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LNG 복합화력발전소 ⓒphoto 뉴시스
울산 LNG 복합화력발전소 ⓒphoto 뉴시스

얼마 전 산업부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초안을 내놓았다. 작년 11월 워킹그룹의 권고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탈원전·탈석탄의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2040년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권고안의 40%에서 30~35%로 축소한다. 이제라도 재생에너지 확대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지만 축소된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에너지 공급 방안’과 ‘에너지원의 구성’은 통째로 빼버렸고, 전력 믹스(mix)도 하위 계획인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떠넘겨버렸다. 대통령이 강조하던 수소경제도 마지못해 언급만 해놓은 수준이다.

2040년까지 소비 18.6% 줄일 수 있을까

강력한 에너지 수요관리 대책을 가동해서 2040년의 에너지 소비 총량을 1억7180만t으로 2017년보다 2.6%나 줄이겠다는 것이 산업부가 내놓은 기본계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핵심이다. 현재 소비 수준을 근거로 한 전망(BAU)에서 무려 18.6%나 줄이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권고안을 더욱 과격하게 바꿔버린 것이다. 심각한 국민적 고통을 감수해야만 달성이 가능한 목표다.

기본계획에서 미래의 전망을 축소하기는 쉽다. 산업부가 2017년 12월에 내놓았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전력 수요 전망을 무려 11%나 감축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수급계획을 확정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록적인 한파가 들이닥쳤고, 작년 여름에도 역시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온 나라가 빨간불이 켜진 전력수급 상황에 긴장해야만 했다. 2012년 추석에 경험했던 아찔한 순환 정전도 넉넉한 원전을 지나치게 믿고 10여년 동안 대비를 소홀히 했던 결과였다.

산업부는 급격한 에너지 소비 감축을 ‘선진국형 소비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혁신이라고 자랑한다. 미국·독일·일본과 같은 에너지 선진국을 벤치마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에너지 소비 현실은 그런 선진국들과 전혀 다르다. 대중교통이나 물류 수송망은 극도로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과소비의 산업구조도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도 넘쳐난다. 무작정 에너지 선진국을 흉내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비 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은 더욱 황당하다. 정책적으로 부문별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정체가 불확실한 수요관리(DR)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 고작이다. 에너지 소비의 효율을 향상시키는 기술 혁신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요금 인상과 정책적 규제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적극적으로 억제하겠다는 욕심만 넘쳐난다. 에너지 빈곤층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산업체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계시별(季時別)·녹색·수요관리형’ 등의 다양한 요금제는 큰 폭의 에너지 요금 상승을 은폐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결국 국민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안전도 위협을 받게 된다.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한 4차 산업혁명, 전기차 보급 확대, 수소경제 활성화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기술 혁신에 대한 산업부의 몰이해도 심각하다. ‘승용차 연비 2배 개선’은 결코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에너지기본계획이 원한다고 기술이 뚝딱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연이은 화재·폭발 사고로 사용을 포기한 ESS(에너지저장시스템)에 대한 환상도 버리지 못했다. 분산형 전원 확대가 인구밀집 지역의 오염을 증가시키고, 전력망의 구성을 과도하게 복잡하게 만들어 오히려 에너지 낭비를 부추길 것이라는 사실도 고려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강조한 수소경제는 어디로 갔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야심 차게 제시했던 ‘수소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찾아볼 수 없다.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와 연료전지를 이용해서 에너지와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화려한 구상이었다. 그런 수소경제를 단순히 에너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격하시켜버렸다. 290만대의 수소차와 10.1GW의 연료전지를 보급하고, 수소의 생산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이 에너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수소경제 로드맵에 따르면 2040년에는 연간 526만t의 수소가 필요하다. 현재 정유공장·제철소 등에서 생산되는 부생 수소의 양은 연간 5만t에 불과하다. 우리가 LNG의 열분해나 물의 전기분해에 대한 기술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절반 이상의 수소를 수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소의 생산·공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소의 생산·저장·운송·활용의 전(全) 주기에 걸친 안전관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산업부가 내놓은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에너지위원회·녹색성장위원회·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서 완성되는 정부의 최상위 에너지기본계획이다. 그런 기본계획의 내용은 산업부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법 제41조 ③항에 명시된 7개의 사항은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한다. 특히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와 도입·공급 및 관리를 위한 사항, 에너지의 수요목표, 에너지원의 구성, 에너지의 절약 및 이용효율 향상에 관한 사항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20년 동안의 기본계획을 무작정 뒤엎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폭거다.

늘어날 LNG 발전의 심각한 부작용

산업부가 기본계획에서 에너지의 공급 계획과 에너지원의 구성을 빼버리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이미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탈원전·탈석탄 정책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회피하겠다는 꼼수일 뿐이다. 세계적인 기술 자립과 40년 동안 증명된 안전 운전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성·환경성·안보성을 모두 갖춘 원전을 빼놓은 에너지기본계획은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한 탁상공론일 수밖에 없다. 국회가 제정한 법을 지키지 않은 관료들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것이 새로운 전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탈원전·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로 LNG 소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심각한 부작용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인구밀집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LNG 발전소는 잦은 출력 조절로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을 쏟아낸다. 큰 폭의 가격 변동으로 경제성도 보장할 수 없고, 가스 터빈의 해외 의존성 때문에 에너지 안보도 걱정해야 한다.

에너지에 대한 전문성도 갖추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환경주의자들에게 우리의 에너지 미래를 맡겨둘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리의 푸른 숲이 태양광 광풍으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게 우리가 처한 에너지 현실이다. 국회가 제정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요구하는 진정한 에너지기본계획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교수의 칼럼 ‘과학 뒤집기’를 이번호부터 ‘과학자의 세상 읽기’로 바꿉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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