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뉴욕주 포모나의 로클랜드카운티 보건소에 세워진 홍역 백신 무료접종 안내판. ⓒphoto 뉴시스
최근 미국 뉴욕주 포모나의 로클랜드카운티 보건소에 세워진 홍역 백신 무료접종 안내판. ⓒphoto 뉴시스

미국이 일부 주의 홍역 비상사태에 이어 백신 접종 거부 문제로 시끄럽다. 올해 초부터 지난 4월 10일까지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홍역 확진자는 약 370명. 종교적 신념과 가짜 정보로 백신 거부 현상이 늘면서 홍역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환자가 급증하자 뉴욕시는 ‘공공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브루클린의 특정 지역에는 백신 강제접종 명령이 내려졌다.

미국, 프랑스 등 홍역 비상

홍역이 유행하는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프랑스는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가장 심한 홍역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다. 프랑스는 지난 한 해 동안 2902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해 이 중 3명이 사망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지난해 11월까지 2427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8명이 사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세르비아, 러시아 순으로 홍역 발병 사례가 많았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2014년 이후 매년 20명 미만의 환자가 발생해 ‘사라진 감염병’으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첫 홍역 환자가 발생한 뒤 38명이 감염돼 홍역을 완전히 비켜가지 못했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홍역 바이러스에 감염돼 귀국하는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홍역은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전문가들은 홍역의 경우 백신을 한 번 맞으면 예방률이 95%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백신 접종 거부로 인해 세계인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게 WHO의 설명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또한 뉴욕에서 홍역이 확산된 원인이 과학적 정보 없이 공포감을 조장해 백신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체 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종교적 문제다. “육체는 신이 주신 선물이고, 천연두는 신이 내린 벌이다. 그런데 백신과 같은 이물질을 몸에 집어넣어 신과 인간관계의 소통을 막으려는 시도는 악마의 작업이다”라고 영국의 신학자 에드워드 메시는 주장했다. 또 가톨릭에서는 풍진 등 일부 예방백신에 대해 부분적 거부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60년대 낙태아의 태내 조직으로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이 거부 이유다.

음모론도 한몫한다. 미국에서는 백신을 맞으면 신체적 결함(자폐증)이나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가짜 정보가 유대인 집단에서 전화와 음성메일, 전단지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경우가 늘면서 퇴치 직전까지 갔던 홍역이나 백일해 등이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백신 불신 또한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탈리아는 백신 접종 의무화 유예 법안을 통과시켰을 정도다. 탈레반들도 기독교에서 무슬림을 죽이고자 만든 독이 소아마비 백신이라며 반대 운동을 강요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집단면역이 무너져 대유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예방접종은 우리 몸이 병원체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일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각종 바이러스나 세균 등이 너무 강력하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병원체에 질 수 있다.

사실 홍역은 MMR 백신만 잘 챙겨 맞으면 예방이 가능한 감염병이다. MMR은 홍역(Measles)-볼거리(Mumps)-풍진(Rubella)을 한 번에 예방하는 백신이다. 풍진도 예방하기 때문에 여자아이는 나중에 결혼 후 기형아 출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맞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템플대 학생들이 홍역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서 있다. ⓒphoto 뉴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템플대 학생들이 홍역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서 있다. ⓒphoto 뉴시스

대한감염학회가 권하는 성인 필수 백신

홍역은 과거의 질병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환자가 보고된다. 이 때문에 대한감염학회는 각종 감염성 질환에 대한 예방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즘 개발되고 있는 백신은 난치성 질환을 예방하는 쪽에도 초점이 맞춰져 효과가 크다. 특히 대한감염학회는 어떤 백신을 맞아야 좋은지 잘 모르는 성인을 위해 홍역 외에 몇 가지 필수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독감과 폐렴, 수두-대상포진,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 백신 등이 그것이다.

대한감염학회가 첫째로 손꼽는 필수 접종은 독감 백신이다. 특히 노인들에게 매년 1회씩 맞을 것을 권장한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독감으로 숨지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을 퍼뜨리는 장본인은 인플루엔자바이러스. 다른 바이러스와 달리 이 바이러스는 매년 유행하는 균주가 다르다. DNA보다 불안정한 RNA에 유전정보가 들어 있어 돌연변이가 많은 탓이다. 돌연변이가 많을수록 바이러스 수용체도 다양하다. 그래서 WHO는 매년 그해 겨울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표준 인플루엔자바이러스주를 공표해 백신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 백신은 한 번에 세 가지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으로 일명 ‘복합백신’으로 불린다. 생후 2개월부터 접종을 시작하지만 당시에 형성된 항체도 시간이 흐르면서 면역력이 줄어든다. 또 야외에서 작업하거나 활동을 많이 한다면 파상풍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서도 예방접종이 필수다. 대한감염학회는 만 11~12세 때부터 10년마다 Td(파상풍-디프테리아) 백신 추가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많이 발생하는 대상포진 백신도 필수다. 이 질병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해 나타나는데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병할 수 있다. 고령자뿐 아니라 야근이 잦고 스트레스가 많아 면역력이 떨어진 젊은 층에게도 나타난다. 백신을 맞으면 약 70%까지 예방이 가능하다. 대한감염학회는 50대 이상 성인에게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폐렴구균 백신도 꼭 맞아야 하는 백신 중 하나다. 폐렴구균은 폐렴이나 패혈증, 뇌수막염 등을 일으키는 세균이다. 사람의 기도에 있다가 신체 접촉이나 기침·재채기 등에 따른 호흡기 비말(침방울)과 공기로 전파돼 만성질환자나 노인의 사망률을 높인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대한감염학회는 65세 이상 노인은 평생 1회, 65세 이전에 접종했다면 이후 5년이 지났을 때 한 번 더 맞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 2013년 5월부터 보건소에서 폐렴구균 무료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A형·B형 간염 백신, 수막구균 백신,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을 성인이 맞아야 할 백신으로 꼽고 있다. 예방보다 나은 치료는 없으니 미리 백신 예방접종 등을 챙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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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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