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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과학
[2585호] 2019.12.02

인간의 ‘가사상태’ 최초 성공, 그 비밀은?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수면 캡슐.
인간도 인위적인 가사(假死)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까. SF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나 나올 법한 사람의 인공 동면 수술과 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이 고군분투 중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의료진이 환자를 일시적으로 죽음과 비슷한 가사상태에 이르게 한 다음 수술을 끝마친 후 다시 소생시키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많은 생물들은 자연적으로 생명 현상을 정지시키거나 그 속도를 늦추고 있다. 인간이 그들처럼 가사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일정 시간 생명 활동을 멈출 수 있다는 의미여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1월 20일(현지시각), 영국 과학지 ‘뉴사이언티스트’는 미국 메릴랜드대학 메디컬센터 새뮤얼 티셔먼(Samuel Tisherman) 박사팀이 총상이나 흉기로 심각한 중상을 입은 환자들의 체온을 크게 떨어뜨려 인위적으로 가사상태를 구현했다고 보도했다.
   
   
   냉각 생리식염수 주입하는 저체온 소생법
   
   가사상태가 되면 심장의 박동, 혈액순환, 호흡 등이 거의 감지되지 않아 겉으로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되살아날 수 있는 상태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사상태에 도달하게 한 것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새뮤얼 티셔먼 교수에 따르면,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의 혈관에 혈액 대신 냉각된 생리식염수를 빨리 주입해 혈액의 온도를 섭씨 10도 이하로 낮췄다고 한다. 체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간 상황에서만 가사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잠시 생물학적 시계를 멈추기 위해 의료진이 시도한 이 방식은 ‘응급보존과 소생(EPR·Emergency Preservation and Resuscitation)’이라고 하는 기술이다.
   
   가사상태를 의미하는 EPR 방식을 통해 의료진은 일단 환자의 출혈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환자의 상처 부위를 2시간 동안 수술한 후 다시 혈액을 주입하고, 전기자극으로 환자를 깨웠다. 그 결과 가사상태에 놓여 있던 환자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깨어나 정상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동안 실현 불가능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혈액은 우리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한다. 인간의 정상 체온은 36.5°C. 이렇게 정상 체온일 때 세포는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일정한 산소를 공급받는다. 그러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중상환자의 경우, 심한 출혈과 함께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면 혈액이 산소를 운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몸에 산소 공급이 안 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특히 뇌는 5분 이상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활동이 멈추게 된다. 단 몇 분의 시간 안에 수술을 해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5% 미만인 이유다. 그렇기에 메릴랜드대학 메디컬센터 의료진은 냉각된 생리식염수를 심장이 정지된 중상환자의 대동맥으로 주입해 체온을 섭씨 10°C 이하로 떨어뜨린 것이다. 물론 사람의 체온이 10°C 안팎으로 떨어지면 생명 현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25°C 안팎만 돼도 심장이 뛰지 않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메릴랜드대학 의료진이 사람의 체온을 급격히 낮춰 가사상태를 만드는 목적은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를 의학적 처치를 받기 전까지 살려놓아 생명을 구할 시간을 벌자는 것이다. 체온을 급랭하면 뇌세포의 화학적 반응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산소를 소비하지 않게 된다. 세포 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생명 현상이 느슨하게 이뤄진다는 말이다. 마치 죽은 듯이 에너지의 요구와 생산을 획기적으로 줄여 산소 결핍 상태를 견뎌내는 것이다.
   
   그 사이에 뇌에 손상을 주지 않고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고 소생시켜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것이 가사상태의 가장 큰 목적이다. EPR 치료는 주로 심장마비나 전쟁 중 깊은 총상을 입은 부상자들, 흉기나 교통사고 등으로 지나치게 피를 많이 흘려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에게 적용한다. 앞으로 메릴랜드대학의 EPR이 의료 현장에 보급되면 분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들이 뇌 손상 걱정 없이 치료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메릴랜드대 새뮤얼 티셔먼 박사 photo 유튜브

   깨어났을 때 세포 허혈성 손상 막아야
   
   티셔먼 교수팀은 사람의 가사상태를 만들기 전에 먼저 동물실험부터 실시했다. 급성 외상을 입은 돼지에게 혈액 대신 냉각된 생리식염수로 교체해 3시간 동안 가사상태에 이르게 하고, 그 사이에 봉합수술을 하고 나서 정상적인 상태로 소생시키는 데 성공한 것. 이 동물실험에서 자신감을 얻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는 게 티셔먼 교수의 설명이다.
   
   사람에게 실시한 이 임상시험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졌다. FDA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지만 다른 치료법이 없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 10명에게 EPR 치료를 허락했고, 환자의 동의(또는 보호자 동의) 또한 면제해주었다.
   
   이번 가사상태에 대한 메릴랜드대학 메디컬센터 의료진의 연구 결과 보고서는 2020년 말쯤에 발표될 계획이다. 아직은 EPR을 통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고, 또 앞으로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몇 시간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이 가사상태에서 완벽히 깨어날 수 있다면 놀라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외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800만명. 이들 가운데 절반은 과다출혈로 죽는다. 만약 사고 현장에서 응급 의료진이 저체온을 유도할 수 있다면 사고 사망자의 10%는 줄일 수 있다.
   
   우주를 탐험하는 우주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토성 유인탐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사상태를 통해 토성 여행을 꿈꿀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주인들이 가사상태에서 목적지에 도착한 후 깨어나는 방식으로 우주를 탐험하면 장기간 우주공간에서 겪는 신체 변화를 견딜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의료진이 그 길을 찾고 있다는 게 티셔먼 교수의 설명이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여러 약물을 결합해 가사상태를 연장할 수는 있다. 다만 몇 분이라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세포가 허혈성 손상을 입으면서 조직과 장기가 괴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순간적으로 산소 결핍에 빠졌던 뇌졸중 환자를 떠올려볼 만하다. 이러한 부작용을 치료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이다. 티셔먼 교수는 이런 요소들까지 포함해 모든 임상시험 결과를 2020년 말까지 발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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