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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과학
[2576호] 2019.09.30

DNA는 유효기간이 없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DNA 포렌식 연구실. photo 뉴시스
영구미제로 남을 뻔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33년 만에 실마리를 찾았다.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지금껏 복역 중인 이춘재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 화성군 태안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10명의 부녀자들이 성폭행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됐다.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힌다.
   
   
   DNA가 같을 확률은 3000억분의 1
   
   이번에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찾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단연 DNA다. 경찰은 지난 7월 중순쯤, 과거에 채취된 DNA를 다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분석 의뢰했다. 그 결과 10건의 살인사건 가운데 3건(5·7·9차)이 이춘재씨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의 유전정보는 모두 DNA에 담겨 있다.
   
   DNA 분석 정확도는 99.99% 이상이다. 그렇기에 그 결과는 속일 수 없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DNA가 같은 사람이 태어날 확률은 최소 수치로 3000억분의 1이다. 세계 인구 60억명 중 나와 같은 DNA를 가진 사람은 동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 때문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범죄 수사나 신원 감식, 친자 확인 등에 활용된다. DNA가 확실한 증거로 쓰이는 이유는 이렇듯 사람마다 갖고 있는 DNA가 다르기 때문이다.
   
   ‘DNA 프로파일링(DNA profiling)’이라 불리는 유전자 분석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영국의 유전학자인 알렉 제프리스(Alec Jeffreys)가 1985년 동일한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횟수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 식별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DNA(유전자) 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시료에서 DNA를 채취하는 기술과 이를 증폭하는 기술,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는 기술이다. DNA를 분석할 때 가장 먼저 이뤄지는 기술이 DNA 채취다. 사건사고 현장에 남아 있는 피부나 머리카락(털), 치아, 범행도구나 바닥에 묻어 있는 혈흔이나 타액, 피해자의 속옷에 묻은 정액, 지문에 묻은 적은 양의 상피세포 등에서 DNA를 채취한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5번째 피해자 속옷에 땀과 함께 묻은 피부 표피세포에서 이씨의 DNA가 발견된 데 이어 정액이 추가로 나와 정액세포 DNA도 채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포에서 추출한 DNA는 인위적으로 증폭시켜 분석한다. 증폭은 적은 양의 DNA를 복제를 통해 늘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유전자 분석이 일대 전기를 맞은 것은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증폭하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적은 DNA 증거만 있어도 이를 수만 배 불려 특정 DNA와 비교할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특정 유전자 부위(DNA 마커)를 비교하여, 마지막 단계인 DNA 분석이 이뤄지는 것이다.
   
   기존에는 짧은 반복서열(Short Tendem Repeat·이하 STR)을 개인 식별 DNA 마커로 사용했다. 사람은 저마다 짧은 DNA의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 반복되는 횟수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DNA 부분을 특정 제한효소로 잘라서 그 DNA 조각들의 길이를 비교한다. STR을 증폭한 뒤, 음전하를 띠는 DNA의 특성을 이용해 STR의 길이 차이를 모세관 전기영동(CE)법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한 예로 7번 상염색체에 있는 ‘D7S280’을 들어보자. D7S280 부위에서 ‘GATA’ 염기서열의 반복 횟수는 6~15번으로 사람마다 다르다. 세포 하나에도 이런 STR은 100만개 이상 존재한다. 이 중 사람을 구분하는 데 유용하도록 STR을 최소 13개 이상 조합해 비교한다.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핵심 STR을 20개로 확장해 신원 확인에 사용하고 있다. 마커가 늘면 정확도도 높아지고, 용의자를 찾을 성공률도 높아진다. 최근엔 단일염기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zm·SNP)이라는 새로운 DNA 마커가 널리 쓰이고 있다. SNP는 길이는 같은데 염기 구성이 다른 부위를 말한다. 이 DNA 마커를 분석하는 기술이 나오면서, SNP를 수백 개에서 1000개 이상 동시에 분석해 직계가족이 아닌 3촌, 4촌 이상 친척의 유전자로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DNA는 수십만 년 이상 보존 가능
   
   그렇다면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왜 당시 범인의 DNA를 밝혀내지 못한 것일까. 지금은 DNA 분석이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DNA 분석 기술이 초보적인 단계였다. 그래서 일본 기관에 의뢰를 했지만 그 또한 기술이 부족했던 탓에 혈액형만 비교하는 데 그쳤다.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사실까지 밝혀냈지만 더 이상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해 거기서 끝이었다.
   
   우리나라 국과수에 ‘유전자 분석실’이 생긴 건 1991년 8월. 이후 DNA 분석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도입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국과수의 DNA 분석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해왔다. 분석 장비도 고도화되고, 시약도 발전하면서 인체 구성물 중 아주 적은 세포로도 누구인지를 밝혀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만약 당시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했다면 99%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데는 DNA 분석 기술만 활용된 게 아니다. 국과수가 구축한 DNA 데이터베이스(DB)도 한몫했다. 2010년 정부는 일명 ‘DNA법’이라 불리는 ‘DNA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표했다. 이 DNA법을 근거로 범죄 현장의 증거물이나 피의자, 범죄자로부터 확보한 DNA 정보를 DB로 구축하고, DNA를 대조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특정 짓는 일이 가능해졌다. 영국에서는 1995년부터 DNA DB를 운영해왔고, 미국은 1998년에 연방 DNA DB 구축을 시작했다.
   
   국과수에는 지난해까지 총 23만3221명의 시료를 채취해 보관 중이다. DNA는 보관 상태만 좋으면 수십만 년 이상 보존도 가능하다. 고생물학자들이 수십만 년 전 화석의 DNA를 찾아 연구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다. 국과수에 따르면 시료로부터 정제한 DNA(액체 상태)는 영하 70도 정도의 초저온 냉동고에, 속옷 등에 묻은 혈액이나 타액·정액의 DNA는 건조하고 서늘한 환경의 상온에서 보관한다.
   
   국과수의 DNA DB 덕분에 이춘재씨의 DNA가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옷 등 증거물 3건에서 검출된 DNA와 같다는 걸 밝혀낼 수 있었다. 이처럼 증거물이 남아 있다면 과거 미제사건이라도 현 기술로 용의자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DNA 분석 기술은 나머지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물론 다른 장기 미제사건 해결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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