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과학자의 세상 읽기]  학술회의 ‘포스터’도 ‘논문’이다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IT/과학
[2575호] 2019.09.23
관련 연재물

[과학자의 세상 읽기]학술회의 ‘포스터’도 ‘논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아들의 제1저자 등재 논란이 인 포스터.
고등학생의 과학 논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 딸의 병리학회 논문은 저자 표기와 생명윤리 위반 등의 이유로 학회에서 직권으로 철회시켜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당 원내대표 아들의 국제학술회의 발표가 문제라고 한다. 미국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이 발표한 것은 본인이 직접 작성한 1쪽짜리 ‘포스터’일 뿐이고, 정작 ‘논문’은 쓴 적이 없다는 것이 항변이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저자의 자격
   
   논문은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과학자는 학술논문을 통해서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동료들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는다. 논문으로 발표하지 못한 결과는 아무 쓸모가 없다. 과학 논문은 반드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출판윤리’에 따라야만 한다.
   
   논문의 저자에 대한 특별한 자격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도 논문의 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의 내용과 결과’에 직접적이고 충분하게 기여해야만 한다. 공동저자의 자격은 교신저자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에 대한 기여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줄 ‘연구노트’가 있어야 하고, 다른 공저자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제1저자만이 아니라 모든 공저자에게 똑같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소속된 고등학교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자칫 ‘저자 표시위반’으로 확인되면 학회가 직권으로 논문을 철회해버릴 수도 있다. 법무부 장관 딸의 병리학 논문이 그랬다.
   
   논문은 다양한 형식으로 발표된다. ‘학술지(journal)’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학술지는 엄격한 형식의 ‘독창적(original) 연구논문’을 요구한다. 연구의 내용과 결과가 참신하고 새로워야 한다. 다른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의 중복출판은 허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술지는 2명 이상의 전문가에 의한 ‘동료평가’를 통과해야만 논문을 게재한다. 일반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술지일수록 동료평가 통과가 어려워진다. 사이언스·네이처·셀과 같은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 한 편만 발표해도 단번에 석학 대접을 해주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IT기술이 발달하면서 학술지의 발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인쇄와 배부에 많은 비용이 필요한 인쇄본을 포기하고 인터넷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학술지’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가짜 (온라인) 학술지’도 있다.
   
   
   학술회의도 중요한 소통수단
   
   학술회의(conference)나 워크숍(workshop)도 역시 중요한 소통 방식이다. 학술회의의 개최 단체나 형식은 매우 다양하다. 거의 모든 학술단체(‘학회’)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특정한 주제의 전문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술회의도 많다. 물리학과 화학의 난제(難題)를 주제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솔베이학술회의’도 있고, 미국의 고든재단이 개최하는 ‘고든학술회의’도 있다. 미국의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도 매년 1800회 이상의 전문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여러 종류의 학술지를 발간하는 유명한 전문기관이다.
   
   학술회의에서도 논문을 발표한다. 다만 시간적 제약 때문에 완성된 논문보다 내용을 축약한 ‘초록(abstract)’을 수록한 ‘초록집(proceedings)’을 활용한다. 과거의 초록집은 학술회의 현장에서만 활용하는 제한적인 자료집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초록집을 통째로 공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학술회의가 끝난 후에 초록을 보완해서 완성한 논문을 모아서 학술지의 특집으로 발간하기도 한다.
   
   학술회의의 논문 발표 형식도 다양하다.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형식의 ‘구두발표(oral presentation)’도 있고, 정해진 시간 동안 일정한 규격의 보드에 ‘포스터(poster)’를 붙여놓고 참가자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논문을 소개할 수도 있다. 포스터 발표는 학술회의 참석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비교적 새로운 발표 형식이다.
   
   과거에는 학술회의가 끝난 후에 완성한 정식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에 올려놓은 학술회의 초록을 그대로 학술자료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른 공학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학술회의에서도 조직위원회가 발표할 논문을 선별한다. 성공률이 매우 낮은 학술회의도 있다. 그러나 논문의 독창성과 완성도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본격적인 동료평가는 불가능하다. 학술회의에서 발표하는 논문의 초록이 학술지의 논문과 다르다는 주장은 그런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심지어 학술회의에서는 다른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던 논문을 다시 발표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학술회의에서 발표하는 논문에 적용되는 출판윤리가 더 느슨한 것은 절대 아니다. IEEE는 ‘포스터 발표의 경우에도 모든 공저자가 연구의 내용·결과에는 물론 논문의 작성 과정 전체에 직접적이고 충분하게 기여를 해야 하고, 최종 논문의 포스터 발표에 동의를 해야만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공저자의 소속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철저히 망각
   
   2015년 IEEE의 의생체공학학술회의(EBMC)에서 야당 원내대표의 아들로 알려진 김모군이 발표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포스터는 2편이다. 김군이 제1저자인 논문은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혈류량(심박출량)을 추정하는 비교적 간단한 연구로, 본인이 직접 PPG와 BCG라는 간이 맥박 측정 장치를 착용해서 얻은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김군이 4번째 저자로 표시된 다른 논문은 심박동수·체중·에너지소비량 등을 측정해서 심폐 건강도를 추정하는 연구다. 30명의 청년들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활용했다.
   
   혈류량에 대한 논문은 사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개최된 뉴햄프셔과학경진대회를 위해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군은 경진대회에서 2등상을 받았다. IEEE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 2편의 저자 표시와 기관윤리위원회(IRB) 승인이 적절했는지는 논문을 지도한 서울대병원이 판단해야 할 일이다.
   
   교육부의 전수조사에 따르면 2007년 이후에 본인의 자녀를 포함한 미성년자를 저자로 포함시킨 논문이 무려 410편에 이른다. 고등학생의 인턴 과정을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대학은 많지 않다. 결국 56개 대학 255명의 교수들 대부분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낯선 학생부와 입학사정관제도가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제도만 탓해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과학계가 15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해버렸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윤리적으로 무너진 과학자의 연구실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다시 한번 과학계의 대대적인 연구윤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