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아프리카대륙 국가들은 지금도 높은 출산율을 보이지만, 서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계속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미국도 192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면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최근 유엔(UN)이 추계한 세계의 합계출산율도 이를 증명한다. 2015~2020년까지 5년간 지구촌 201개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2.47명에 불과했다. 1970~1975년의 4.47명과 비교하면 44.8%나 감소한 것이다. 대륙별로 봤을 때 5년간 가장 높은 합계출산율을 보인 곳은 4.44명의 아프리카 대륙이고, 유럽 대륙이 1.61명으로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5~2020년 한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11명으로, 아시아에서 출산율이 저조하다는 대만(1.15명)이나 싱가포르(1.21명), 마카오(1.20명)보다도 낮다. 심지어 2018년 한 해만 놓고 보면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세계에서 0명대 출산율을 기록한 유일한 나라였다. 출산율 저하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 중 낳는 자녀의 평균 숫자다. 남성은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기간 여성 1명이 1명의 아이를 낳는다면 인구는 반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또 아이가 태어나도 질병이나 사고로 임신 가능 연령 전에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합계출산율은 2.1명이 되어야만 간신히 개체군의 숫자, 즉 인구가 줄어들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서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을 밑도는 나라가 91개국이나 된다. 곧 전 세계가 이 기준치 이하로 밑돌 날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남성 불임의 가장 큰 원인은 정자 감소

그렇다면 지구촌의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뭘까. 사회학자 벤 워턴버그에 따르면 여성의 학력 수준 향상과 사회 변화에 따른 만혼 추세, 결혼과 출산의 기피, 초혼 연령의 고령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984년 이래 세계의 출산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편 과학적으로도 저출산은 꽤 골치 아픈 현상이다. 난임과 불임 환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성의 문제’로 난임과 불임이 발생한다는 인식이 컸다. 여성의 난자 생산이 제한적이고, 폐경이 되면 출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학계는 남녀에게 절반씩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최근의 전 세계 임상연구에 따르면 남성으로 인한 원인이 40%, 여성 원인이 40%, 부부 모두의 원인이 10%, 그리고 그 외 원인불명이 10%를 차지한다. 특히 요즘은 ‘남성 불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남성 불임은 대체로 정자의 이상에서 비롯된다. 정액 속에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이거나 정자 수가 정상보다 적은 ‘정자 감소증’이 그것이다. 정자 감소증의 원인으로 임신하지 못하는 부부는 전체 불임부부의 35%나 된다. 보통 난자 1개의 수정에 필요한 정자 수는 정액 1mL 기준으로 2000만마리다. 남자가 한 번 사정하는 정액은 평균 3mL이므로 정자 수가 최소한 6000만마리일 때 불임이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남자가 한 번 사정할 때 분출하는 정액에는 2억~5억개의 정자가 들어 있다.

정자의 운동성이나 모양이 비정상적인 경우에도 수정이 불가능하다. 정자는 질 안으로 들어간 후 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그 힘으로 난자에 도달해야 하는데, 정자가 기형으로 생겼거나 활동 정자의 비율이 떨어져 운동성이 미약해지면(정자 무력증) 불임의 원인이 된다. 헤엄을 쳐 난자 앞으로 나아가는 정자의 운동성이 20% 이상, 정자세포의 60% 이상이 정상적인 형태여야만 임신에 지장이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정자의 운동성도 현저히 떨어져 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남성의 정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그리 생소한 내용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남성의 정자 수가 감소한다는 연구가 잇따랐다. 최근의 연구로는 지난 5월에 발표된 스위스의 제네바대학교 연구팀의 정자 분석이다.

연구팀은 18~22세 청년 2523명의 정액을 수집하여 정자의 수를 비롯해 운동성, 그리고 형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수태 가능한 남성의 정액 기준’을 충족하는 비율이 단 38%에 불과했다. 참가자들 중에는 평균 정자 수가 1mL당 1500만마리 이하인 경우도 17%나 존재했다. 또 4명 중 1명은 운동성 있는 정자 비율이 40% 미만이었는데, 그중 형태가 정상인 비율은 4%에 불과했다.

동물도 정자 수 줄고 불임 증가

2017년 7월에는 서구 남성의 정자 수가 지난 40년 동안 절반 넘게 줄었고, 이런 추세가 인류 멸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안겼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의대와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하가이 레빈 교수의 연구팀이 밝힌 내용이다. 공동 연구팀은 1973년부터 2011년까지 발표된 관련 논문들을 통합 분석한 결과 지난 40년 동안 북미와 유럽, 호주 등 서구 남성들의 정자 수가 59.3% 줄었고, 농도 역시 52.4% 감소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레빈 교수는 서구 지역 남성의 정자 수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992년 9월에 발표된 덴마크의 닐스 스카케벡 박사의 연구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는 지구촌 4대륙의 21개 국가에서 1938년 이후 태어난 건강한 남성 1만5000명의 정자 수와 품질을 조사했는데, 50년 전에 비해 정자 수가 45% 줄어들었음을 밝혔다. 1940년대 조사된 당시 61개의 문헌에는 남성의 정액 1mL당 평균 정자 수가 1억1300만마리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50년이 지난 1990년에는 6600만마리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자 수가 점점 감소되고 있는 현상은 남성의 생식능력이 위기에 몰려 있음을 의미한다.

불임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동물학자들 또한 동물의 정자 품질이 나빠지거나 잠복고환(정류고환)이 나타나면서 불임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영국 엑서터대학 연구팀의 연구에서는 영국의 강에 서식하는 수컷 물고기 중 20%는 중성적 특성을 보이고 있고, 다른 20%는 정자 품질이 떨어져 경쟁력을 잃으면서 번식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연구팀은 수컷 개구리 무리 중 75%가 성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제초제 성분이 수컷 개구리의 성 발달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불임 또한 개체수가 감소되는 요인이다. 개체수 감소는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동물의 불임은 중요한 문제이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photo 뉴시스
서울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photo 뉴시스

남성 불임 증가 이유는 잠복고환과 고환암

의학계는 최근 남성 불임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잠복고환과 고환암의 급격한 증가를 꼽는다. 잠복고환은 신생아의 고환이 음낭까지 완전히 내려오지 못하고 복강에서 음낭 상부 사이에 멈춘 것을 말한다. 보통 고환은 태아기에 뱃속에 위치해 있다가 생후 3〜6개월쯤 음낭으로 내려오는데,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고환이 음낭 안에 있지 않고 내려오는 길목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잠복고환을 방치하면 생식세포 수도 줄어든다. 대한소아비뇨기과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정상 소아는 만 1세 이전에 정세관 1개 속에 평균 0.36개의 생식세포가 들어 있고 1〜2세에 0.65개, 2〜4세에 0.74개로 증가한다. 반면 잠복고환 소아는 생후 1년 이내 정세관 속의 생식세포가 평균 0.85개이지만 생후 1〜2년에는 0.49개, 2〜4년 0.26개, 4년 이후에는 0.21개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성인이 돼서 생식능력이 저하돼 불임이 될 수 있다.

임신 성공 조건으로 남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고환에서 건강한 정자를 만들고, 그 다음 충분한 분량의 정액을 사정해야 한다.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사무직 남성의 불임이 육체노동을 하는 남성보다 높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고환을 둘러싸고 있는 음낭의 주변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고환은 체온보다 2도 정도 낮아야 정자 생성을 원활히 하고 남성호르몬도 잘 만든다. 오랜 시간 다리를 꼬고 앉거나 심지어 노트북 컴퓨터를 무릎에 올려놓고 장시간 사용해도 음낭의 온도를 높여 정자 생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화학물질로 인한 ‘플라스틱 불임’도 심각해

정자 수가 줄어들면 고환암이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스위스의 세르주 네프 박사가 지난 35년 동안 고환암 환자들을 연구한 결과에서는 정액 품질이 낮게 나타난 국가들의 남성에게서 고환암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스위스의 경우 10만명당 10명꼴로 고환암 환자가 꾸준히 늘었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현대 남성의 정자 수는 인류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엔 세균감염이나 살충제·플라스틱 등에서 유래한 환경오염물질이 정자 생산에 심각한 영항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프탈레이트’라는 첨가제를 사용하는데, 남성의 경우 작업장 내에서 이런 화학물질에 노출될 경우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체내 잔류성이 강한 프탈레이트는 몸 안에 남아 정자 수나 질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를 ‘플라스틱 불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테오 콜본 박사는 1996년 정자 수의 감소를 유발한 주범으로 에스트로겐을 흉내 낸 화학물질을 지목하고, 이러한 화학물질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절규했다. 레이첼 카슨이 저서 ‘침묵의 봄’에서 DDT 등 화학살충제의 남용에 의한 새들의 멸종을 걱정했다면, 콜본은 미래의 우리 자식들이 사라질 것을 염려했다. 이스라엘의 레빈 교수 또한 우리가 사는 환경과 노출되는 화학물질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인류는 얼마 안 가서 자손을 갖지 못하고 단종돼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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