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PT엑스포에서 화웨이의 한 직원이 노트북 컴퓨터로 5G 기술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PT엑스포에서 화웨이의 한 직원이 노트북 컴퓨터로 5G 기술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추가관세 90일 유예’. 세계가 주목한 G20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다. 상호 유예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만 사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 유예가 핵심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중국 상품 2000억달러어치에 대한 25% 관세의 90일 유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90일간 시간을 벌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밖에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끝난 회담이다. 서로 뒤틀릴 경우 90일 뒤 거꾸로 관세를 25%에서 40%로 높여 부과할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양국 정상회담에 따른 공동성명서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평생을 준비해온 문제’라 강조했던 회담이지만 시진핑(習近平) 주석과의 유일한 약속은 ‘90일 유예’에 불과하다. 미국 콩에 대한 관세 인하, 액화천연가스(LNG)의 중국 내 수입 재개 등의 얘기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양국 간에 합의된 사항이 아니다. 베이징에서 흘러나오는 기사에 불과하다.

이번 회담 결과가 공표된 날이 12월 1일이란 점은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이날은 화웨이(華爲) 멍완저우(孟晩舟) CFO가 캐나다 당국에 의해 구금된 날이다.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로, 차기 회장이 확실시되는 인물이다. 구금 소식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12월 5일이지만, 캐나다 당국에 구금된 것은 12월 1일, 즉 미·중 정상회담이 벌어지던 날이다. 트럼프가 당시 멍완저우 구금 소식을 알고 있었는지 후속 기사들이 이어졌다. 여러 가지 외교수사로 포장된 애매한 답이 돌고 있지만, 필자는 트럼프가 알고 있었으리라 확신한다.

12월 1일 이전에 미·중 정상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해 4월 6일 플로리다 마라라고리조트에서였다. 당시 환영 만찬장에서 트럼프가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 소식을 시진핑에게 ‘통보’한 것은 잘 알려진 뉴스다. 트럼프가 이를 전하는 순간, 시진핑이 10초간 ‘멈칫’했다고 한다.

상식적 얘기지만, 멍완저우 구금 소식은 시진핑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사실 화웨이 CFO의 구금 여부가 대륙 최고지도자의 관심거리가 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서로 악수를 하며 웃는 순간 그 같은 사건이 터졌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도 힘들다. 트럼프는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인물이다. 트럼프 이전 대통령에서 보듯 총 뽑기를 주저하는 ‘약한 카우보이’가 아니다. 앞에서 웃으면서도 등 뒤에서 비수를 들이댈 수 있는 인물이 트럼프다.

‘화웨이’ 비수 들이댄 트럼프

그렇다면 왜 트럼프는 화웨이라는 비수를 시진핑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댔을까?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대표하는 최고의 IT기업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실력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이 화웨이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출신이다. 일찍부터 중국군 통신업무에 관계하다가 1987년 화웨이를 창업했다.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식 사고로 기업을 일군 인물이다. 국유기업들이 싫어하던 농촌지역에 대한 통신 비즈니스를 통해 부를 축적해나갔다. 그 결과 텔레비전에서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부를 다루는 글로벌 맘모스 IT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과 비교하자면 애플과 아마존닷컴, 마이크로소프트를 합친 ‘통신·솔루션·반도체·클라우드 전부를 다루는 IT 종합백화점’이다.

간단히 말해 화웨이 하나만 있으면 가전과 통신, 인터넷, 나아가 AI(인공지능)에 관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 시진핑이 주창하는 이른바 ‘중국제조 2025’의 최첨단이자 간판기업이 화웨이다. 중국몽의 자랑이 될 차세대 통신 5G는 화웨이의 최대 야심작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WIPO(세계지적소유권기구)에 따르면, IT에 관한 국제 특허 출원 실적 측면에서도 화웨이는 세계 1위다. 더불어 해외 진출도 눈부시다.

지난해 기준 스마트폰 판매 실적을 보면 애플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크게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은 유럽에 가면 화웨이의 비약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런저런 직간접 방식의 합작을 통해 유럽 통신업계 전체가 화웨이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확인했지만 화웨이와 제휴한 통신업체의 경우 모바일 단말기가 공짜에다 한 달 기본통신비가 10유로 정도에 불과하다. 화웨이와 제휴하지 않을 경우 당해낼 재간이 없다. IT 수출의 꽃인 통신기지국 매출 실적도 엄청나다.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의 노키아를 누르고 세계 1위다. 결국 해외수출액 면에서, 대만을 제외한 대륙 기업으로 한정할 경우 중국 1위 기업이 화웨이다.

유럽도 영향권 아래 두기 시작한 화웨이

화웨이 CFO 검거는 이란과의 불법거래 혐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여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겠지만, 트럼프의 행적을 고려한다면 향후 제재로 나가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 신문들은 화웨이에 수출하는 미국 IT기업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그 같은 전망은 과장된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모는 퀄컴이 18억달러, 인텔이 7억달러 정도다.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글로벌 시장을 고려한다면 새 발의 피다. 화웨이는 IT 종합백화점이다. 부품을 자체 제작해 공급하는 비율이 약 70% 정도로 다른 IT기업에 비해 높다. 핵심부품은 미국에서 수입하지만 거꾸로 저가의 IT 제품을 대량수출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미국 기업의 타격도 어느 정도야 있겠지만 중국의 경우 ‘2025 중국몽’ 자체가 일장춘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란과의 불법거래에 대한 제재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시련이 중국에 밀려들 전망이다.

근거는 ‘2019년 미국방권한법(NDAA2019)’이다. 올해 8월 미 의회에서 초당적 찬성으로 상하 양원에서 통과된 법이다. 대상은 5개 중국 기업이다. 화웨이를 필두로 중국 IT 2위 기업인 ZTE(中興通訊), 감시카메라회사인 HIKVISION(杭州海康威視数字技術), DAHUA Technology(浙江大華技術), HYTERA(海能達通信)가 미 의회가 지정한 5개 기업이다. 이들 5개 기업은 전부 국영으로, 경영진 대부분이 현직 군인과 공산당원으로 채워져 있다. 미 의회는 5개 기업 전부를 중국 공산당의 IT 관련 ‘공작부대’로 보고 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긴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권을 지지하고 미국과 자유세계로부터 최첨단 정보를 훔쳐가는 스파이집단이라는 것이 미국의 결론이다.

미국방권한법이 지목한 5개 스파이 기업

5개 기업에 대한 미국방권한법의 구체적인 시행령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질 예정이다. 먼저 2019년 8월 31일 이후부터 시행될 1단계법을 보자. 안보상 이유로 이들 5개 기업이 제조한 상품의 미국 정부 납품이 금지된다. 미국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 수주전에 5개 기업의 입찰 자체가 금지된다. 제2단계는 2020년 8월 13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5개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제3의 기업도 미국 정부 입찰을 금지하는 법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의 업체라도 화웨이를 비롯한 5개 회사와 관계를 가질 경우 미국 정부 입찰이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화웨이 반도체를 한국산 제품에 넣어 납품할 경우만이 아니라 화웨이 통신시스템을 한국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미국 정부에 대한 입찰 자격이 몰수된다는 의미다. 일종의 비즈니스 연좌제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공군훈련기를 미국 국방부에 납품하려 하지만, 만약 공군훈련기를 만드는 회사 가운데 단 하나라도 중국의 5개 기업 부품이나 네트워크를 사용할 경우 납품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미국방권한법은 대상이 5개 기업에 그치고 미국 정부에 대한 납품금지 정도의 제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란과의 불법거래에 따른 벌칙의 경우 제재대상 기업의 제품 자체가 미국 국경선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미국방권한법은 미국 안으로 들여와 민간인에게 팔 수 있다는 점에서 국지적 영향에 그칠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필자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2025 중국몽=중국의 나이트메어(악몽)’로 만들기에 충분한 ‘핵폭탄급’이 미국방권한법이라고 판단한다. 일단 2단계 법이 시행되는 2020년 8월 13일 이후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건 가운데 5개 기업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은 미국 정부와 연을 끊어야 한다. 물론 중국 내에서 5개 기업의 IT시스템을 이용하는 기업들도 논외가 된다. 뭔가 첨단 테크놀러지라 불릴 만한 제품 가운데 5개 기업 부품에서 자유로운 중국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제품 자체가 아니더라도 5개 기업의 IT시스템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또 얼마나 존재할까. 부가가치가 높고 첨단 테크놀러지라 불릴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모두가 미국방권한법 대상이 된다.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상대하지 말고 일반 기업과 소비자만을 상대로 제품을 팔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잘못됐다. 예를 들어 미국 A기업이 화웨이 IT시스템을 활용했다고 치자. 연좌제 탓에 이 미국 기업도 미국 정부 관급수주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관급수주에 참가한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도 틀어지게 될 것이다. 화웨이 IT시스템을 도입한 기업과 비즈니스를 할 경우 미 정부가 발주한 수주전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방부를 포함해 미국 정부 발주 비즈니스의 규모는 결코 적지 않다. 어느 정도 전국적인 회사라면, 중국의 5개 기업과 조금만 관계가 있다고 해도 수주전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처럼 처음부터 관계 자체를 전부 끊는 일반적이고도 전반적인 제재는 아니지만, 사실상 현장에서 운용될 경우 똑같은 결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방권한법이 트럼프가 아니라 의회 주도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부분이다. 흔히들 트럼프를 대중강경책의 화신으로 보지만, 의회가 한술 더 떠서 대중 견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 때리기는 트럼프만이 아닌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의 생각이기도 하다. 트럼프 임기가 끝나면서 함께 종식될 문제가 아니라 그 어떤 대통령이 나타난다 해도 계속될 정책이 중국 견제다. 극단적으로 말해 5개 중국 기업을 마치 탈레반 같은 테러집단으로 대하자는 것이 미 의회의 입장이다.

일본은 화웨이 멍완저우 구금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다. 12월 7일 내각 비상회의를 통해 미국과 동일한 방침을 정부에 하달했다. 정부 주도 사업의 경우 화웨이 등 중국산 제품을 구입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12월 10일 정식공문을 통해 정부 모든 기관에 하달됐다. 일본 정부에 그치는 행정명령이지만 일본 특유의 ‘공기’는 곧바로 민간기업에까지 퍼져나간다. 공문 발송 하루 뒤인 12월 11일 NTT, KDDI, 소프트뱅크 등 3대 통신업체 모두 5G 기지국에 중국 제품 배제 방침을 내렸다. 2019년 가을 5G사업에 참여할 라쿠텐(樂天)도 중국산 배제를 내부방침으로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하나만이 아니라 중국 제품 전반에 대한 배제다. 중국 IT기업과 관계를 가질 경우 사실상 미국 내 진출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손을 떼는 모양새다.

발 빠른 일본, 정부 사업에 ‘중국 제품 배제’

일본의 4대 통신사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소프트뱅크에서 불어닥칠 전망이다. 소프트뱅크는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 주식의 3분의 1을 갖고 있다. 중국과의 비즈니스가 그 어떤 일본 내 기업보다도 활발하다. 한 달 요금 5000엔 전후에 불과한 저가 모바일 서비스는 바로 중국 IT기업과의 합작에 따른 결과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소프트뱅크 역시 중국 IT기업으로 인한 가격경쟁력을 전부 포기해야 할 운명이다. 최근 소프트뱅크는 IT만이 아니라 100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아예 미국 출입이 금지되기 전에 중국과의 관계 청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기억에도 새롭겠지만 지난 4월 중국의 ZTE가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화웨이처럼 이란과의 불법거래에 대한 벌칙이었다. 제재 발표 후 ZTE는 단 1주일 만에 파산상태에 들어갔다. 6월 들어 10억달러 벌금을 물고 겨우 제재에서 벗어났지만 산 너머 산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이 ZTE의 비즈니스 내용과 회계는 물론 인사권까지 참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다. 만약 또다시 미국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질 경우 언제든지 다시 제재에 들어갈 수 있고 벌금도 때릴 수 있다. 미국은 물론 미국과 관계되는 다른 나라와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면 미국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지난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할 경우 화웨이는 ZTE보다 5배 더 많이 벌어들였다. 단순 계산으로도 가까운 시일 내에 ZTE의 5배 가까운 피해가 화웨이를 덮칠 수 있다. 그러나 IT 전문가들은 5배 정도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중국 IT 산업 전체의 종말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보조금 배제, 지적재산권 보호, 카르텔 금지, 회계의 투명성 등 미국식 기업경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중국 배제’는 한층 더 심해질 전망이다. 더불어 중국 배제는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에 이어 미국의 동맹국 모두에 확대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외교부 내에 중국국(局)까지 만든다고 하는데 과연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궁금하다. 중국 IT기업과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경우 한국산 모바일 기기의 미국 진출, 나아가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판매가 중단될 수 있다. 앞서 강조했듯이 중국 때리기에는 트럼프와 미 의회가 일심동체다. 90일 유예기간 중 이미 2주 이상이 흘러갔다. 시간은 시진핑의 편이 아니다. 미국과의 협상에 실패할 경우 중국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한순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꿈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이 중국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방권한법의 내용

제재 대상

화웨이, ZTE(中興通訊), HIKVISION(杭州海康威視数字技術), DAHUA Technology(浙江大華技術), HYTERA(海能達通信)

제재 내용

2019년 8월 31일 이후

ㆍ5개 중국 업체의 미 정부기관 입찰 금지

ㆍ5개 중국 업체가 제조한 부품을 쓴 기업의 미 정부기관 입찰 금지

2020년 8월 13일 이후

ㆍ5개 중국 업체 제품을 이용하는 기업의 미 정부기관 입찰 금지. 예컨대 화웨이의 통신시스템을 이용하는 한국 업체도 미 정부기관 입찰 자격 박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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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 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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