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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 연구의 최전선] 중앙대 입자물리학자 이현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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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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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중앙대 입자물리학자 이현민 교수

윔프? 액시온? 심프? 진짜 암흑물질을 찾아라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지난 2월 19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중앙대 정문을 지나 물리학과 이현민 교수를 만나러 갔다. 교정은 졸업식으로 들뜬 분위기. 연구실이 있는 305동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310호의 이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니, 한쪽 벽면 대형 칠판에 수식이 가득 쓰여 있었다. 물리학과 교수들은 보통 연구실에 대형 칠판을 설치해 놓고 있다.
   
   이현민 교수는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구하고, 특히 최근에는 암흑물질 연구에 힘써왔다. 그의 암흑물질 연구 관련 논문 수를 확인하기 위해 ‘arXiv.org’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학자들은 학술지 기고 전 이 사이트에 논문을 올린다. 이른바 ‘프리 프린트(pre-print)’ 사이트라고 한다. 이현민 교수의 이름(Lee Hyun Min)을 입력하니, 논문 113편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이후에 쓴 논문만 보면 10편 중 6편이 암흑물질 관련이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논문 제목을 옮겨보면 이렇다. ‘붕괴하는 암흑물질로서의 유니타리 인플레이션’(2019년 2월), ‘스핀 2 매개입자로 암흑물질 직접 검출하기’(2018년 11월), ‘경입자-쿼크 포탈 암흑물질’(2018년 10월)….
   
   알고 보니 이현민 교수의 서울대 물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1998~2002) 지도교수가 암흑물질 대가다. 이현민 교수는 “지도교수였던 김진의 교수님은 당시 한국에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가장 먼저 상을 받을 것이라고 얘기됐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를 퇴직하고 지금은 경희대 석좌교수로 일한다.
   
   암흑물질, 있는 줄은 아는데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암흑물질이라는 용어는 1933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 프리츠 츠비키가 만들었고, 암흑물질의 존재를 천문학계와 물리학계가 받아들인 게 1970년대 중반이다. 베라 루빈이라는 미국 천문학자가 은하의 회전을 연구하면서 뭔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전속도가 눈에 보이는 질량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 그 뒤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정체를 알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으나, 아직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이현민 교수는 오랜 암흑물질 추적에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중력파는 이론 예측에서 실제 검출까지 100년이 걸렸다”며 담담한 표정이었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우선 ‘일반물질’보다 훨씬 양이 많기 때문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에너지의 5%가 일반물질인데, 암흑물질은 27%나 차지한다. 암흑물질이 일반물질보다 5.4배나 양이 많은 것이다.(일반물질과 암흑물질 말고 우주에는 암흑에너지라는 미지의 존재도 있다. 암흑에너지가 물질-에너지의 68%를 차지한다.)
   
   암흑물질 후보는 수도 없이 많다. 이현민 교수는 “입자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기술하기 위해 물리학자는 가상입자를 제안한다. 그 가상입자가 암흑물질 후보도 되는 것”이라며 암흑물질 후보들이 나와 있는 도표를 보여주는데 정말 많았다. 족히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이 중에서 오래도록 입자물리학계의 주목을 끈 유력한 후보는 두 개다. 윔프(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와 액시온(AXION)이라는 가상 입자다.
   
   

   실험 통해서도 흔적 찾지 못하는 윔프
   
   이 교수는 “윔프는 1977년 한국계 미국 물리학자 이휘소와 스티븐 와인버그가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휘소 박사는 당시 미국 입자물리학계의 스타 중 한 명이었고, 스티븐 와인버그(1979년 노벨물리학상)는 그와 절친이었다. 당시 이휘소와 와인버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무거운 중성미자’.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매우 가벼워서 ‘미자(微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무거운 중성미자가 존재하고, 그 질량이 2GeV(20억전자볼트)라면 암흑물질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두 사람이 처음 계산했다. 이휘소 박사가 (1977년에)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윔프 연구에서 더 업적을 냈을 것이다.”
   
   이휘소와 와인버그의 ‘무거운 중성미자’의 아이디어를 체계적인 모델로 만들어낸 게 초대칭이론이다. 초대칭이론은 ‘표준모형’의 차세대 입자물리 이론 후보 중 하나다. 이휘소와 와인버그가 제안한 ‘무거운 중성미자’는 초대칭이론을 구성하는 입자들에 포함돼 ‘뉴트랄리노(neutralino)’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뉴트랄리노를 일부 물리학자는 암흑물질 윔프의 후보로 보고 있다. 뉴트랄리노는 실험실에서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아직도 가상의 입자다.
   
   윔프의 또 다른 후보는 고차원 공간인 여분차원에 있을 수 있는 ‘무거운 게이지 보존 입자’다. ‘무거운 게이지 보존 입자’가 무엇인지는 설명이 길어지니 여기서는 그런 게 있다고만 하고 넘어가자. 이현민 교수는 “여분차원에서 기인하는 암흑물질의 경우, 뉴트랄리노와 달리 이론적인 면에서 주목을 덜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뉴트랄리노가 윔프 후보일 가능성이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현민 교수는 “윔프 패러다임이 굉장히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뉴트랄리노 존재의 근본이 되는 초대칭이론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입자충돌기(LHC·대형강입자충돌기)에서 예상과는 달리 초대칭입자가 검출되지 않고 있어서다.
   
   윔프를 직접 검출하려는 실험에서도 윔프의 흔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윔프 직접 검출 실험은 ‘제논(원소기호 Xe) 실험’이다. 제논 액체를 이용한 지하 실험은 미국의 LUX(Large Underground Xenon experiment·대형 지하 제논 실험)와 이탈리아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의 제논-100, 제논 1T실험이 유명하다. LUX 실험설비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홈스테이크 광산의 지하 1480m 깊이에 설치되어 있다.
   
   뉴트랄리노를 검출하려는 원리는, 이 가상 입자가 일반물질(원자핵)과 상호작용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 미약한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출기가 예민해야 한다. 우주선(cosmic ray)과 같은 잡음 차단이 중요하다. 그래서 연구자는 지하 깊숙이 암흑물질 검출기를 갖고 들어간다. 한국의 경우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의 지하 수백m 공간에 검출기를 운용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하실험연구단(단장 김영덕)이 이곳에서 ‘코사인 실험’을 하고 있다.
   
   이현민 교수는 윔프 연구를 하면서 ‘매개입자(mediator) 중심모델’을 제안했다. “암흑물질과 일반물질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입자가 있을 수 있다. 이 매개입자의 성질을 이해하면 암흑물질을 알 수 있다는 게 매개입자 중심모델의 아이디어다. 나는 매개입자를 직접 실험으로 검증하는 노력을 5년 이상 해왔다. 윔프를 찾기 위한 또 다른 접근이다. 이 연구는 박명훈 교수(서울과학기술대)와 함께했다.”
   
   
   윔프보다 가벼운 액시온
   
   액시온(AXION)은 암흑물질로 유력한 또 다른 후보다. 액시온은 윔프보다 매우 가볍다. 윔프 질량이 수백GeV(10억전자볼트)로 예상되나, 액시온은 밀리(10-3)~마이크로(10-6) 전자볼트 질량을 갖고 있을 걸로 추정된다. 이 교수의 서울대 은사인 김진의 교수가 액시온 연구자다. 김진의 교수는 1980년을 전후해 세계 최초로 액시온 입자를 다른 연구자와 함께 제안했다.
   
   액시온은 아직 검출기의 민감도가 충분치 않아 그 존재 여부가 검증되지 않고 있다. 검증을 위해서는 강력한 초전도 자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8테슬러 수준이지만, 초전도 자석의 세기를 이보다 2~3배는 더 올려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대전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은 액시온 검출 실험도 하고 있다. 해외의 유명한 액시온 검출 실험으로는 미국의 ADMX가 있다.
   
   
   최근에 연구 집중하는 건 심프
   
   이 교수의 최근 암흑물질 연구는 심프(SIMP·Strong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에 집중되고 있다. 심프는 미국 버클리대학의 무라야마 히토시(村山齊) 교수가 연구원들과 공동으로 2014년에 내놓은 암흑물질 후보 입자다. 무라야마 교수의 책 ‘왜, 우리가 우주에 존재하는가’가 한국에 번역, 소개돼 있다. 이현민 교수는 무라야마 교수의 연구를 본 직후 심프 연구에 뛰어들었다. 지난 2월까지 중앙대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지금은 한국교원대 교수로 일하는 서민석 박사와 함께 연구를 했고, 2015년 5월 논문을 썼다.
   
   “윔프와는 달리 심프는 다른 심프 입자와 강하게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심프의 이런 특성이 은하의 미시 구조를 잘 설명한다. 즉 우리가 망원경으로 보는 은하의 모양은 디스크이다. 통상, 회전 방향으로 납작한 원반 모양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건 일반물질이고 우리 눈으로 관측하는 은하 모양은 은하 내 일반물질 분포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암흑물질의 은하 내 분포는 다르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다르다. 암흑물질은 은하 중심에 몰려 있지 않고, 은하 중심에서부터 멀리까지 둥근원(Halo·헤일로) 형태로 퍼져 있다. 일반물질 은하가 날개가 긴 비행접시 모양이라면 암흑물질의 은하 분포는 커다른 구형이다. 심프는 암흑물질이 헤일로 형태인가를 잘 설명한다. 암흑물질간에 자체 상호작용이 있으면 은하 중심에 암흑물질이 몰리지 않는다. 중심의 밀도가 차츰 줄어든다. 은하 안쪽에 있는 별의 움직임, 즉 회전속도가 심프 모형과 잘 맞는다. 기존의 윔프 모형만으로는 암흑물질이 퍼져 있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교수는 무라야마 교수의 연구를 발전시켜 심프 모형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교수는 ‘암흑광자’ 이론을 내놓았다. 암흑물질과 암흑물질 간에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암흑광자가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다. 광자, 즉 빛 알갱이는 전하를 띠는 일반물질 간에 상호작용을 매개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암흑광자’와 ‘광자’가 섞임이라는 작용을 할 경우, 이를 통해 암흑물질과 일반물질은 상호작용한다고 ‘암흑광자’ 이론은 예측한다. 이 교수는 윔프 연구에서 수행했던 모든 계산을 응용하여 심프 연구에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적용했다. 그 결과 심프 입자의 특징은 1GeV보다 질량이 가볍고, 심프와 일반물질 간에 상호작용이 굉장히 약하다는 걸 알아냈다. 이 교수는 “심프 모델을 2015년에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갈릴레이학회에 참석했다가 알게 된 이스라엘의 부부 물리학자 에릭 쿠플릭과 요닛 호크베르크, 그리고 무라야마 교수와 공동연구를 했다. 이스라엘의 두 연구자는 심프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이스라엘 히브루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심프 모형의 완성판은 2018년 고병원 고등과학원(KIAS) 교수와 공동 연구로 세상에 내놓았다.
   
   심프는 가볍기 때문에 전자 충돌 실험을 통해 검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속기 실험에서 전자-양전자 충돌로 확인 가능하며, 특히 일본 KEK(국립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가 하고 있는 ‘벨 2(Belle 2)’ 실험에서 볼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는 “일본 KEK의 대변인으로부터 ‘암흑광자’ 관련 발표를 오는 10월에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심프에 대한 학자들의 논문 인용 횟수는 높지 않다. 하지만 학회에 꾸준히 초청받고 있어 인지도가 좋아졌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 역시 올 가을에 스위스 제네바의 CERN에 연구년을 보내러 간다고 했다. 암흑물질 연구 관련 취재는 크게 마무리되었고, 개인적인 부분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 교수가 “딸과 (서울) 명동에서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두 시간이나 된 줄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인터뷰를 황급히 마무리 지어야 했다. 암흑물질 취재에 약간의 ‘암흑’을 남긴 채 연구실을 나왔다. 그리고 급경사길을 다시 걸어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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