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을 O형으로 바꾸는 기술이 실용화되면 수혈 가능한 ‘범용’ 혈액이 두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은 헌혈 장면. ⓒphoto 뉴시스
A형을 O형으로 바꾸는 기술이 실용화되면 수혈 가능한 ‘범용’ 혈액이 두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은 헌혈 장면. ⓒphoto 뉴시스

A형 혈액을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O형으로 바꾸는 길이 열렸다. 캐나다 연구진이 자신과 다른 혈액형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을 없애는 효소를 발견한 것이다. 이 기술은 안전성만 확인되면 수혈용 혈액 부족 현상을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어 전 세계적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혈액 부족은 전 세계 의료계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수술이나 사고를 당해 피를 많이 흘렸을 경우 보통 수혈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 피나 함부로 받을 수 없다. 혈액형이 맞지 않으면 거부반응이 일어나 생명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혈액형에 관계없이 수혈 가능한 O형 혈액 공급은 그래서 필수다. O형 혈액은 몇몇 질환에서도 뛰어난 장점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O형 혈액형인 사람의 경우 말라리아 감염에 대한 내성이 있어 심각한 말라리아 감염이 생길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갈수록 헌혈 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A형 혈액을 O형으로 바꾸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스티븐 위더스(Stephen Withers) 교수팀이 그 주인공. 연구진은 지난 4년간의 연구 끝에 인간의 내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서 A형 혈액의 항원을 제거해 O형 혈액으로 바꾸는 두 종류의 효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실은 이들 효소는 이미 2015년에 발견되었다. 2500여종의 박테리아와 진균이 생산하는 효소들을 분류한 끝에 두 종류의 효소를 찾아냈다. 그러나 많은 양의 효소를 투입해야 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져 추가 연구가 이뤄진 것이다.

A형 항원 분해효소 찾아내

일반적으로 사람은 A·B·AB·O형 등 4개의 혈액형 중 하나를 갖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ABO식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있는 ‘항원’ 단백질 구조에 따라 4종류로 나뉜다. 혈액은 엷은 누런색 액체인 혈장과 온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으로 이뤄진다. 이 중 적혈구가 A 항원을 지니고 있으면 A형, B 항원을 지니고 있으면 B형, 두 항원을 모두 지니고 있으면 AB형이다. 구체적으로 A형 적혈구에는 ‘Ν-아세틸 갈락토사민’이라는 항원이, B형 적혈구에는 ‘갈락토스’, 그리고 AB형에는 이 둘이 모두 존재한다. 여기서 서로 다른 혈액형의 혈액이 섞일 경우, 예컨대 B형인 사람에게 A형 혈액을 수혈하면 항원이 공격을 받아 적혈구가 파괴되고 혈액이 굳어버린다.

반면 O형의 혈액은 적혈구 표면에 항원 단백질이 없다. 누구에게나 O형의 혈액을 수혈해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특히 O형의 혈액은 환자의 혈액형을 조사할 여유가 없는 긴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캐나다 연구팀은 바로 O형의 이런 점을 주목했다. A형 혈액에서 항원 단백질을 제거하면 누구에게나 수혈 가능한 O형 혈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연구팀은 왜 A형 혈액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으로 O형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A형이 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A형 혈액이 전체 혈액 공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O형 혈액은 다른 혈액형보다 많지만 그만큼 많이 사용되므로 혈액 부족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물론 세계의 과학자들 또한 혈액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해왔다. A형이나 B형, AB형의 적혈구에서 항원을 제거해 O형으로 바꿔주는 효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A형이나 B형의 항원만을 표적으로 하는 효소를 발견하는 것은 큰 난제였다.

종종 몇몇 과학자들이 여러 종류의 효소를 찾아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러나 모두 효율이 낮아 실용화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한때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정제한 효소를 실험한 적도 있었으나 그 또한 실패로 끝났다. 항원이 1%라도 남아 있으면 면역반응이 생겨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5~10년 안에 실용화될 듯

이번 캐나다 연구팀의 핵심은 A형 항원만을 표적으로 삼아 분해하는 효소를 찾아낸 것이다. ‘알파-N-아세틸 갈락토사미니데이스’가 그것이다. 연구팀은 이 효소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들이 주목한 것은 소화기관에 붙어 있는 ‘뮤신’이다.

뮤신은 점막에서 분비되는 점액물질로 적혈구의 항원과 유사하다. 연구팀은 사람의 소화기관을 거쳐 나온 대변 샘플에서 플라보니프랙터 플라우티(Flavonifractor plautii)라고 불리는 장내 미생물을 수집해 뮤신을 분해하는 효소 두 종류를 찾아냈다. 그 뒤 사람의 A형 혈액에 이 효소를 투입했다. 그 결과 효소는 인간의 혈액에서도 마법 같은 일을 발휘했다. A형 혈액형에 붙은 항원 단백질이 모두 분해돼 떨어져나간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 6월 10일자에 발표되었다.

현재 연구팀은 적은 양의 혈액을 O형으로 바꾸는 실험까지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실용화다. 이 기술을 실용화하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인슐린 효소를 대량 생산하는 방식처럼, 항원을 분해하는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 증폭시키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뉴욕 혈액센터의 적혈구 생리학자 모한다스 나라(Mohandas Narla)는 캐나다 연구팀의 연구가 실용성에서 매우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미국 전역의 병원에서 수혈을 위해 하루에 소모하는 혈액은 약 1만6500리터. 우리나라 중소 병원들의 혈액 재고량 또한 3.5일에 불과한 실정이다. 만약 A형 혈액을 O형으로 바꾸는 연구팀의 기술이 실용화된다면 수혈 가능한 ‘범용’ 혈액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A형 혈액이 만능의 O형으로 바뀌려면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에 발견한 미생물 효소가 A형 항원을 완벽히 제거하는지, 항원 단백질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효소를 투여해야 하는지, 그리고 적혈구에서 의도하지 않은 다른 요소를 변형시키지는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5년에서 10년 안에 효소로 생산한 O형 혈액을 의학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더스 박사는 말한다.

장내 미생물에서 추출한 효소 덕분에 수혈이 더욱 쉬워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A형에서 O형으로 바뀐 피가 혈액 부족 문제뿐 아니라 장기이식·조직이식 등의 거부반응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마치 ‘연금술’과 같은 혈액형 변환 기술이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큰 힘이 되길 바란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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