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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3호]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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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외고생의 병리학 논문이 불법인 이유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단국대학교 재학생이라 밝힌 학생들이 지난 8월 23일 충남 천안의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스포츠과학대학 건물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 논란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검찰이 국회 청문회를 앞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규모가 엄청나다. 무려 20여곳을 수색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이 수사 대상이 된 모양이다. 가족들의 출국도 금지시켰다. 대형 조직범죄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 초대형 수사다. 정말 듣도 보도 못 한 일이다. 신임 검찰총장이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시작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다. 이미 확보한 물증과 심증이 상당하다는 것이 상식적인 추론이다. 모든 의혹이 ‘가짜 뉴스’라던 후보자와 정부·여당의 억지가 무색해졌다.
   
   
   명예저자 금지 규정 위반
   
   모든 의혹은 ‘평생을 법과 제도에 따라 살아왔던’ 개혁적 법학자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부당한 정치공세라는 것이 후보자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런데 후보자의 딸이 외고를 다니면서 공저자로 발표한 병리학 논문은 분명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미성년인 딸을 불법 논문의 작성에 적극적으로 가담시킨 부모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병리학 논문에 대한 의혹 제기는 단순한 가족의 신상털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의 병리학 논문은 당시에 시행되고 있던 법과 제도를 무시한 명백한 불법 논문이다. 과학기술부의 훈령으로 시행되고 있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과학계가 자발적으로 제정한 ‘과학기술인 윤리강령’, 그리고 대한병리학회가 따르고 있는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과 국제기구인 출판윤리위원회(COPE)의 ‘가이드라인’에 명시되어 있는 ‘명예저자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
   
   명예저자를 금지한다는 의미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연구의 내용과 결과’에 직접적이고 충분하게 기여하지 않으면 모두 불법저자라는 의미다. 연구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고 이름만 올려주는 명예저자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는 과학연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실험실에서 잔심부름이나 영어 번역을 해주는 인턴을 학술논문의 공저자로 올리는 일은 세상 어디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영어 번역은 ‘감사의 글’에도 포함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영어 번역을 해주는 상업적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권장하는 학술지도 있다. 병리학회지도 그렇다. 영작을 잘해서 저자로 등재했다는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 학술지 편집자 또는 다른 연구자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저자)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연구비 횡령보다 심각한 저자 표기 위반
   
   명예저자 금지 규정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연구재단의 ‘국가R&D사업매뉴얼’은 저자 표기 위반을 연구비 횡령보다 징계 수위가 훨씬 높은 중대한 일탈로 규정한다. 연구비를 횡령하면 해당 연도의 연구비만 회수당한다. 그러나 저자 표기 위반의 경우에는 위반 행위가 이루어진 연도부터 적발된 연도까지 국가가 지원한 모든 연구비를 회수한다. 물론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참여도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외고 학생의 소속을 잘못 표기한 것도 악의적 불법이다. 다른 공동저자를 속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생아의 혈액 시료를 이용하는 병리학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에 대한 의혹 제기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외고생이 포함된 연구진에게 혈액과 세포 등 인체 유래물의 연구를 승인해주는 IRB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IRB의 승인을 받았다는 논문의 진술도 허위였다. 교신저자가 생명윤리법을 위반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신생아 혈액에 대한 자료의 접근을 제한하는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있다.
   
   
   교신저자의 동기는?
   
   후보자의 딸이 공저한 병리학 논문의 불법성은 매우 심각하다. 단순히 학술지로부터 철회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연구재단이 지원해준 연구비도 회수해야 한다. 당초 이 논문은 단국대 병원의 신진 교수에게 지원해준 연구과제 성과였다. 그런데 논문의 교신저자를 선배 교수가 가로챘다. 이 과정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자칫하면 교신저자가 공소시효도 정해져 있지 않은 연구윤리·생명윤리·의료법 위반에 대한 사법적·행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저자 표기 위반으로 파면된 교수도 있다.
   
   후보자의 딸을 명예저자로 만들어준 동기도 석연치 않다. 후보자 부인의 청탁이 있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두 교수가 자식들의 스펙을 위해 ‘품앗이’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과연 두 가족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해외 대학’ 진학을 도와주기 위해 제1저자로 해줬다는 주장은 선뜻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후보자의 딸이 병리학 논문을 입시에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학의 수시 전형에서는 스펙의 실체에 대한 적극적인 검증은 하지 않는다. 응시생이 ‘과학 학술논문의 공동저자였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평가의 대상이다. 학술지의 수준, 논문의 내용, 그리고 제1저자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논문 사본을 면접장에 가져갈 이유도 없다.
   
   병리학 논문이 허접한 보고서 수준의 ‘에세이’에 불과하다는 교수 출신 교육감의 주장은 정말 허접한 가짜 뉴스다. 논문의 내용이 외고생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통계 프로그램으로 작성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지적도 병리학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 부끄러운 가짜 뉴스다.
   
   조국 후보자가 마침내 딸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법학자를 자처하는 후보자의 사과 내용이 비겁하고 황당하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사실이 송구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 아니다. 국민·청년들이 남들은 다 알고 있던 ‘꼼수’를 알지 못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징징거리는 듯하다는 태도였다. ‘무지랭이’ 국민·청년들을 조롱하는 듯한 궤변이었다. 악취가 풍기는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평생을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우기고,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후보자의 민낯은 마주하기도 역겨울 정도다.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포기해왔던 후보자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고위공직을 맡겠다고 나선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후보자의 사고방식과 정신상태가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런 후보자가 무작정 밀어붙일 검경 수사권 개혁에 대한 기대는 섣부른 것이다.
   
   공직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이 불법은 아니었지만 국민 정서나 눈높이에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정부·여당의 일상화된 변명은 국민 모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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