를 갖는 것을 확인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항체로 분석키트를 만들면 가격은 800만원이나, 당시 권 박사팀이 개발한 제품은 몇천원이다. 그가 개발한 제품은 시중 수요가 많지 않아 현재 미국과의 공동연구가 한창이다. 텍사스 A&M대학과 병원과 연계하여 바이러스를 고속 스크리닝하는 위탁연구를 마친 상태다. 그는 인간 노로바이러스 검출 및 중화 천연 소재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연구가 2017년 ‘국가연구개발우수성과’로 꼽히기도 했다.

동물도 바이러스 질병이 많다. 조류독감, 돼지열병이 대표적이다. 닭은 조류독감에 걸려 집단폐사하고, 관련 농가에 큰 피해를 준다. 권 박사에 따르면 조류독감 백신은 개발돼 있다. 하지만 가격이 몇만원이기 때문에 닭에 백신을 투여할 수 없다. 돼지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돼지 한 마리의 몸값이 백신 값을 벌충하고 남기 때문이다. 권 박사는 “노로바이러스를 중화시킬 수 있는 천연소재를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돼지나 닭이 먹어도 되는 천연사료 첨가제 또는 중화소독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신보다 훨씬 저렴한 천연단백질이 필요하다. 그러면 닭 재배 농가가 조류독감 백신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박사는 가습기, 생리대, 달걀 파문도 얘기했다. “사람 몸에 안 좋은 화학물질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경우다.”

권 박사는 물고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광어는 한국인이 횟감으로 즐기고, 제주도와 남해안에서는 대규모 양식을 한다. 권 박사에 따르면, 광어는 가을에서 봄 사이 수온이 떨어지면 집단 폐사한다. 겨울철 집단폐사를 막기 위해 남해안 광어 양식업자는 발전소 터빈을 식히고 나오는 따뜻한 바닷물을 양식장으로 끌고 간다.

“일반적으로 수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내려가면 기세가 약화된다고 생각한다. 광어를 감염시키는 VHSV바이러스는 다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문제는 어류 연구자가 오랫동안 풀고 싶어하던 문제였다.”

권 박사와 김두운 전남대 교수는, 광어가 수온이 15도 이하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25도 이상이면 감염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광어 신체 내부의 단백질 신호전달체계를 분석한 결과다. “사람 몸의 경우 10만개 이상의 단백질이 있다. 각 단백질의 양을 정확히 알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 단백질 분석으로 세포 안에서 특정 단백질이 증식하는지를 알아낸다.”

양식 광어 폐사 막을 단백질도 발견

권 박사는 양식 광어를 집단폐사시키는 바이러스가 생산하는 단백질을 알아냈다. 이런 단백질을 ‘바이오마커(bio marker)’라고 한다. 바이오마커가 무엇인지는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해당 분야 상위 2% 저널인 ‘Fish & Shellfish Immunology’에 논문을 기고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특정 단백질 수치를 낮추는 게 목표다. 양파에 있는 천연물질인 퀘르세틴이 그 기능을 한다. 넙치에게 퀘르세틴을 먹이니 저온에서도 잘 살았다. 성공했다”고 말했다. 광어 양식업자에게 낭보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물고기의 건강이 ‘온도’뿐 아니라 ‘색깔’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그의 발견은 특히 생선을 파는 업자에게 유용할 듯싶었다. “업자들이 자연산처럼 보이기 위해 물고기를 노란색 통에 넣으면 물고기는 보호색을 내기 위해 배 부분을 노란색으로 바꾼다. 그러면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일부 물고기는 RGB(빨강·초록·파랑)에 민감하다.” 그는 색깔에 민감한 물고기 이야기도 논문으로 쓸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연구 이야기를 듣는 건 즐거웠다. 하지만 그가 성과를 얻어내기까지의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듯하다. “작두콩에서 ConA단백질을 발견한 건 행운이다. 200개의 콩에 들어 있는 단백질 하나하나를 분석해야 했다.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만이다. 그간의 노력은 티도 안 난다. 못 찾으면 꽝이다.”

작두콩에 들어 있는 ConA단백질이 노로바이러스와 결합해 ‘항체’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걸 찾아냈으나 특허로 등록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ConA단백질은 너무나 유명한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그 단백질은 다른 바이러스와 결합을 잘한다. 인간 노로바이러스와 ConA단백질이 결합한다는 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특허가 처음에는 기각됐다.”

권 박사에 따르면 바이러스에는 외피가 있거나 없는, 두 종류가 있다. 외피가 있는 바이러스는 당(糖)과 결합한다. ConA는 외피가 있으니 당과 결합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외피가 없는 인간 노로바이러스와도 ConA가 결합했다. 이걸 권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당의 결합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는 데도 꼬박 1년이 걸렸다. 기초연이 운용하는 HDX-MS라는 장비를 활용하였다. 결합 위치를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꿔 확인하는 작업도 했다. ConA단백질과 구조가 98% 같은, 대두(大豆)에 들어 있는 SBA단백질이 있다. SBA단백질은 인간 노로바이러스와 결합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ConA와 인간 노로바이러스의 결합 위치가 완전히 새로운 것임을 알아내고, 미국과 일본에 특허 등록을 신청했다.

그는 전북대 화학과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하고, 박사과정도 이곳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독특하게 박사과정 때 포항공대 생명공학과의 유성호 교수에게 가서 4년 반을 공부했다. 유 교수 밑에서 세포신호전달이란 생물학을 공부했다. 막단백질을 분석하는 법을 개발하면서 이를 확인하고자 질량분석기를 활용하였다. “당시 선배들은 ‘한 우물을 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게 경고했다. 하지만 화학과 생물, 두 가지 학문을 공부하니 장점이 있었다. 연구 사안에 따라 균형 잡힌 접근법을 찾을 수 있었다.” 화학도에게 포항에서 만난 낯선 생물학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연구실에서 집으로 가는 생활은 짧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기간이 지나서야 ‘생물’ 공부에서도 이치를 깨우칠 수 있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으로 2007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몸을 담았다. CJ에 2억원을 받고 기술이전을 해주는 실적을 올렸다. 권 박사는 “1억원을 넘어서는 기술이전은 기초연에서는 당시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 연구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계약위반이다”라고 했다. 그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노로바이러스 검출 소독제 생산비를 마련하기 위해 달려간 곳도 CJ였다. 2010년 당시 기술이전하면서 알게 된 CJ 관계자가 그에게 도움을 줬다. 권 박사의 연구를 상품으로 연결시켜, CJ가 적지 않은 부가가치를 얻어낸 덕분으로 보였다. 권 박사는 당시 기술이전 실적으로 5년간 이어진 박사후연구원 신분에서 벗어나,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정식 입사할 수 있었다.

그는 ‘재난 미생물’이라는 책을 동료 연구자들과 지난 2014년에 낸 바 있다. 책을 열어보니 ‘노로바이러스’ 편이 맨 앞에 나와 있었다. 권 박사가 집필한 부분이다. 그는 ‘막단백질 공동 이야기’(2015년)라는 책도 썼다. 스웨덴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스웨덴 연구자와 어떻게 같이 연구를 하게 되었을까? 얘기를 들으면 재밌을 듯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이야기를 주간조선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어, 취재를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했다.

권 박사는 ‘요셉’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기독교 구약성경의 요셉 이야기를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요셉과 그 형제들’이라는 장편소설로 써낸 바 있다. 한글판은 전 7권이다. 권요셉 박사 이야기 보따리도 구약의 요셉 이야기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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