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photo 최준석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나노표면팀장인 이현욱 박사에게 2014년은 ‘기적의 해’였다. 그는 이해 12월, 1년 반의 공백 끝에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이 논문을 토대로 혼자서 1년에 8~10편을 쏟아냈다. 그가 논문을 최고 많이 쓴 해는 공동저자 논문을 포함해 18편을 기록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자체적으로 선정하는 우수논문상을 줄줄이 차지했다. 지난 10월 4일 대전 대덕에서 만났을 때 “1905년이 아인슈타인에게 기적의 해라고 하는데, 이 박사에게는 2014년이 그런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그해 12월에 정규직도 됐고, 아이도 낳았고, 대전으로 이사도 왔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2014년이 저물기 전 광(光)촉매 분야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가 발행하는 ‘사이언티픽 리포츠’ 편집위원으로 선임됐다. 그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에도 ‘사이언티픽 리포츠 편집위원’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직함이 상당한 자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천 시간 실험의 보상

이현욱 박사는 오염된 물이나 공기를 정화시키는 광촉매 등 환경소재를 개발한다. 그는 학부와 석사는 전북대 세포및분자생물학과(1996학번)에서, 박사는 부산대 나노융합기술학과에서 했다. 박사 논문은 ‘플라스마 표면처리에 의한 생물환경응용’.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2011년 박사후연구원 신분으로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전본원에 와서 일하기 시작했다. 1978년생으로 올해 41세. 올해 나노표면팀장이 되었다.

“대학에서 세포막, 세포 표면 구조 분석과 같은 세포·분자생물학을 공부했고, 박사 때는 물리학을 했다. 지금은 환경소재를 한다. 석·박사 시절에 서로 다른 두 분야를 공부했기에 소재를 표면 처리해서 생물학이나 환경 쪽으로 응용하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박사후연구원은 비정규직이다. 때문에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경우 박사후연구원에게 3년의 기한이 주어진다. 그 안에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평생 직장이 되지 않는다.

이현욱 박사는 환경소재 중에서도 광촉매로 널리 쓰이는 이산화티탄(TiO2)과 산화철을 연구했다. 이산화티탄은 오염된 물이나 공기 정화 기능이 뛰어나 주목을 받는 소재다. 유리에 코팅해 광촉매로 사용하기도 하고, 정화필터에 넣기도 한다. 햇빛을 받으면 촉매로 작용해 오염된 물이나 악취를 분해한다. 그러나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다량 생산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이현욱 박사가 파고든 건 이 부분이었다.

“대량 생산과 대면적(large area) 코팅 두 가지가 목표였다. 기존 생산 방법은 열처리다. 300도 이상의 열을 가해 만들었다. 열을 가하려니 비용도 많이 든다.”

이 박사에 따르면, 광촉매를 대면적 코팅할 때 기존에는 ‘졸-겔 방식’을 썼다. 유리나 금속을 용액 속에 집어넣었다가 꺼내 열로 건조시키는 방식이다. 혹은 비싼 실리콘계나 유기계 바인더(binder)를 써서 이산화티탄이나 산화철을 표면에 붙였다. 이 방식은 잘 붙지도 않고 광촉매 효능을 떨어지게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실리콘이나 유기계가 광촉매제 위에 덮여 있으니 광촉매가 오염된 물과 직접 닿는 것을 방해한다.

이현욱 박사는 “1년6개월 동안 실험을 주야장천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던 방의 바로 옆 실험실에서 수천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장치 개발하고 각 조건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이 박사가 개발한 대량 생산과 대면적 코팅법은 한마디로 ‘저에너지 방식’이다. 물질의 성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가해야 하는데, 이 박사는 300도 이상의 뜨거운 열이 아니라 ‘상온’에서 만들 수 있는 방식을 찾았다. 광촉매로 사용되는 파우더를 초음파로 충격을 줘서 대량 생산하게 됐다. 그램 단위로 나오던 광촉매를 킬로그램 단위로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제조법을 개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시중에서 장비를 사다가 목적에 맞게 변형했다. 장비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자 이 박사는 “장비가 공개되면 안 된다. 예컨대 수중 플라스마 장비의 경우 논문에도 ‘변형된(modified) 수중 플라스마 장치’라고만 썼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옆방에 갔을 때 그 장치를 보았다. 높이가 30㎝쯤 되는 투명한 원형 용기였다. 이 장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공동연구하는 업체가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광촉매 파우더와 고군분투

이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전구체(precursor)와 용매에 따라 광촉매 파우더의 결정 모양이 달라진다. 업계는 이산화티탄이나 산화철 광촉매 파우더의 사양을 구체적으로 주문한다. ‘사양’에는 광촉매 결정성이나 형태(구형, 별 모양 등) 그리고 크기가 명시된다. 예를들면, 공 모양은 표면적이 작아 흡착이나 오염물 제거 능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빛은 잘 흡수한다. 태양전지 업계가 공 모양을 선호한다. 별 모양의 삼차원 구조는 표면적이 넓어서 센싱(sensing)에 좋다. “태양전지 등 에너지 쪽에서는 ‘이산화티탄을 구형에 아나타제, 500나노로 맞춰달라’ 하는 식으로 많이 주문한다. 구멍이 많은 다공성 이산화티탄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아나타제’가 뭐냐고 이 박사에게 물었다. 이 박사는 이산화티탄의 상(phase)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상과 관련해 우리에게 익숙한 건, 물의 세 가지 상이다. 잘 알려진 대로 기체·액체·고체가 물의 세 가지 상이다. 이 박사는 “이산화티탄의 상이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며 “이산화티탄에는 부르카이트, 루타일, 아나타제라는 세 가지 상이 있다”고 했다. 산화철에도 알파 Fe2O3 등 모두 5개의 상이 있다. 상이 다르면 구조가 다르다. 이 박사는 태양전지와 수질정화에 필요한 이산화티탄은 아나타제와 루타일 상 두 가지가 들어가 있는 ‘복합상’이라고 설명했다. 알듯 말듯 한 말을 듣고 있자니 이 박사가 1년6개월 동안 이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물성이 나오는 광촉매 파우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걸 상상할 수 있었다. 실제 이 박사는 그간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온도, 용매, Ph, 에너지파워, 시간 등 조건 하나에 따라 물성이 달라진다. 그걸 다 만들어 보았다. 경우의 수에 맞춰 실험하고 기대했던 특성이 나오는 방식을 찾은 것이다. 막노동이었다.”

이 박사는 2014년부터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보도자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연구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는 연구자의 연구를 홍보하기 위해 언론사를 상대로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이 박사 관련 보도자료 중 초기 것으로는 2014년 10월 ‘태양광 활용한 수처리 분야에 응용해 물 정화 가능’이 있다.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이 바로 이 보도자료 내용이다. 여기에는 ‘세계 최초로 TiO2를 나노튜브 구조체로 제조하고, 황(黃)을 도핑하여 가시광에서의 광화학 반응을 극대화하였다’고 써 있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관련 논문이 실렸다.

2015년 3월 12일에는 ‘차세대 저차원 나노물질인 흑린을 이용한 친환경 광촉매 개발’이라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이 박사의 연구원 내 보스였던 이주한 박사와 가천대 이영철 교수와 공동 연구한 것으로 차세대 저차원 나노물질로 주목받는 흑린(Black Phosphorus)을 활용하여 안정적이고 활성이 뛰어난 흑린-TiO2 광촉매 재료를 세계 최초로 제조했다.

또 2015년 7월 27일에는 ‘탄소 페인트’를 개발했다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이현욱 박사는 이와 관련 “낙동강에 녹조가 심하다고 해서 녹조를 채취해 와서 연구했다. 녹조를 없애거나 아니면 있는 녹조를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결국 녹조 활용 방법을 찾다가 ‘탄소 페인트’를 얻어냈다. 녹조를 쥐어짜면 탄소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특수한 형태의 탄소다. 나노표면연구팀장이었던 이주한 박사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이 탄소는 바이오이미징과 센서용으로 쓸 수도 있지만, 광촉매와 혼합하여 쓸 수 있다. 광촉매는 빛을 받으면 특이하게도 물과 공기 정화 기능을 한다. 새집증후군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스프레이에도 광촉매 TiO2를 많이 쓴다. 선크림에도 광촉매가 들어가 있다. 자외선을 산란시켜 피부에 닿지 않게 한다. 그런데 녹조에서 얻어낸 탄소 덩어리는 특정 파장대에서 발광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특성을 이용하면 기존 페인트를 활용하여서도 발광, 냄새제거, 항균 등 기능성 페인트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국내의 두 페인트 업체와 접촉하고 제품으로 개발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새로운 광촉매 소재 개발

2016년 7월에도 이현욱 박사는 보도자료를 생산했다. ‘수소 플라스마로 고효율 친환경 H-TiO2 광촉매 대량생산한다’는 제목이다. ‘간단한 공정으로 표면적이 넓은 광촉매를 생산하고 기존 대비 4배의 효율을 지녔다’고 보도자료는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확보한 가장 최근의 보도자료 내용은 ‘수중 플라스마 기술로 친환경 광촉매 효율을 높였다. 기존보다 5배 효율이 좋고, 다공성인 이산화티탄 광촉매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광촉매의 효율이 갈수록 올라가고 물성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조방식 역시 초음파로 시작해 수소 플라스마, 수중 플라스마로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박사는 사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인연이 오래됐다. 전북대 3학년 때 ‘연수학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주센터에서 일했고, 부산대 박사 시절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산센터에서 일했다. 이리 원광고를 나와 전주에서 대학을 다닌 그가 부산으로 간 건 집안이 기울면서다. 그때 생활이 크게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부산대 안에 있는 프라운호퍼IGB연구소에 들어가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이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알게 된 선배 연구자의 추천을 받아,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출신인 조채룡 부산대 교수 밑으로 들어가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니 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의 인연은 2003년부터 16년째다.

이 박사는 전북대 과후배이자 실험실 후배인 부인과 11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부인은 약학에 관심이 있어 충북대에서 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오송의 오송첨단의료진흥재단에서 일하는 부인은 이 박사의 녹조 연구와 살균 연구를 도와줬다. 부인도 당시 쓴 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랐다.

이 박사의 연구 설명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녹음을 다시 들어봤는데도 낯선 분야라서 어려웠다. 맥락을 짚기도 힘들었다. 2시간 이상 만났는데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녹음을 다시 들어봐야 했다. 녹음을 들어보니 취재한 지 1시간7분쯤 지난 대목에서 “박사님 연구에 대한 큰 그림을 제가 아직 못 그리고 있다”고 말하는 게 들렸다. 광촉매니, 수소 플라스마니, 나노표면 처리니 하는 용어가 다 낯설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 박사는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현재 이산화티탄과 산화철 말고 새로운 광촉매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아직 못 한다고 했다. 나이 40의 지방국립대 출신 연구자가 ‘멋지게’ 살고 있었다.

최준석 선임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