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의 한 주유소. ⓒphoto 뉴시스
경기도 안성의 한 주유소. ⓒphoto 뉴시스

유류세가 5월 7일부터 리터당 휘발유 65원, 경유 46원, LPG 16원씩 오른다. 정부가 한시적 유류세 인하 조치를 8월 말까지 연장하는 대신 인하 폭을 현행 15%에서 7%로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두 달 동안 이미 기름값은 리터당 70원이나 올라버렸다. 급등하는 국제유가와 침체된 내수경기를 고려했다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언 발에 오줌 누기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들의 심정은 절박하기만 한데 유류세 인하 조치가 끝나는 8월 말에는 정부가 또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 알 수 없다.

널뛰는 국제유가로 유류세 인하 조치 매번 빛바래

지난해 11월의 한시적 유류세 인하 조치는 국제유가가 18주 동안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시행된 반가운 친(親)서민 정책이었다. 상황은 절박했다. 전국의 평균 소비자 가격이 리터당 휘발유 1690원, 경유는 1495원까지 치솟았고, 연이은 경제 정책 실패로 서민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유류세를 10% 인하했던 2008년의 초고유가 상황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정부가 엄청난 세수 결손에도 불구하고 유류세를 인하한 것은 서민경제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유류세 15% 인하를 시행하자마자 치솟던 국제유가가 갑자기 곤두박질쳐버렸다. 배럴당 85달러까지 올랐던 두바이유는 석 달 만에 50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의 휘발유 가격도 반토막이 나버렸다. 결국 국내 평균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휘발유 1342원, 경유 1240원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애써 깎아준 휘발유 123원, 경유 87원의 세금 인하 효과는 완전히 빛을 잃었다. 2조원이 넘는 세수 결손을 떠안은 정부도 뚜렷한 정책 효과는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겨우 휘발유·경유·LPG의 소비가 6% 정도 늘어난 것이 경기 활성화의 증거라는 옹색한 해명만 내놓았다.

이런 정책 실패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광우병 파동도 모자라 국제유가까지 급등했던 2008년 3월에도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리터당 1658원이었던 휘발유가 1950원까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리터당 82원의 유류세 인하는 무의미해져버렸다. 결국 1조3000억원의 세수 결손만 떠안게 된 정부는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정유사와 소비자들에게 화풀이를 해버렸다. 알량한 회계사 경력을 앞세운 신임 최중경 산업부 장관은 이른바 ‘특위’까지 만들어 휘발유·경유의 원가를 파악하겠다고 법석을 떨었고, 알뜰주유소·전자상거래라는 황당한 제도를 도입해서 석유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농협까지 기름 시장에 진출하면서 결국 영세 주유소 업자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반면 2009년에는 정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휘발유 11.4%, 경유 10.3%나 유류세 할증을 밀어붙여 10년 동안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갔다.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은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헌법 제59조의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다만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지방세인 주행세의 경우에는 국회가 시장 상황에 따라 30%의 범위에서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위임해놓았을 뿐이다.

따라서 지난해 11월의 유류세 15% 한시적 ‘인하’ 조치는 실제로 교통·에너지·환경세의 탄력세율 변경 조치였다. 2009년부터 적용하던 탄력세율을 휘발유 11.4%, 경유 10.3%의 ‘할증’에서 휘발유 5.26%, 경유 6.18%의 ‘할인’으로 변경했다. 산업부가 들먹이는 ‘환원’은 국회가 정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 명시된 리터당 휘발유 475원, 경유 340원으로 되돌려놓는다는 뜻이 되어야만 한다. 정부가 정책 실패에 대한 화풀이로 할증해놓은 2009년의 탄력세율이 환원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행정편의주의의 극치

탄력세율은 유가 급등에 대비한 정부의 시혜(施惠) 수단이 아니다. 국회가 정해놓은 세금을 정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임의로 인상하도록 해주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제2조 ③항의 규정에 따라 국민 경제의 효율적 운용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해야 한다. 탄력세율을 국제유가와 연동시키는 명백한 기준을 정해서 기름값 안정을 위한 예측가능한 제도로 운영해야만 한다. 탄력세 제도가 널뛰듯 오르내리는 국제유가 환경에서 기름값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류세의 부과 방식과 납부 주체도 변경해야 한다. 휘발유·경유를 정유사에서 반출하는 시점에 정유사에 유류세를 부과하는 현행 제도는 지나치게 행정편의주의적인 것이다. 정유사가 소비자에게 아직 판매하지도 않은 제품에 부과되는 세금을 미리 선납(先納)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소비자는 자신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유류세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 휘발유·경유의 실제 공장도가격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정부가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정유사에 떠넘겨버린 셈이다.

정부가 탄력세율을 변경할 때 발생하는 혼란도 감당할 수 없다. 주유소는 탄력세율 할인 혜택을 즉시 소비자가격에 반영할 수가 없다. 주유소의 탱크에 들어 있는 휘발유·경유에는 이미 탄력세율 할인 이전의 유류세가 부과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탄력세율을 할증하는 경우에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주유소 업자는 탱크에 남아 있는 휘발유·경유에 인상된 유류세를 적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국세청이 판매 시점에 소비자로부터 직접 유류세를 징수하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일이다. 국세청의 편의를 위해 정유사·주유소·소비자 모두가 불필요한 혼란을 겪어야 할 이유가 없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도 필요하다. 과도한 유류세가 ‘가짜’ 탈세 기름의 은밀한 생산과 유통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치고 있는 환급금·보조금·면세유 제도도 손봐야 한다. 유류세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부당하게 왜곡시키는 상황도 개선해야 한다. 경유에 대한 환경부의 과도한 거부감도 바로잡아야 한다. 경유를 퇴출시키고, LPG를 써야 한다는 환경부의 억지는 탈원전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경부의 윤리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유류 관련 협회의 관피아들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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