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스위스 다보스를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23일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5년 만에 스위스 다보스를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23일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이하 다보스포럼)이 열렸다. 매년 연초에 다뤄지는 글로벌 뉴스메이커 중 하나다. 올해로 49회째를 맞는 포럼의 중심테마는 ‘세계화 4.0(Globalization 4.0)’이다. 한국인의 귀에도 익숙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구조 형성(Shaping a Global Architecture in the Age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 다보스포럼의 부제다. 전 세계 정치·경제·문화를 주도하는 300여명의 지도급 인사가 참가했다. 세계화 4.0을 여는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주인공은 누구일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 판단에는 일본 총리 아베 신조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브라질 신임 대통령 자이르 보루소나르도 참석했지만, 참가자의 관심도나 다보스포럼의 올해 중심테마에 비춰보면 아베가 주인공이었다.

아베가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직접 행한 연설의 핵심은 민간기업이 수집한 개인 신상 정보 등 ‘데이터 유통망 구축’에 관한 것이다. 말 그대로, 인터넷에 버금가는 데이터 유통망을 글로벌 차원에서 구축하자는 것이 아베의 주장이자 제안이다. 기업이나 국가 차원이 아닌,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글로벌 조직을 통해 데이터를 공유하자는 생각이다. ‘자유와 신뢰’는 그 같은 글로벌 조직의 설립, 운용의 기본원칙이라 강조했다. 기업·정부의 데이터 조작이나 관여를 불허하고, 상품 노동력에 이어 글로벌 데이터 유통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2005년에 비해 글로벌 데이터 유통량이 무려 45배(2018년 기준)나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관리·통제할 글로벌 조직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베 연설의 근거이다.

아베가 다보스로 달려간 이유

2020년 도쿄올림픽에 가려져 무심하기 쉬운데, 일본은 올해 두 가지 큰일을 치를 예정이다. 4월 말의 신임 일왕(日王) 등극과 6월 말의 G20 정상회담이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는 올림픽에 앞서 펼쳐질 국제 이벤트 G20의 현장이다. 중심테마는 이미 굳혀졌다. 여기서도 ‘데이터의 국제화’다. 일본은 그동안 다보스포럼을 장관 차원에서 대응해왔다. 이번에 아베가 직접 달려간 이유는 바로 오사카 G20에 앞선 축포라 볼 수 있다. 무역전쟁과 더불어, 미국과 중국에 대한 글로벌 공신력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그 틈을 이.용해 데이터에 관한 일본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베의 의도다. 당연한 얘기지만 글로벌 데이터 유통망 조직이 신설될 경우 그 중심지가 일본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데이터’는 2019년 글로벌 경제를 달구는 키워드이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2017년 연초에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이 키워드로 등장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 관련 책을 읽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곧바로 국가적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가 신설됐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기존의 위원회를 폐지하고 새로운 조직 하나를 만든다.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위원회’다. ‘전략’이란 단어가 빠졌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둘 다 ‘혁명’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비장하다. 아베의 현재 움직임을 보면서 한국의 ‘선견지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용은 크게 다르다. 국내용 정치적 차원의 슬로건이 아닌, 경제적 차원의 글로벌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또 입이 아니라 발이다. 현재 아베는 데이터를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있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 올인하고 있는 현장이 디지털 비즈니스의 총아, 데이터이다.

한국에서는 해외토픽처럼 지나갔지만, 지난 1월 16일 타임매거진은 실리콘밸리를 깜짝 놀라게 한 기사 하나를 게재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이름으로 기고된 두 쪽짜리 제안서다. 내용은 간단히 말해 데이터에 관한 정부 관여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직접 나서 데이터 취급 기업에 대한 등록을 의무화하고, 데이터 거래에 관한 정보도 투명하게 공표할 것을 제안했다. 자신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데이터가 어떤 곳으로 흘러가서 사용되는지 개개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정부가 그 같은 과정에 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감시·통제하라는 것이 팀 쿡의 주장이다. 더불어 개개인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정보를 온라인상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강조한다. 어렵게 보이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한 얘기다.

‘데이터 브로커’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photo 뉴시스
‘데이터 브로커’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photo 뉴시스

데이터 브로커로 전락한 페이스북

처음 기사를 봤을 때 필자가 느낀 것은 ‘팀 쿡=조지 오웰 1984년의 홍위병’이다.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데이터의 정부 관여는 공산당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국가만능주의’의 소산으로 느껴진다.

개인 프라이버시 관리를 민간 기업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다룬다는 것은 개인을 정부 통제권에 둔다는 의미가 된다. 팀 쿡은 개인이 아닌, 개인 프라이버시를 다루는 ‘IT기업에 대한 통제’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똑같다. 떡을 만질 경우 떡고물도 딸려오게 마련이다. 팀 쿡이 개인 프라이버시에 관한 정부 관여 필요성을 역설한 이유는 간단하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페이스북의 ‘봉이 김선달식’ 데이터 비즈니스가 주된 이유다. ‘데이터 브로커’란 말은 지난해 봄부터 페이스북에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다. 2018년 봄 기준으로, 페이스북은 150여 기업에 8700만 페이스북 가입자의 데이터를 넘겼다. 필자의 생일 2주 전, 집 주변 레스토랑에서 생일축하용 할인 행사에 관한 이메일 광고가 날아왔다. 이 또한 페이스북의 데이터 ‘무단 방출’에 연결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것이 페이스북의 ‘만행’이다. 인류의 미래를 구원해줄 듯한 기업이자 창조자로 떠올랐지만, 지난해 이후 ‘데이터 브로커’로 전락한 곳이 페이스북이다.

2018년 4월 청문회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은 데이터를 팔고 돈을 받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법적으로 위증죄에 걸리지 않는 말일 뿐, 결과적으로 보면 파렴치범의 전형적인 변명이다. 데이터를 기업에 넘기기는 했지만 ‘직접’ 돈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옳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달라진다. 데이터를 넘겨받은 기업이 페이스북에 광고를 실을 경우 광고에 따른 수익이 자연스럽게 페이스북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돈을 벌어들인다는 점에서 결과는 똑같다. 과정상 직접적인 돈 거래는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한 결과적 거래로 페이스북의 수익이 올라간다. 밀레니얼 세대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은 당연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내가 자주 가는 여름 여행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쾌해진다. 독신여성일 경우 불안해질 수도 있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이용, 기업에 중간다리를 놓아 폭리를 취하는 ‘데이터 브로커’ 페이스북의 일그러진 민낯이다. 가까운 시일 내 구체화될 전망이지만, 페이스북에 대한 집단소송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페이스북보다는 덜하겠지만, 모바일을 통해 그 같은 ‘데이터 브로커’의 만행을 방조해온 애플도 소송의 예봉을 피해가기 어렵다. 구글과 아마존닷컴도 같은 운명이다. 팀 쿡의 기고문은 이 같은 공세에 맞선 사전 대응책에 해당한다. 애플의 주된 비즈니스는 아이폰과 같은 디바이스 판매에 있다. 데이터를 통한 광고수익을 노리는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르다.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닷컴을 지칭하는 이른바 GAFA의 맏형이란 위치도 개인 데이터에 관한 정부 개입 촉구에 나선 배경 중 하나다.

데이터 비즈니스에 관한 글로벌 흐름을 이해한다면, 정부 관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팀 쿡의 기고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미국 정부의 개인 데이터 관여는 예상된 수순이다. 이미 상원에서 테드 크루즈 의원이 정부의 적극적인 관여를 강조하고 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매달지에 관한 문제’로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리버럴 미디어로부터 조지 오웰 추종자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팀 쿡의 기고문 덕분이겠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도 비난을 받지 않을 상황이 나타나면서 미국 의회의 데이터 관련법 제정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즉 국가의 데이터 관여가 적극화된다는 의미다.

데이터의 국가 관여는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볼 때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 물론 중국 공산당처럼 정권유지 차원이나 부정부패를 감추려는 의도의 데이터 조작이나 통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 맞는, 자유 추구와 테러로부터의 국민 보호라는 안전망 확보 차원의 국가 개입이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는 국가적 관여의 근거와 비슷하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아베가 주장한 데이터 유통망 구축의 배경에는 미국과 다른 개입 명분이 하나 더 있다. 과세, 즉 돈이다. GAFA는 미국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고용의 대부분이 미국 중심이고 유럽·도쿄는 물론이고 서울은 변방에 불과하다. 모든 회계장부가 미국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유럽 도쿄에서 돈을 벌지만, 인터넷 디지털 기업이란 점을 ‘악용’해 세금포탈을 당연시 여긴다. 아베의 다보스포럼 출발 직전에 때 맞춰 싱가포르 구글법인이 일본 구글법인에서 얻은 이익에 대한 세금을 포탈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싱가포르 법인세가 일본에 비해 15%나 싼 것을 이용해 일본에서의 수익에 대한 세금을 싱가포르에 납부하는 과정에서 10억엔 정도 포탈했다는 기사다. 일본 국세청이 일본 구글을 상대로 10억엔 추징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이 기사의 결론이다.

‘데이터’를 2019년 IT의 키워드라 할 때 ‘데이터 과세’는 2019년 이후 펼쳐질 세계 각국 정부의 새로운 과제다. 인터넷 기업에 대한 세금을 의무화하고 세금 납부처를 이익이 발생하는 지역에 둔다는 것이 데이터 과세 확보의 기본이다. 논의는 2~3년 전부터 이미 시작됐지만, 구체적인 과세 확보 방안이나 기준은 아직 모호한 상태다. 서울에서 한국인이 영어판 구글에 들어가 프랑스 내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파리 내 호텔 광고가 중국어로 뜰 경우 광고 수익이 어떤 나라로 흘러갈까. 어디에 과세를 할 수 있을까? 한국·미국·프랑스·중국 각자 자기 영역이라 우길 근거가 조금씩 다 있다. 현재 전 세계는 이하 네 가지 유형의 데이터 과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별 독자적 디지털 과세(영국·프랑스), 일률적 공통된 디지털 과세(유럽연합), 네트워크 서비스기업 자체에 대한 과세(이스라엘·인도), 디지털 과세에 대한 신규 법인세 법 제정(G20·OECD) 등의 4가지 방안이다. GAFA와 같은 초대형 IT기업에 대한 과세는 이미 시작된 상태지만 중형, 나아가 소형 디지털 비즈니스 모두를 대상으로 한 과세가 각국의 과제다.

‘데이터 과세’가 각국의 과제

데이터는 2019년 비즈니스의 기본 화두가 되면서 디지털 비즈니스의 중심 재료로 부상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데이터 관여나 관리는 당연한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재료=자국에서 발생한 개개인의 데이터’라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중국 기업이 무단으로 한국인의 개인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거기에 따른 국가적 책임까지 묻자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당연하지만 국가 간, 글로벌 차원의 데이터 교류나 방출에 따른 원칙과 법이 필요하게 된다. 오사카 G20은 글로벌 데이터 스탠더드, 나아가 디지털 과세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개인 플레이로 나가려는 프랑스·영국과, 글로벌 룰에 맞추려는 G20·OECD 사이의 간격이 어느 정도 좁혀질지가 관건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IT기업에 대한 과세를 공약으로 내건 인물이다. 아마존닷컴을 중소 가게 붕괴의 원흉으로 지목한 상태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초대형 IT기업이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적 차원에서는 손해다. 어정쩡한 입장이지만, 기후 문제에서 보듯 ‘미국만은 예외 또는 특별 취급’이란 차원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불과 2년 전인 2017년부터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는 IT기업가에서 IT투자가로 변신했다. ‘비전펀드(Vision fund)’란 이름의 투자회사로, 투자기금이 1000억달러에 달한다. 세계 1위 투자기업이다. 투자기금 600억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 황태자 ‘무하마드 빈 살만’이 제공한 것이다. 미국 은행 이자보다 높은 대가를 받는 조건으로 손정의에게 맡긴 것이다. 손정의는 투자받은 돈을 다시 IT기업에 투자한다. 따라서 매년 손정의가 지불할 이자만도 엄청나다. 손정의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투자를 끌어낼 당시 일화는 유명하다. 설득에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분, 무려 600억달러를 끌어들였다. 키워드는 데이터였다. “20세기는 석유, 21세기는 데이터가 돈이다.”

국내 차원에서 벌어지는 데이터 관련 논쟁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흐름을 파악하고 앞서나가지 않으면 결국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IT강국이라던 한국이 언제부턴가 ‘IT 갈라파고스섬’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적 슬로건만 난무할 뿐 제대로 된 과정, 결과가 전무하다. 반도체가 정물화라면, 데이터는 추상화다. 인공지능은 큐비즘의 극치다. 당연하지만, 다보스포럼에서 보듯 2019년 세계 IT는 데이터에서 출발하고 있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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