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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과학
[2564호] 2019.07.01

페이스북, 돈의 미래를 묻다

▲ 페이스북은 지난 6월 18일 암호화폐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백서를 공개했다. 암호화폐 이름은 ‘리브라(Libra)’다. photo 뉴시스
“전 세계에는 빈곤층 및 금융소외계층이 17억명이나 있다. 이들을 위해 암호화폐를 만들겠다.”
   
   만약 선한 의지로 똘똘 뭉친 스타트업이 이런 포부를 내걸고 암호화폐를 만든다면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만드는 주체가 전 세계에 27억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 페이스북은 지난 6월 18일 암호화폐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백서를 공개했다. 그들이 만들 암호화폐 이름은 ‘리브라(Libra)’다.
   
   아직 현실에 등장하지 않은 암호화폐라면 보통 백서를 통해 그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페이스북 측이 내놓은 백서에는 리브라를 축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다. 일단 리브라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리브라협회’의 작품이다. 협회에는 우버, 리프트, 이베이, 마스터카드, 비자, 페이팔, 보다폰그룹 등 전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이 참가하고 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리브라 인베스트먼트 토큰(LIT)을 1000만달러 이상 구입해야 한다. 1000만달러의 LIT당 1개의 의결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 현재 협회 회원으로 가입한 기업 혹은 단체는 28곳이지만 2020년 상반기 출시 이전까지 100여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리브라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단어 그대로 코인의 가격이 법정화폐와 연동돼 가격이 거의 변동하지 않고 안정된 암호화폐를 말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기존 암호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가치 저장 기능이 부족한 게 단점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브라는 스테이블 코인 방식을 택했다. 보통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등 특정 법정통화를 담보로 가치를 보장한다. 대표적인 게 테더(Tether·USDT)로, 1USDT는 1달러로 고정돼 있다. 리브라는 특정한 법정통화 대신 안정적인 몇몇 법정통화(달러·유로·파운드·엔)를 묶은 통화 바스켓에 연동해 가치를 유지한다. 여기에 더해 단기 국채 등이 바스켓에 포함될 수도 있다.
   
   
   페이스북, 위챗의 길을 가나
   
   리브라의 등장 이전에 짚어봐야 할 페이스북의 행보가 있다. 지난 4월 30일 페이스북 개발자회의에서 무대에 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전과 다른 철학을 내세웠다. 그는 “세계가 더 커지고 더 연결될수록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함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미래는 프라이빗(private)하다. 이것이 우리 서비스의 다음 단계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거실(digital livingroom)’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최근 개인정보 유출과 페이크뉴스(가짜뉴스)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광장’ 관리에 어려움을 느껴왔다. 게다가 매출 증가 속도마저 둔화하고 있었기에 광고 이외의 다른 수익 창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메신저다. 메신저는 그 자체가 프라이빗하다. 원하는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보다 자유롭고 친밀하게 어울릴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콘텐츠까지 즐길 수 있다. 페이스북 자체 메신저 외에도 자매품인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과 함께 연동해 앱 종류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저커버그의 구상이었다. 이 세 가지 앱의 잠재적인 계정을 모두 합치면 약 27억개에 육박한다.
   
   페이스북이 사업 전환을 발표하자 외신들은 “마치 중국의 위챗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대표 메신저앱인 위챗은 메시지 기능을 넘어 게임이나 쇼핑을 할 수 있고 위챗페이를 통해 결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의 카카오톡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페이스북 역시 비슷한 방향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메신저 서비스에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설치하고, 이커머스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할 때쯤부터 “페이스북의 암호화폐가 곧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리고 실제 등장한 게 리브라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갖고 있는 메신저 플랫폼에 신속하게 통합된다. 이 암호화폐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서비스 중 첫손에 꼽는 건 송금이다. 송금은 세계은행 추산 53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자랑한다. 리브라 백서는 왜 송금인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매년 250억달러의 송금 수수료를 낭비하고 있다.”
   
   특히 리브라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현대 금융시스템에 접근하기 어려운 17억명의 금융소외계층이다. 이들이 은행 대신 리브라를 선택해 낭비 없는 송금을 메시지 보내듯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1차적인 목표다. 예를 들어 인도 같은 곳은 페이스북의 목표와 어울리는 곳이다. 인도에서 페이스북이 소유한 왓츠앱 메신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무려 2억명에 달한다. 해외 거주 인도인이 모국에 송금한 금액도 커서 2018년 기준으로 약 800억달러(92조5200억원)나 된다. 잠재 고객 2억명을 활용해 리브라를 운용한다면 페이스북과 그 협력기업들이 얻을 이익은 적지 않다. 이용자는 메신저앱 등을 통해 송금할 수 있는데 이때 ‘저렴한 수수료’로 가능할 것이라고 백서는 명시하고 있다. ‘저렴’하지만 유료 서비스이고 수익 사업이다.
   
   
▲ 리브라협회 멤버들 photo libra.org

   17억 금융소외층의 송금 시장 노린다
   
   송금 말고도 페이스북과 협회에 소속된 회원들이 만들어낸 경제 생태계 내에서 리브라를 결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우버를 사용해 타고 내릴 때, 혹은 스포티파이(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기업)로 음악을 들을 때 온라인에서 리브라를 사용해 결제하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리브라가 만약 온라인 결제 비즈니스에서 효과를 거둔다면 협회 회원사인 마스터카드나 비자의 가맹점 같은 오프라인에서도 리브라를 쓸 수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페이스북 경제권이 만들어질 경우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결제 기능이 필요해진다. e커머스나 결제 기업들이 페이스북과 함께하는 것은 범용성에 있어서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송금과 결제는 그동안 은행이 도맡았던 기능이었다. 하지만 은행이 가진 기능은 대출과 신용평가, 보험 등 훨씬 광범위하다. 리브라가 신뢰를 얻어 서비스가 연착륙한다면 그간 은행이 해왔던 비즈니스 모델로까지 확장해나갈 수 있다. 현재 28개 리브라협회 회원사 중에 아직 은행은 없는데 이미 접촉은 이루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리브라협회에서 세계 여러 대형 은행들과 가입을 두고 협상 중이다”고 전했다. 은행들도 페이스북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무시하진 않는다. 마이클 코뱃 시티그룹 CEO는 “리브라협회가 가입을 요청한다면 우리는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리브라는 은행을 품고 싶어하고 은행도 관심을 갖고 있는 모양새다.
   
   리브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제안서 정도만 나온 사업모델과 같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산적해 있고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분명치 않다. 하지만 등장을 예고한 시점부터 꽤 격렬한 피드백이 오고 있다. 반응이 나오는 쪽은 주로 정부의 금융정책 관련 인사들이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셰로드 브라운 의원은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아무런 감시 없이 운영하도록 두면 절대 안 된다”며 금융당국의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맥신 워터스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페이스북이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개인정보침해 관련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확장을 단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미 의회는 리브라를 강력하게 견제하고 나섰다. 때에 따라서는 마크 저커버그 CEO가 과거 청문회처럼 의회에 불려올 수도 있다. photo 뉴시스

   “리브라의 미션은 글로벌 통화가 되는 것”
   
   미국 밖 상황은 더욱 거세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는 “G7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금융안정위원회(FSB) 등 다국적 국제기구와 함께 면밀한 검토에 나설 것이다”고 거들었고 프랑수아 빌레이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G7에 암호화폐 규제 연구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밝혔다. 사실상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페이스북과 리브라를 상대하고 나섰다. 그들이 나선 이유는 브루노 르메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리브라는 기존 법정화폐의 대체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에게 ‘화폐’의 미래를 묻고 있다. 그들은 백서에서 “리브라의 미션은 글로벌 통화가 되는 것, 수십억 명의 사회적 약자에 금융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고 적고 있다. 페이스북 서비스를 확장하는 걸 넘어 기존 통화와 금융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길 원한다는 얘기다. 이 역할은 그동안 정부와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금융기관이 맡아왔다. 주요국의 반응이 거센 건 단순히 글로벌 기업이 암호화폐를 발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정부가 해왔던 화폐 주조와 관리에 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화폐는 오랫동안 변화가 없는 물건이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한 형태로 남아 있다. 21세기 들어 오프라인으로 오고가던 서신은 어느덧 완전하게 이메일로 바뀌었고, 서점에서 구입하던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거나 전자책으로 대체됐으며, 택시도 우버나 리프트를 활용하며 변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서비스 사업은 디지털화돼왔다. 반면 핀테크가 호황을 누리고 소비자 금융에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도 돈 그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았다. 돈이 변하지 않은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통화는 국가가 관리하고 발행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사람들의 신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리브라가 성공한다는 가정 아래, 페이스북 그룹의 총 사용자 27억명이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리브라 경제권에 편입된다면? 리브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통 화폐가 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6월 23일 보고서에서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 주요 하이테크 기업은 광범위한 사용자 네트워크 덕분에 금융 분야에서 빠르게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명백하게 주체가 있고, 국경을 가리지 않으며, 국가급 매출을 자랑하는 기업이 서비스와 상품을 넘어 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과거의 도전과는 다르다.
   
   암호화폐 투자업체인 KR1 대표 조지 맥도너는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에 기고한 글에서 “대출을 받고 싶은가? 저커버그에게 가면 된다.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싶은가? 저커버그에게 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 반대쪽에서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의 패트릭 맥헨리 공화당 의원은 “소문과 추측들을 넘어서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미칠 전례 없는 프로젝트가 가져올 영향력에 대해 평가할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리브라는 수많은 질문을 받고,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해답을 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논쟁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이 새로운 논쟁의 주제에는 ‘화폐’를 둘러싼 정부와 민간의 경계 없는 헤게모니 전쟁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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