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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의 세상 읽기]  어설픈 과학수사가 망쳐놓은 이춘재 8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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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1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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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어설픈 과학수사가 망쳐놓은 이춘재 8차 사건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해 12월 2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30년 전 ‘이춘재 8차 사건’ 수사의 결정적 근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를 두고 검찰과 경찰이 볼썽사나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경찰은 당시 국과수가 수치를 조합·첨삭·가공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지만 고의는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서가 의도적으로 감정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수치도 임의로 가감한 허위였다고 한다.
   
   8차 사건이 몸도 성치 않은 윤모씨가 저지른 모방범죄였다던 당시 경찰과 검찰의 판단은 엉터리였다. 당시 국과수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도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라도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 것은 다행이다. 30년 전 국과수의 역량이 부족했고, 경찰과 검찰의 과학수사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과수의 전문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더욱이 당시 감정을 담당했던 전문가는 현재 중병(重病)으로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완성의 과학수사 기법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은 당시 국과수가 6년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고 있던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이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자빔으로 방사화(放射化)시킨 원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을 분석해서 시료에 포함된 원소의 함량을 파악하는 첨단 분석법을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모발이나 체모에 활용하는 것이 국과수의 목표였다. 이춘재 8차 사건은 국과수가 새로운 수사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사례였다.
   
   당시 국과수가 모발의 중성자 방사화 분석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과수의 ‘연보(年譜)’에 실어놓았던 몇 편의 연구논문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범죄와는 상관없는 모발을 근거로 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중성자 활성화 분석을 범죄 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마저도 강력한 DNA 분석법이 등장하면서 중성자 방사화 분석은 과학수사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중성자 방사화 분석은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마트Ⅲ를 운영하던 원자력연구소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더욱이 장비 크기 등의 한계 때문에 모발의 양이 적어도 1㎎은 되어야만 정확한 분석이 가능했다. 모발의 양이 부족하면 결과도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정육점의 저울로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를 정확하게 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분석에 걸리는 시간도 상당하다. 중성자빔을 10분 동안 쪼여야만 타이타늄·마그네슘·알루미늄처럼 반감기가 짧은 원소의 함량을 알아낼 수 있다. 반감기가 더 긴 아연·구리·나트륨을 분석하려면 중성자빔을 10시간이나 쪼여야 한다. 그래서 모발과 같은 생체 시료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을 몇 차례 반복하면 훼손되어버리기도 한다.
   
   당시 국과수는 8차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 2개의 분석 결과를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들의 체모 분석 결과와 비교했다. 함량을 파악한 12종의 원소 중 나트륨을 제외한 10종의 함량이 일치한다는 것이 국과수의 판단이었다. 특히 알루미늄·망간·타이타늄의 함량이 평균값보다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윤씨의 직업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로 판단했다.
   
   그런데 국과수의 ‘동일인 판단’은 매우 자의적인 것이었다. 국과수가 일치한다고 판단한 10개 원소의 분석값 중에서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경우는 마그네슘·망간·타이타늄 정도뿐이다.
   
   특히 구리와 칼슘의 분석값은 국과수의 감정서에도 ‘일치도가 낮다’고 밝혀놓았다. 구리는 현장 체모와 용의자 체모의 분석값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났고, 칼슘도 50% 이상 달랐다. 국과수가 무리한 감정을 한 것은 분명하다.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의 양이 0.467㎎과 0.89㎎으로 정상적인 분석의 한계인 1㎎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체모의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동일인 판단에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어야만 했다. 알루미늄·망간·타이타늄의 함량으로부터 용의자의 직업을 파악할 수 있다는 국과수의 주장도 성급한 것이었다.
   
   
   ‘표준시료’와 ‘수치 조작’
   
   국과수의 감정이 허술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나 검찰이 감정 결과를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펴보았거나, 외부 전문가에게 더 적극적인 검증을 의뢰했더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국과수의 어설픈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버린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30년 전 국과수 감정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원자력연구소가 1989년 12월에 발간한 중성자 방사화 분석지원 업무 실적 보고서에서 8차 사건과 관련된 분석 자료의 일부가 확인됐다. 그러나 그런 자료만으로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평가하는 일은 신중해야만 한다.
   
   우선 국과수가 의도적으로 ‘표준시료’의 결과를 바꿔치기 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일반적으로 표준시료(standard)는 분석에 사용하는 기기를 점검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료를 말한다. 실제로 원자력연구소에서도 중성자 방사화 분석을 위해 표준시료를 사용했다. 원자력연구소의 보고서에는 국제적인 시약판매사인 시그마에서 구입한 특급시약을 표준시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표준시료는 칼슘·마그네슘·아연이 포함된 고순도의 화학시료였고, 체모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국과수의 감정서에 기록된 수치가 원자력연구소 보고서의 ‘평균값’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과수가 분석 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동일한 시료에 대해 동일한 분석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경우에는 평균값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분석의 반복 횟수가 최대 3회를 넘지 않았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평균값’과 ‘편차’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측정치가 9.0, 10.4, 10.5로 얻어질 경우에는, 일반적인 관행에 따라 기계적으로 평균값 10.0을 쓰는 것보다 측정치 9.0를 제외한 나머지 두 측정값의 평균에 해당하는 10.45가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특히 시료의 양이 충분하지 않았던 현장 체모의 경우에는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된다. 실제 분석치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함부로 ‘오류’나 ‘조작’의 가능성을 들먹여서는 안 된다.
   
   어설픈 분석으로 엉뚱한 용의자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도록 만든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실수이다. 그렇다고 어설픈 억측으로 새로운 기법의 개발에 평생을 바친 국과수 전문가의 명예를 훼손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책임을 면해보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모씨의 재심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경찰과 검찰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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