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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과학
[2562호] 2019.06.17

플라스틱 먹는 꿀벌부채명나방 분해효소 찾았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photo 조선일보
지난 5월 15일, 미국의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는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서 가장 깊은 곳인 ‘챌린저 딥’의 해저 1만927m까지 내려가 새로운 심해 탐사 기록을 세웠다. 1960년 미국 해군이 세운 기록보다 16m, 2012년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의 잠수보다 11m나 더 깊은 곳이다.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여 만든 티타늄제 첨단 잠수정 ‘리미팅 팩터(Limiting Factor)’를 타고 4시간 동안 해구의 바닥을 탐사했다.
   
   외신들은 그가 도달한 쾌거를 앞다퉈 보도했다. 세계 최고 해저 탐사 기록과 함께 심해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깜깜한 미지의 세계에서 베스코보가 발견한 것들을 전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심해에서 발견했다고 전한 것은 새롭게 발견된 4종의 심해생물과 더불어 비닐봉지·사탕 포장지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인간이 남긴 쓰레기가 사람보다 앞서 심해에 진출한 것이다.
   
   사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환경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敵)이다.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롤랜드 게이어 교수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인류가 만든 플라스틱의 총량은 89억t. 이 중 2015년 당시 사용량은 26억t이다. 결국 63억t이 쓸모를 다했다는 것인데, 이 많은 양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플라스틱 먹을 때 장내서 특정 효소 발생
   
   게이어 교수에 따르면 6억t은 재활용되고, 8억t은 소각되었으며, 79%에 해당하는 49억t은 매립되거나 버려졌다. 바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50년까지 매립되거나 버려질 플라스틱 누적 양은 330억t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재질별로는 폴리에틸렌(PE)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최첨단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하여 보급도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박테리아를 배양해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지만 말 그대로 제안 수준에 그쳤다. 해외에선 미생물이나 곤충을 이용해 폐기물을 생분해시키는 연구들도 진행 중이다. 한편에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릴레이 환경운동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도 진행하고 있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이처럼 뾰족한 대안이 없던 상황에서 최근 그 실마리를 풀어줄 새로운 방법이 등장해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류충민 박사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의 효소가 플라스틱 주성분인 폴리에틸렌을 분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폴리에틸렌은 가장 널리 쓰이면서도 가장 분해되기 어려운 플라스틱 중 하나다.
   
   박사팀은 먼저 애벌레에게 밀집과 플라스틱을 먹였을 때 장내 미생물이 모두 제거된 후에도 폴리에틸렌을 분해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플라스틱이 꿀벌부채명나방의 장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 결과 장내 미생물을 제거한 애벌레에게서도 플라스틱의 긴 중합체 사슬이 쪼개진 것을 발견했다. 이는 장내 미생물이 없어도 애벌레의 특정 효소가 폴리에틸렌을 분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연구팀은 울산과기대 박종화 박사팀과 함께 꿀벌부채명나방의 전체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애벌레의 분해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밀집과 플라스틱을 먹었을 때 장내에서 발현되는 효소를 살폈는데, 에스테라제·리파아제·사이토크롬 P450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효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경우 골칫거리인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Cell Reports)’ 온라인판에 실렸다.
   
   
▲ 인도 뭄바이 해변의 플라스틱 쓰레기. photo 뉴시스

   먹어치우며 플라스틱 구조 변형시켜
   
   사실 꿀벌부채명나방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단초는 2017년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의 페데리카 베르토치니 연구원이 처음 제공했다. 그는 취미로 꿀벌을 길렀다. 그러던 어느 날 벌집의 밀랍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고 벌집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게 아닌가. 꿀벌부채명나방은 꿀벌에 기생하면서 사는 것이 특징이다. 성충이 벌집에 몰래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벌집의 밀랍을 먹으며 자란다.
   
   베르토치니는 곧바로 벌집에서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들을 꺼내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다. 그런데 이튿날 보니 비닐봉지가 여기저기 구멍이 나 누더기가 돼 있었다. 폴리에틸렌을 먹이로 갉아먹은 것이다. 이를 본 그는 이 애벌레를 이용하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애벌레들을 바로 실험실로 가지고 와 연구원들과 정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100마리를 비닐봉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40분 만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평균적으로 시간당 2.2개의 구멍을 뚫었다. 12시간 뒤에는 비닐봉지 무게가 92㎎ 줄었다. 최고의 플라스틱 분해 세균보다 40배 이상 뛰어난 분해 능력이다. 그렇다면 애벌레는 왜 질긴 플라스틱을 먹었을까. 베르토치니에 따르면 벌집을 구성하는 밀랍의 화학구조(중합체 사슬 구조)가 폴리에틸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종의 ‘천연 플라스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밀랍과 화학구조가 흡사해 비닐봉지를 먹어도 소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애벌레들이 플라스틱의 화학구조를 변형시키지 않은 채 먹어치운 게 아니라 중합체 사슬 구조를 깨뜨려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렌글리콜로 변형시켜 완전 분해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애벌레가 단지 비닐봉지를 잘게 쪼개먹은 후 그대로 배설한다면 결국 ‘미세플라스틱 공해’라는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서 꿀벌부채명나방은 플라스틱 공해 해결사로 기대를 모았다.
   
   
   효소 대량 배양 방법을 찾아라
   
   하지만 당시 연구원들이 해결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가 플라스틱의 화학적 연결을 끊는 무언가를 분비하는데, 대체 어떤 효소가 폴리에틸렌을 분해하는지 명확히 밝히지 못한 것이다. 다만 애벌레의 장내에 공생하는 세균에 그 물질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했을 뿐이다. 따라서 다음 연구 과제는 그 효소를 규명하고 분리해내는 것이었다. 그 일을 류충민 박사팀이 해낸 것이다.
   
   이제 남은 연구는 박사팀이 찾아낸 효소를 대량으로 배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만 환경파괴의 주범인 플라스틱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그리고 산업적 규모로 처리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추가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의 역습에 대항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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