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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2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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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인지 편향에 숨은 물리학 법칙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사람은 주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기 마련이다. 이런 경향은 소셜미디어(SNS)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내 가치관과 맞는 사람들 위주로 팔로어가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와 다른 생각’과는 점점 멀어진다.
   
   문제는 이처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면 실제 사실이나 사회 흐름과는 전혀 다른 것을 사실로 인지한다는 점이다. 확실치 않거나 문제가 있거나 심지어 터무니없는 거짓도 사실이 된다. 그 때문에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뒤따를 때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난 2016년 힐러리와 트럼프의 대선 결과가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전 세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당연히’ 힐러리의 당선을 점쳤다. 하지만 막상 결과는 뜻밖이었다. 트럼프 당선이라는 개표 결과에 힐러리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격에 빠졌다. 심리학계는 이런 현상이 일종의 심리적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동질성의 크기가 인지 편향을 일으킨다
   
   필터 버블은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사용자에게 맞는 필터링된 정보만을 제공해 사용자가 특정 정보만 편식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관심 없고 싫어하는 정보는 걸러지고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 위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필터 버블은 미국 진보운동 단체인 무브온(Move On)의 이사장 엘리 프레이저(Eli Praiser)가 붙인 이름이다. 그는 저서 ‘생각 조종자들’(원제 ‘The Filter Bubble’)에서 ‘나는 정치적으로 왼쪽이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글은 내 페이스북에 올라오지 않았다. 이유는 페이스북이 자신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보를 필터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인공지능 ‘모그IA’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이미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었다.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동영상 사이트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였다. 트럼프와 관련한 빅데이터를 편견 없이 받아들인 인공지능과 다르게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쪽으로 각색된 정보를 받고 있었기에 믿고 싶은 대로만 믿었던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수학과 이은 연구원과 조항현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연구원 팀에 따르면, 우리를 이처럼 편향적으로 만드는 현상은 인간관계망의 연결 구조에 따라 생겨나고, 그 이면에는 물리학적인 법칙이 작용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어떤 집단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을 때, 섞여 있는 ‘다수 의견의 사람 수’와 ‘소수 의견의 비율’에 따라 상대 집단의 의견이 실제보다 크거나 작게 인식되는 ‘인지 편향’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지 편향이란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비논리적인 추론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패턴을 말한다.
   
   연구팀은 독일 라이프니츠 사회과학연구소의 파리바 카리미 연구원이 개발한 네트워크 모델을 이용해 서로 대립하는 두 의견을 가진 사회를 연구했다. 이를테면 흡연자와 비흡연자, 남성과 여성,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와 같이 서로 상반되는 집단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항상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나뉘기 때문이다.
   
   이은 연구원이 특히 주목한 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때다. 당시 탄핵을 놓고 국민들 사이에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연구팀은 네트워크 모델을 통해 이 사건에도 필터 버블의 개념처럼 자기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회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러한 ‘동질성(homophily)’이 인지 편향을 일으키는 핵심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인지 편향에 의해 착각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동질적 관계를 맺는 메커니즘은 결국 자신과 비슷한 상대를 선호하기 때문이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는 서로가 비슷할수록 소통이 원활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며, 서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게 정말 내 생각인지 의심해봐야
   
   특히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동질성과 소수자의 비중에 따라 어떤 식으로 인지 편향이 이뤄지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동질성의 크기에 따라 인지하는 정도가 실제 사실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테면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을 때, 즉 동질성이 높을 때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모를 실제보다 크게 인식하고 다른 집단은 실제보다 작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서로 다른 의견이나 성향의 사람들이 고루 섞여 있을 때, 즉 동질성이 낮을 때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작게 느끼는 반면 상대 집단의 규모는 크게 인식했다. 동질성이 높은 사람들보다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고 싸우기도 쉽기 때문이다.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대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수 의견이 많이 섞여 있을 때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의 수를 실제보다 적게 인식한 반면, 다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실제보다 많다고 느끼고 소수자의 수는 실제보다 적다고 느꼈다. 이러한 편향은 소수자가 적을수록 더 크게 인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 8월 12일자에 발표됐다.
   
   이은 연구원은 집단 동질성 현상은 2016년 미국 대선에 잘 녹아 있다고 말한다.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의 ‘끼리끼리’ 현상이 너무 지나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실제보다 자신들의 집단 규모를 더 크게 느낀 데 비해 트럼프 지지자들을 과소하게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확증 편향’에 빠졌다는 것이다. ‘확증 편향’은 결과에 대한 미리 결정된 믿음에 집착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모든 정보는 배척하게 되는 심리적 경향을 의미한다. 즉 관점이 다른 외부 정보의 유입을 막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당파성이 유연한 사고 발달을 방해했다는 게 이은 연구원의 설명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심각하다. 빈부 격차, 계층 간의 갈등 또한 만만찮고 지역 갈등과 세대 갈등까지 한몫 거든다. 자기 주장만 높이고 다른 목소리는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편향과 집단 동질성의 극대화는 우리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따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 진실을 왜곡하는 더욱 두꺼운 필터 버블에 갇히지 않도록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연결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이게 정말 내 생각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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