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전 세계에서 근시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로 알려졌다. 60년 전에는 10~20%에 불과했던 근시율이 최근에는 80%대까지 높아진 것. 특히 청소년 근시가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 근시는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하다. 대체 지구촌, 특히 한국의 근시 발생률이 이렇게까지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 ‘역병’ 근시의 위험

세계 시력의 날인 지난 10월 10일, WHO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의 시력 현황 보고서’가 발표됐다. WHO가 발간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시력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은 최소 22억 명이나 된다. 주로 근시나 노안, 백내장, 당뇨망막병증 등 눈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10억명 이상이 간단한 안경만으로도 시력장애를 예방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나, 장애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으로 조사됐다. WHO는 이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금액이 약 143억달러(약 17조원)라고 추산했다.

WHO는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근시가 가장 많아(51.6%) 위험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고소득 국가에서는 근시 인구가 53.4%나 돼 심각성을 더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청소년의 근시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세계 근시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은 대도시 거주 청소년 중 약 67%가 근시인 데 비해, 한국의 대도시 청소년은 약 97%가 근시를 겪고 있다고 WHO는 추정했다.

WHO는 지구촌의 시력 문제는 주로 소득에 따라 좌우됐다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중·저소득 국가의 눈 건강 문제 발생이 고소득 국가보다 4배 이상 높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의 실명률은 고소득 국가보다 8배나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중·저소득 국가에 시력장애 인구가 많은 가장 큰 원인은 ‘정보 부족’이라는 게 WHO의 분석이다. 눈 건강의 중요성이나 관리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치료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백내장 환자 중 약 6500만명이 결국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된다고 추산했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당뇨망막병증 등 당뇨병 증가에 따른 원인이 가장 컸다. 이는 당뇨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합병증 중 하나로 고혈당으로 망막 혈관이 손상되면서 순환장애와 출혈이 생겨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이다. 최근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70대 이상에서 당뇨망막병증이 늘고 있고, 음식문화가 바뀌면서 젊은이들에게서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국민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도 당뇨병 합병증 가운데 당뇨망막병증이 가장 많이 발생(12%)하고 있다. 당뇨병은 증상이 겉으로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아 침묵의 병으로 불린다. 따라서 당뇨망막병증도 소리 없이 찾아올 위험이 크다.

취학 전 아동이나 성장기 청소년에 가장 흔한 증상은 근시다. 근시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신체의 성장이 거의 멈추는 20세 정도까지 계속 진행된다. 근시는 성장기에 안구가 커지면서 비정상적으로 앞뒤로 길쭉해져 망막의 위치가 초점거리보다 멀어지는 증상이다. 고도근시는 보통 렌즈의 굴절력을 나타내는 단위인 디옵터(D)가 -6 이상인 상태를 말한다. 근시를 가볍게 여길 경우, 다수의 실명 관련 질환, 즉 백내장이나 녹내장, 망막박리, 황반변성 발병의 주된 위험 요인이 된다.

2015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근시 역시 당뇨병이나 비만과 마찬가지로 지구촌에서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21세기 ‘역병’이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49.8%(47억5800만명)가 근시이고, 이 중 9억3800만명이 고도근시로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근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실명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기가 끝나면 안구의 장축이 길어지는 속도도 더뎌지기 때문이다. WHO는 근시나 원시와 같은 시력 굴절 장애를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다섯 가지 질환 가운데 하나로 지정했다.

근시의 특효약은 야외의 햇볕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눈은 우리 몸에서 아주 중요한 기관이다. 근시 같은 시력장애는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있다.

근시의 원인에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있다. 둘 중 어느 쪽의 영향력이 더 큰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어릴 때부터 노출되는 후천적 환경에 무게를 둔다. 근시를 유발하는 유전자는 염색체상에 약 100개 이상의 영역에 분산돼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유전적 연구 결과다. 그러나 이런 원인만으로는 수십 년 사이에 근시 발생률이 3~4배로 높아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 40년간 서울·홍콩 등 동아시아 대도시에서 근시 청소년은 4배나 증가했다. 40년은 유전자 변화가 생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환경적 요인 중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빛이다. 과거에는 잘못된 독서 자세 등이 근시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서는 10대 때 빛을 충분히 쬐지 못할 경우 안구가 정상적인 모양을 잡지 못해 근시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실과 학원을 전전하며 10대 시절을 보내는 청소년, 특히 야외활동이 적은 도시 거주 청소년에게 근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다.

지나친 학습량과 함께 스마트폰 이용 또한 가까운 거리에 눈의 초점을 맞추는 시간을 늘리면서 눈을 혹사시킨다. 게임, 인터넷 등에 집중하면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게 된다. 화면을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계속 들여다보면 공막이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시력을 버리게 된다. 공막은 눈의 흰자위 부분으로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쉬지 않고 계속 가까운 곳을 보면 탄력성이 떨어져 제 모양을 찾지 못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눈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 3시간, 1만럭스(lux) 이상의 빛을 쪼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빛을 받으면 망막에서 나오는 도파민이 눈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망막 도파민은 일주기성이 있어서 낮에는 증가하고 밤에는 줄어든다. 실제로 야외학습을 늘린 경우나 책을 읽더라도 야외에서 읽을 때는 근시 발생률이 떨어진다는 호주시력센터 연구팀의 결과도 있다. WHO 또한 근시와 당뇨망막병증을 예방하려면 야외활동 시간을 늘리라고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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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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