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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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곤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1992년 귀국 당시 한국에 QCD 연구자가 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5일 고려대 아산이학관 4층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최 교수로부터 이 말을 듣고 ‘원조 다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라고 농반진반으로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성자라는 입자들을 핵 안에 붙들어놓는 힘이 강력이고, 이걸 설명하는 물리학이 QCD다. QCD는 ‘Quantum Chromodynamics’의 약자이고 한국어로는 양자색역학이다. 최 교수는 QCD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연의 기본적인 힘에는 4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전자기력과 중력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력과 약력은 원자핵 안에서만 나타나는 힘이어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강력과 약력은 다른 두 힘에 비해 늦게 발견됐다.” 최 교수에 따르면 대학 물리학과 학부생에게는 전자기력과 중력만을 가르친다. 강력과 약력은 입자물리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만 접하게 된다.

최준곤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 1980년 학번. QCD가 이론적으로 정립된 게 1970년대 말이니, 당시는 강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위한 연구가 뜨끈뜨끈할 때였다. 입자물리학계는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는 마무리돼가고 있었고, 강력이 학자들의 경쟁 무대였다. 최 교수는 “1980년대 입자물리학의 이론적 발전이 많았다. 1990년대까지도 그랬다”라고 말했다.

하버드 물리학과에 12년 만에 들어간 한국인

QCD는 양성자를 핵 안에 붙들어놓는 힘이지만, 사실 양성자 내부에 있는 쿼크라는 입자 간에 작용하는 힘을 설명한다. 양성자 안에 세 개씩 들어 있는 쿼크는 서로 간에 힘 입자인 글루온을 주고받으며 강한 상호작용을 한다. 양자색역학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강한 상호작용에 색전하(color charge)라는 물리량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본입자인 줄 알았던 양성자가 내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게 드러난 건 1968~1969년 무렵의 일이다.(실험물리학자인 제롬 프리드먼을 포함한 세 명은 이 연구로 1990년 노벨상을 받았다.) 1973년에는 강력이 ‘점근적 자유도’라는 이색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중력이나 전자기력은 두 입자 간에 작용하는 힘으로 두 입자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그러나 양성자 안의 내부 입자, 즉 쿼크 간에 작동하는 힘은 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강해지고 가까울수록 약해진다. 이런 독특한 특징을 ‘점근적 자유도’라고 하며, 미국 물리학자 세 사람(데이비드 그로스, 데이비드 폴리처, 프랑크 윌첵)이 알아냈다.(2004년 노벨물리학상)

최 교수는 1984년에 미국 하버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최 교수는 하버드대 물리학과에 12년 만에 들어간 한국인이다.

그가 하버드대에 처음 입학해서는 양자장이론(field theory)을 시드니 콜먼(Sidney Coleman·2007년 사망) 교수지도로 공부하려 했다. 그런데 하버드대 대학원 물리학과의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다. 콜먼그룹의 학생도 똑똑하지만 하워드조자이그룹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여기서는 박살나겠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최 교수는 35년도 더 된 유학 때의 느낌이 생생한 듯했다.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공부가 힘들어 고생했다. 우울증이 걸릴 정도였다.”

조자이그룹에 들어가서 QCD를 공부했다. 1970년대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GUT)을 연구한 조자이는 당시 노벨상을 받을 거라는 얘기를 듣는 스타 물리학자였다. 대통일이론은 전자기력+약력+강력이라는 자연의 세 가지 힘을 하나의 언어로 기술하는 이론이다. 다르게 보이는 세 가지 상호작용이 사실은 하나의 힘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이 우주 온도가 매우 뜨거웠던 시절에는 한 가지 힘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이 힘들은 우주가 식으면서 갈라져 나왔다고 얘기된다. 하지만 그 이론이 내놓은 예측 중 하나인 ‘양성자 붕괴’가 실험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일이론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당시 하워드 조자이는 ‘S’ 자로 시작하는 연구를 하지 못하게 했다. ‘String theory(끈이론)’ ‘Supersymmetry(초대칭)’이론과 같은 물리학 이론은 그의 제자들에게 ‘금단의 땅’이었다. “‘S’자 이론은 틀렸다”며 제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조차 아주 싫어했다. 끈이론은 우주의 근본 구성 물질이 아주 작은 끈이라는 생각이고, 초대칭이론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 속에 나오는 입자들이 각각의 초대칭 짝을 갖는다는 생각이다. 초대칭이론은 입자물리학의 계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인데 최 교수는 유학 시절 연구실 분위기 때문에 초대칭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입자물리학자 중 초대칭을 연구하지 않은 건 나뿐일 거다. 한데 초대칭이론이 최근에 틀린 걸로 드러났다”고 했다.

현재 하버드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리사 랜들은 최준곤 교수의 하버드대 대학원 물리학과 1년 선배다. 랜들은 대학원생으로 공부할 때 스승 조자이가 금한 ‘S’ 자 연구를 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최 교수는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의 분위기가 지금은 달라졌다고 했다. 지금은 끈이론의 산실이 되었다고 한다. 입자현상론의 중심지였던 하버드대의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진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하버드대 물리학과가 끈이론 쪽으로 기운 건, 조자이 다음 세대 교수들이 끈이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블랙홀을 통해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쿠므런 바파, 앤드루 스트로밍저가 대표적인 끈이론가다.

최 교수는 유학 시절 스승을 돌아보며 “조자이는 터프했다”고 했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모든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너는 바보야(You are stupid!)”였다고 한다.

조자이 교수는 대통일이론 연구 이후에는 ‘유효이론(effective theory)’을 연구해 ‘유효이론’ 신봉자가 됐다. 최준곤 교수가 연구한 것도 QCD의 유효이론이다. 최 교수는 “QCD 연구자도 맞는 말이지만, 유효이론가라고 부르면 나는 마음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입자는 에너지 수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본입자가 나타난다. “양파 껍질을 까면 그 안에 또 다른 양파 껍질이 나타나는 식”이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가령 인류는 오랫동안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가 원자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원자핵 속에 내부 구조가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들어 있다는 걸 알아냈다. 이는 높은 에너지로 원자핵을 깰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성자 속에 쿼크가 있다는 것도 더 높은 에너지로 양성자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알아낸 성과였다. 입자가속기 시대가 낳은 성과였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입자가속기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거대강입자충돌기(LHC)이다.

최 교수 같은 유효이론 연구자는 에너지가 달라졌을 때 물리학 기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그 차이를 메우는 작업을 사이언스(과학)라고 본다.

QCD, 즉 강한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건, 전자기력과 약력을 기술하는 QED(양자전자기약력)보다 어렵다. QCD를 이해하는 방법은 LHC 안에서 양성자와 양성자가 정면충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보는 거다. 쿼크와 다른 입자들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입자충돌기에서 벌어지는 강한 상호작용은 충돌사건의 시작과 끝만 드러나지 중간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쿼크는 양성자 밖에서는 관찰할 수 없다. 자연에서 독립된 입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입자가속기 충돌에서 나오는 사건에서 쿼크는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쿼크와 다른 입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충돌 후 시간이 지나면서 입자들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쿼크들이 결합해 강입자(양성자나중성자)가 된다. 쿼크는 보지 못하고 쿼크가 모여 생긴 강입자만 보이는 것이다. 충돌과 강입자 생성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모른다. 다른 말로 하면 강입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르고 있다.”

반면 QED, 즉 전자기 상호작용의 기본입자인 전자는 자연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소위 자유전자라고 불리는 전자는 원자 안에 들어 있지 않고, 원자 밖에 홀로 있다. 때문에 전자는 입자충돌기의 사건들에서도 볼 수 있고, 관련 상호작용을 이해하기가 쉽다. 결국 QCD를 100%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근사치’가 필요하며, 그 계산을 위한 ‘유효이론’이 필요하다.

‘무거운 쿼크 유효이론’이 박사논문

최 교수는 ‘유효이론’에서도 ‘무거운 쿼크의 유효이론’과 ‘SCET(Soft Collinear Effective Theory)’ 두 영역을 연구했다. 이 두 이론을 만드는 데 참여한 게 자신의 주요 연구 성과라고 했다. ‘무거운 쿼크 유효이론’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 테마이기도 하다. 그는 질량이 무거운 쿼크로 만들어진 B중간자의 붕괴 현상을 이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B중간자를 구성하는 B쿼크 질량이 무거워져서 무한대로 가는 극한의 경우에는 세상이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를 연구했다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이 논문은 지도교수와 함께 썼는데, 발표한 뒤에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논문이 나오고 4년이 지난 뒤에야 갑자기 인용되기 시작했다. ‘무거운 쿼크 유효이론’ 연구가 당시 QCD 연구자 사이에서 붐을 이뤘다고 한다. 최 교수는 자신의 논문이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를 하버드대학원 2년 후배인 애덤 포크(Adam Falk) 알프레드 슬론 재단 이사장으로부터 나중에 들었다. 애덤 포크가 언젠가 한국에 왔을 때 “내 논문이 나왔을 때 왜 인용하는 사람이 없었냐”고 묻자 애덤 포크는 “당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아무도 몰랐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버드대 물리학 연구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물리학을 기자가 한 번의 취재로 잘 전달하기는 힘들다. 다만 그가 ‘무거운 쿼크 유효이론’에서 연구한 B중간자(b쿼크와, 가벼운 다른 쿼크의 반입자로 구성됐다)의 붕괴가 1990년대에는 중요한 이슈였다는 건 귀에 들어왔다. B중간자 붕괴를 연구해서 우리 우주가 왜 현재와 같은지, 즉 물질이 반물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1990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2년간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고려대에 자리가 생기자 미국 생활을 접고 급히 한국에 돌아왔다.

“아쉬움이 컸다. 미국에 더 있었으면 연구하기 좋았을 것이다. 서울에 오니 QCD 연구자가 없었다. 연구하면서 같이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연구가 막히면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데 그럴 사람도 없었다. 연구성과를 내도 발표할 데가 없었다. 내 연구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동료들과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같이 토론할 수도 없었다. 연구가 앞으로 나가지를 못 했다.”

최 교수가 기여한 두 번째 ‘유효이론’은 2000년쯤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무거운 쿼크의 유효이론’은 쿼크 질량이 무한히 크면 어떻게 될까를 들여다본 것인데, 그와는 반대로 쿼크가 무한히 큰 운동에너지를 가지면 어떻게 되느냐를 생각했다. 에너지가 크면 입자는 질량을 갖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령 물체의 에너지가 커서 광속에 가깝게 운동하면 질량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 질량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에 ‘유효이론’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었다. 이건 나중에 SCET(Soft Collinear Effective Theory)라고 불리게 된다.

고려대에만 QCD 연구자 3명

2000년대 초반에 생긴 SCET그룹에는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학, MIT, 버클리대학, 카네기멜론대학 교수들이참여했다. 최 교수는 “이 분야에서 내가 했던 주장은 ‘걱정하지 마라, 강한 상호작용의 과정은 적용되는 에너지에 따라 그 과정을 나눌 수 있고, 그러면 원하는 정확도로 계산할 수 있다’였다. 그때부터 SCET 커뮤니티가 확 커졌다. QCD 연구는 SCET로 쏠렸다”고 말했다. 이후 10년 정도 붐이 일었다.

최 교수는 “SCET가 나오기 전까지는 QCD의 제트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입자들이 가속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제트 현상을 나눠서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SCET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다. 지금까지 지저분했던 게 깨끗해졌다”고 설명했다.

유효이론 SCET는 입자 에너지가 무한히 커질 경우를 본 것인데, 제네바의 LHC에서는 양성자와 양성자가 14TeV(테라전자볼트)의 에너지로 정면충돌한다. 매우 높은 에너지다. 입자 충돌 직후를 검출기로 보면 수없이 많은 입자가 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나가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때 큰 에너지를 가진 입자 두 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오고, 에너지가 작은 다른 부분이 있다. 최 교수는 “제트의 물리현상이 에너지가 큰 부분과 작은 부분으로 딱 갈린다. 충돌 에너지가 세면 그렇다. 따로 나눠 계산할 수 있고 잘 나누면 계산이 쉬워진다”고 했다.

최 교수는 SCET이론을 가속기에서 나오는 데이터에 적용했는데 이후 가속기를 이용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론물리학자는 실험물리학자들이 쏟아내는 데이터를 보면서 실험에 맞춰 계산을 해줘야 한다. SCET이론을 사용하면 정확도를 높여 계산을 쉽게 할 수 있다. 그게 지난 7~8년 사이 벌어진 일이었는데 지금 또 막혔다. 그래서 다시 실험가를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최준곤 교수가 몸담고 있는 고려대에는 QCD 연구자가 모두 세 명이 있다. “두 명의 교수를 내가 주장해서 뽑았다. 고려대가 한국에서는 QCD그룹이 있는 유일한 학교”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두 명의 교수 중 이정일 교수는 최 교수의 서울대 물리학과 3년 후배이고, 이승준 교수는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 교수에게서 배운 ‘똑똑한’ 고려대 학생 김철도 있다. 그는 지금 서울과기대 교수로 일한다. 최 교수는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들딸 쌍둥이가 성장하는 시기에 맞춰 아이들에게 물리를 설명하는 책 ‘소리를 질러봐’ ‘행복한 물리여행’을 썼다. ‘QCD에서 노벨상이 더 나올 게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론적인 발전이 더 있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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