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흰긴수염고래로도 불리는 대왕고래. ⓒphoto 뉴시스
일명 흰긴수염고래로도 불리는 대왕고래. ⓒphoto 뉴시스

육상과 바다를 통틀어 지구에 사는 동물 중 가장 몸집이 큰 대왕고래의 심장박동을 과학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해 화제이다. 이를 통해 최대 몸길이 33m, 최대 몸무게 180t에 이르는 거대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대왕고래가 생리적 한계까지 심장박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왕고래는 하루에 무려 4t가량의 크릴새우를 먹어 치운다. 크게 입을 벌려 작디작은 새우들을 한입에 몰아넣는 식사 장면은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장관이다. 이렇게 먹이 사냥을 위해 잠수할 때는 산소 소비를 줄이려고 극단적으로 심장박동을 늦추고, 반대로 바다 표면에 떠올라 잠시 쉴 때는 부족한 산소를 10배 이상 보충한다는 것이다.

1분에 2번 뛰는 심장박동의 비밀

지난 11월 26일, 제러미 골드보겐 미국 스탠퍼드대학 생물학부 교수팀은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의 몸에 도시락 크기의 심전도 장치를 달아 심장박동을 측정했다고 미국 국립학술원회보(PNAS)에서 밝혔다. 야생 대형 고래의 심장박동을 측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큰 동물일수록 심장박동이 느리다. 심장이 커진다고 근육의 수축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데다 상대적으로 대사율도 느려져 빨리 펌프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지구상에서 대왕고래의 심장박동이 가장 느릴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하지만 이 거대 동물을 잡아서 정확하게 심장박동을 측정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 생물학자들은 대왕고래 신체 내부의 생리작용을 파악하기 위해 심장박동을 재려고 엄청 노력해왔다. 심장박동을 알아야 대사작용을 비롯한 생리적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획한 고래나 사육하는 작은 돌고래와 달리, 야생 고래는 돌고래처럼 배를 뒤집지 않아 심장 근처에 심장박동 측정 장치를 붙이는 것부터가 힘들다. 센서를 부착하는 일 또한 어렵다. 대왕고래는 먹이를 먹으면서 배 부분이 아코디언처럼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기 때문에 장치가 쉽게 떨어진다.

대왕고래는 하루에도 몇 번을 물속과 수면을 오가며 배와 폐를 채우는 행동을 반복한다. 거대한 크릴새우 떼가 바다에 등장하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몸체를 수심 150〜200m 깊이로 잠수한 후 맹렬하게 달려들어 힘껏 입을 벌려 크릴새우 떼와 물을 한입에 집어삼킨다. 사냥 후에는 수염 사이로 물을 빼내며 바다 표면에 나와 1〜4분 동안 휴식하면서 산소를 보충한 뒤 다시 잠수하는 행동을 한다.

그렇다면 연구팀은 이렇게 과격하게 활동하는 동물의 심장박동을 어떻게 측정했을까. 연구팀은 먼저 야생 고래의 움직임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사각 도시락만 한 상자에 4개의 빨판이 달린 장치를 만들었다. 상자 안에는 심전도 장치와 위치를 알리는 무선통신 장치, 카메라 등을 넣었다. 이 측정 장치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만에서 헤엄치고 있는 대왕고래의 심장 근처 피부에 착 달라붙게 한 것이다.

장치는 무려 8시간30분 동안 대왕고래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빨판 사이의 전기 장치가 고래의 심전도 정보를 읽어냈다. 이후 측정 장치는 고래에서 떨어져 나왔다. 연구팀은 그것을 바다에서 회수해 정보를 분석했다.

대왕고래의 심장박동을 측정한 결과는 놀라웠다. 대왕고래는 물속에서 바쁘고 오히려 수면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지만 그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대왕고래의 심장은 잠수한 물속에서 분당 4~8회 뛰고, 가만히 있을 때는 분당 2회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반면 주 먹잇감인 크릴새우 떼를 발견하고 사냥을 위해 수심 깊이 잠수할 때는 이때보다 2.5배 빨리 뛰었다. 그리고 사냥을 끝낸 후 호흡을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는 심장박동이 분당 25~37회로 확 뛰었다. 고래의 덩치에 견주면 최대 속도로 심장이 뛰는 것이다.

골드보겐 교수는 쉴 때 빠르게 뛰고 일할 때 느리게 뛰는 이 독특한 양상은 짧은 호흡 시간 동안 조직에 산소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한 신체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대왕고래는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에 맹렬한 움직임의 먹이 사냥은 에너지 소비가 크다. 그래서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보존하려고 먹이 사냥을 하러 전속력으로 잠수할 때는 오랫동안 숨을 참아 심장이 느리게 뛰고, 사냥을 마치고 바다 표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는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게 되면서 피돌기가 다시 빨라져 잠수 중일 때보다 심장이 최대 10배 이상 빠르게 뛴다는 게 연구팀이 내린 결론이다.

대왕고래의 몸집이 더 커지지 않은 이유

이번 측정 결과는 많은 걸 설명해준다. 일단 기존에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대왕고래의 심장박동 값과 실제 측정한 값이 크게 달라 대왕고래가 일반적인 포유류의 대열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줬다. 몸집 크기로 따지면 대왕고래는 이론상 분당 심장이 15회는 뛰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측정값은 절반에서 3분의 1 사이에 그쳤다. 300㎏이 넘는 대왕고래의 거대한 심장이 한 번 뛸 때 80L의 피를 뿜는데 혈관이 급격히 팽창했다가 천천히 방출하며 심장을 덜 뛰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동물 세계에서는 몸집 크기와 심장박동수가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사람의 경우 분당 60~100회, 가장 작은 포유류의 경우 분당 1000회로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쥐의 경우는 평균 400회이고, 코끼리의 경우 약 30회이다.

또 한 가지는 대왕고래의 심장박동이 느려져도 생존이 가능한 이유다. 연구팀은 거대한 심장을 보조할 수 있는 ‘대동맥활’의 수축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즉 피돌기의 비밀을 ‘대동맥활’이라는 기관에서 찾은 것이다. 대동맥활은 혈류 조절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이 기능이 더 극단적으로 진화해 일종의 풍선처럼 탄력이 강해져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한꺼번에 보관했다가 수축해 필요한 장기에 서서히 보내는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최대 심장박동수를 뜻하는 한계 심박수는 과학자들이 내놓은 예측과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측된 대왕고래의 심장박동 상한은 분당 약 33회였는데, 실제 측정값은 최대 37회로 나온 것. 이는 대왕고래의 몸집이 더 커지지 않은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연구팀은 말한다. 대왕고래가 더 커지려면 물속에서 먹이를 먹는 동작을 자주 취해야 한다. 하지만 호흡을 위해 바다 표면에 나왔을 때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데 생리학적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결국 ‘물속에서 먹이를 먹는 횟수에 제한이 걸려 대왕고래의 몸 크기 진화를 제약하는 것 같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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