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런으로 이뤄진 뇌의 신경망. 뇌에는 통증을 예감하는 특정 부위가 존재한다. ⓒphoto medicalnewstoday.com
뉴런으로 이뤄진 뇌의 신경망. 뇌에는 통증을 예감하는 특정 부위가 존재한다. ⓒphoto medicalnewstoday.com

비가 올라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아이고 무릎이야’ 하며 더 괴로워한다. 습한 날은 갠 날보다 더 아프다. 장마철 저기압의 영향으로 관절 내 압력이 올라가면서 관절을 싸고 있는 막이나 근육, 인대를 자극해 통증이 심해지는 것이다. 빗길을 걸을 때 무릎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도 통증을 유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이젠 비가 오지 않아도 언제쯤 통증이 일어날지 미리 알아내 이를 완화시킬 방법이 제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통증 리듬 알아내 통증 완화제 개발

몸이 욱신욱신 쑤시고 조금만 스쳐도 찌릿찌릿한 통증. 하루 동안 심하게 지속되기도 하지만 ‘낮에 좀 덜했다 밤에 심했다’ 하는 식의 통증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나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통증으로 고통스럽다.

통증은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다. 통증이 생명을 당장 위협하는 건 아니지만 생활리듬을 깨뜨리거나 적절한 운동과 식사를 못 하게 돼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우울증에 빠져 인생을 포기하기 쉽고, 심하면 견디다 못 해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때로는 통증 자체보다 더 큰 정신적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이렇게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 전해졌다. 통증도 신체의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 패턴을 가지고 나타나는데, 이에 맞춰 가장 적절한 시간에 약물을 투여하면 통증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편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을 때, 편두통이 시작되는 단서가 나타나는 시점에서 진통제를 먹게 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제니퍼 크로델 미국 뉴욕대 수학과 박사후연구원과 메건 하겐아우어 미국 미시간대 분자및행동신경과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팀이 연구의 주인공들이다.

연구팀은 어떻게 통증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가정을 세웠다. ‘통증의 강도에도 주기적 패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통증이 심할 때’와 ‘통증이 심하지 않을 때’의 환자의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척수 등뿔(dorsal horn)이 통증을 느낄 때, 투사뉴런과 억제성 인터뉴런, 자극성 인터뉴런의 활성화 패턴을 관찰한 후 이 세 지표의 데이터를 활용해 시간별 통증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약 1000억개가 넘는 뉴런이 있다. 이 뉴런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면 신경에 대한 연구는 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특징을 가진 뉴런들끼리 분류한다. 투사 뉴런(projection neuron)은 긴 축삭을 가진 일부 뉴런으로, 뇌의 다른 영역까지 뻗어 신경망을 이룬다. 인터뉴런(interneuron)은 뉴런과 뉴런끼리 연결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뇌와 함께 중추신경계를 구성하는 척수는 통증이 전달되는 중요한 통로다. 뇌에는 통증을 예감하는 특정 부위가 존재해 이 부위를 자극하면 고통이나 근심을 유발할 수 있고, 행동의 변화까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연구팀의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과학자들의 예상대로였다. 통증은 낮에 약하고 한밤중에 세지는 주기적 리듬 패턴을 나타냈다. 이 리듬 패턴의 데이터를 토대로 연구팀은 시간별로 통증의 강도 변화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수학모델을 만들었다. 이 수학모델을 이용하면 통증의 유무뿐 아니라 강도가 얼마나 심한지, 또 몇 시쯤에 얼마나 심한 통증이 나타날지도 알 수 있다. 환자가 느끼는 상태보다 더 정밀하게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연구팀의 수학모델로 예측한 결과 또한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통증 변화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척수 등뿔의 각 뉴런이 느끼는 통증의 강도는 늦은 오후(기상한 지 8시간 후)보다 한밤중(기상한 지 20시간 후)일 때 더 센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의 ‘바이오리듬’을 찾아 몇 시간 후에 나타날 고통을 예측하는 기술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컴퓨터생명과학’ 7월 11일자에 발표됐다.

국내 만성통증 환자 250만명

통증은 사람마다 느끼는 강도가 다르다. 그래서 현재 의사들은 통증을 치료할 때 주관적인 통증 강도를 측정한다. 어느 정도 수준의 통증인지 수치화한다. 대개 환자의 주관적인 인지 기준에 따라 1~10단계로 구분한다. 숫자가 클수록 통증의 강도가 세다. 참고로 여성이 출산 때 느끼는 통증은 7단계 수준이다. 이렇게 자가 통증 평가법을 쓸 경우, 의사들이 환자의 말만 듣고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사실 개개인의 통증 패턴도 약간 불규칙하다. 그렇기에 어느 일정한 틀에 맞춰 치료하기가 어렵다. 각 환자의 특성에 따라 치료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또 질병의 종류에 따라서도 통증의 패턴이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가 점차 노령화되고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면서 다른 패턴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 중 약 250만명은 만성통증에 시달리고 있다.(대한통증학회 통계) 만성통증은 이유 없이 두통·요통 등 통증을 느끼는 병으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치료도 힘들다. 신경통, 섬유근육통, 류머티즘성 관절염은 통증이 3개월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섬유근육통은 뼈나 인대에 연결되는 근육 부위에서 생겨 목, 어깨 등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딱히 어느 한 부위의 통증을 콕 집어 호소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통증의 부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변수, 이를테면 수면 부족이나 누적된 피로, 심한 운동, 잘못된 자세 같은 사항 등을 넣어 더욱 정밀한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개개인의 질병 패턴을 분석하여 통증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치료법을 찾는 것이 연구팀의 목표다. 물론 병에 걸렸을 때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다가오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신경은 한번 망가지면 다시 예전과 같은 상태로 회복하기 어렵다. 영구적으로 손상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 방치하면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따라서 통증 초기에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연구팀의 수학모델을 통해 조기에 통증을 예측하고 진단하여 치료한다면 분명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육체적인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올지도 모를 일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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