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 미국과학진흥회(AAAS)는 ‘제8회 황금거위상’ 수상자 5명을 발표했다. 개구리 피부를 이용해 콜레라 치료제를 개발하고, 투구게 연구를 통해 독성 시험의 길을 연 과학자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주변의 비웃음과 냉대를 이겨내고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연구 성과를 이뤄냈다.

‘황금거위상(Golden Goose Award)’은 처음엔 쓸모없고 허황되게 보이는 연구가 나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연구를 기리는 상이다. 2012년 미국의 짐 쿠퍼 하원의원의 주도로 처음 제정됐다. 당시 미국 의회에서 정부기금 지원을 받는 일부 연구의 예산을 삭감하자 그는 “기초과학 연구에 당장 성과를 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미국과학진흥협회, 연구중심대학연합과 함께 이 상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떤 과학자들이 황금거위상의 영광을 안았을까. 그들의 연구와 함께 살펴보자.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 마운트시나이대 의대의 데이비드 새처(David Satcher) 교수다. 그는 개구리 피부를 이용해 콜레라를 막는 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그의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 콜레라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콜레라는 치료가 늦어지면 감염자 중 절반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지만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사망률이 1%로 떨어진다.

1965년 새처 교수는 방글라데시에서 콜레라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콜레라에 걸렸을 때 환자의 장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었다. 이를 위해 그는 개구리 피부를 이용해 실험기구를 만들었다. 개구리는 피부가 얇기 때문에 우리 몸속에 병원균이 침투했을 때 장 활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새처 교수는 이 실험기구를 통해 인체의 장에 콜레라균이 침투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 정보를 토대로 많은 의학자들이 콜레라 치료제 임상시험에 나섰고, 결국 콜레라 치료제 탄생으로 이어졌다. 콜레라 연구용으로 개발한 실험기구가 치료제 개발 실험과 임상실험에 활용되면서 콜레라 치료제로까지 이어져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다.

올해 황금거위상 두 번째 주인공은 고(故) 프레데릭 뱅(Frederik Bang·1916~1981)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와 잭 레빈(Jack Levine) UC샌프란시스코대 교수다. 이들은 투구게를 연구해 세균 감염을 막은 공로로 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새처 마운트시나이대 의대 교수. 노엘 로즈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 잭 레빈 UC샌프란시스코대 교수.
(왼쪽부터) 데이비드 새처 마운트시나이대 의대 교수. 노엘 로즈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 잭 레빈 UC샌프란시스코대 교수.

투구게 혈액 연구로 세균 감염 막아

투구게는 푸른색 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생명체다. 보통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피는 붉은색을 띤다. ‘헤모글로빈’이라는 혈색소 때문이다. 헤모글로빈 속의 철이 혈액 속에서 산소를 실어나르는 역할을 하는데, 철이 산소와 결합하면 빨간색을 나타낸다. 반면 투구게는 ‘헤모시아닌’이라는 혈색소 때문에 푸른색을 띤다. 헤모시아닌은 철 대신 구리를 갖고 있어서 여기에 산소 분자가 붙으면 산화구리가 만들어지면서 원래 무색이었던 헤모시아닌이 파랗게 변한다.

또 투구게는 선천적으로 독특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투구게 혈액에는 면역작용을 하는 백혈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부 병원균과 싸울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몸속으로 병원균이 침입할 경우엔 어떻게 막아낼까. 이들은 혈액을 응고시켜 방어한다.

이런 놀라운 현상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프레데릭 뱅 교수다. 그는 1956년 미국 우즈홀해양생물학연구소에서 투구게를 활용해 혈액순환을 연구하던 중, 투구게의 피가 그람음성 세균을 만나면 바로 응고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람음성 세균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균으로 대장균·살모넬라균·콜레라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세균들은 세포벽에 독소를 갖고 있어서 면역력이 약한 상태에서 감염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뱅 교수는 당시 혈액학자인 잭 레빈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알리고, 투구게의 피가 굳는 이유를 밝혀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 후 레빈 교수는 혈액 속의 ‘투구게 변형세포 용해질(LAL· Limulus Amebocyte Lysate)’이라는 단백질이 그람음성 세균의 독소와 민감하게 반응해 피를 굳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레빈 교수는 투구게 혈액에서 LAL을 추출해 ‘엔도톡신 시험’을 개발했다. 이는 세균 감염을 감지하는 시험으로, 현재 사람에게 유용하게 이용된다. 이를테면 우리 몸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주사액이 그람음성 세균에 감염됐는지를 검사할 때 등에 사용된다. 투구게의 혈액에서 뽑은 LAL에 주사액을 떨어뜨리면 굳는 현상을 통해 그람음성 세균에 감염됐는지를 15분 안에 알 수 있다. 또 신약물질을 개발하거나 상처를 치료할 때도 쓰인다. 큰 상처나 몸속 깊이 상처 난 곳에 투구게의 혈액을 넣으면 바로 피가 굳어 감염이 퍼지는 걸 막는다. 그람음성 세균에 감염됐을 때 투구게의 피가 바로 굳어버리는 건 일종의 면역반응인 셈이다.

올해 황금거위상 마지막 주인공은 존스홉킨스대 의대 노엘 로즈(Noel R. Rose) 교수다. 그는 ‘세포가 자기 조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공로로 상을 받았다. 그는 1950년대에 갑상선 세포를 연구하던 중 동물의 몸속 세포가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autoimmunity) 반응’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후 로즈 교수는 당시 그의 지도교수였던 어니스트 위트브스키(1901~1969)와 함께 추가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자신의 조직을 자신의 면역계가 공격하는 병인 ‘자가면역질환’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다. 신체 부위에 따라 류머티즘 관절염, 크론병, 제1형 당뇨병, 갑상선 기능저하증 등 80여개 질환이 있다.

‘자가면역질환’ 세상에 알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계가 내 몸의 물질을 외부물질(음식이나 병원체)로 인식해 공격한 결과 신체가 손상을 입는 현상이다. 즉 외부물질을 항원으로 하는 항체가 형성될 때, 불운하게도 이 항원의 구조가 우리 몸의 물질과 비슷할 경우 항체를 만드는 림프구가 우리 몸의 물질을 항원으로 인식해 계속 항체를 만들어내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따라서 ‘자가면역질환’은 사실상 완치가 되지 않는 만성질병이다. 그나마 로즈 교수의 연구가 면역력을 억제하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로 이어져 증상을 완화해주고 있을 뿐이다.

과학은 성공이 보장돼 있는 프로젝트가 있을 수 없다. 여러 층들이 쌓이고 쌓인 후에야 뭔가 의미 있고 실용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렇기에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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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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