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나이가 들면 기능이 쇠퇴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끝내 모든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이 온다.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생명체의 설계도인 DNA를 통해서도 미리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먼지가 쌓이듯, DNA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화학구조가 바뀐다. 이런 DNA 변화로 인간의 자연수명을 계산한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지난 수십 년간 유전자와 단백질 사이의 상호관계에 관한 연구는 유전학(genetics)을 바탕으로 진행돼왔다. 즉 어버이로부터 자손에게 전해지는 유전정보는 DNA라는 언어로 쓰여 있고, DNA 염기서열의 변화와 재조합에 의해 형질의 변화가 발생한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최근엔 DNA 염기서열에 변화가 전혀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유전정보를 바꾸고, 이 변화가 어버이로부터 자손에게 전해진다는 ‘후성유전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전학에서 핵심이 되는 메커니즘이 DNA에서 염기가 바뀌는 돌연변이라면, 후성유전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유전자 형질 발현을 조절하는 화학적 변형 중 하나인 ‘메틸화(methylation)’다. 메틸화는 DNA 염기에 메틸기(CH₃-)가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DNA의 염기서열 중 시토신(C)과 구아닌(G) 두 염기가 나란히 존재하는 것을 시피지(CpG)라 하는데, 여기서 시토신이 메틸화될 수 있다.

‘DNA 메틸화’ 분석 포유동물 수명 계산

시토신의 메틸화는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세포의 유형에 따라 메틸화 패턴이 다르고 개체발생 단계에 따라서도 다르다. DNA 내 CpG의 메틸화 정도나 양상 또한 포유동물의 종에 따라 다르다. 특히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의 염기서열에는 CpG가 밀집돼 있는 부위가 존재하는데, 이런 영역은 ‘CpG 섬(CpG island)’이라 부른다.

그런데 최근 이 ‘DNA 메틸화’가 그 사람의 연령을 기억한다는 연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의 연구도 그중 하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과학원(CSIRO)의 분자생물학자 벤저민 메인(Benjamin Mayne)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 연구진은 ‘DNA 메틸화’ 현상을 분석해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의 자연수명을 계산해냈다.

자연수명은 자연에 의해 규정된,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한의 수명이다. 질병 등의 변수를 배제하고 노화율에 기초한 수명을 의미한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신체의 유전자 기관에는 조금씩 오류가 쌓이게 되면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쁜 단백질이 생성된다. 이로 인해 언젠가는 세포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대사 작용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똑같은 속도는 아니지만 세포의 수명에 한계가 있어 우리 몸의 모든 시스템은 늙는다는 얘기다.

벤저민 메인을 비롯한 연구진은 이와 같은 자연수명을 알아내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들의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메틸화가 진행되는 CpG 부위의 밀도가 수명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를 위해 연구진이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은 척추동물 252종의 게놈 정보 확보다. 그리고 이것을 지금까지 알려진 동물의 수명과 특정 유전자인 촉진유전자(프로모터 유전자=DNA에서 RNA를 합성하는 전사가 시작되는 부위의 유전자)에서 발생하는 DNA 메틸화를 조사하고 비교하여 척추동물의 수명을 추정했다. 촉진유전자 내의 CpG 밀도를 근거로 척추동물의 자연수명을 정확하게 예측해낸 것이다.

연구진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촉진유전자는 42개. 이 중 12개는 부정적, 22개는 긍정적으로 수명에 작용했고, 나머지 8개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극히 소수의 유전자로 DNA 메틸화 현상을 분석해 동물의 나이를 추정하는 이 수명시계 모델은 일종의 ‘DNA 타이머’인 셈이다. 수명시계 모델을 통하면 척추동물만이 아니라 멸종된 종의 나이까지 추정할 수 있다. 연구진이 수명시계 모델을 적용해 밝혀낸, 오래전에 멸종된 코끼리과 동물 2종(털매머드와 팔라에올록소돈 안티쿠스)의 자연수명은 60년이다. 아프리카 코끼리와 비슷한 수명(65년)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큰 차이 없어

연구진은 또 수명 모델을 인간의 자연수명에도 적용해 38년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은 초기 인류의 수명이 40년이라고 추정해왔는데, 그 수치에 가깝다. 또한 유인원인 침팬지, 인류의 원조인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과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알아낸 침팬지의 자연수명은 39.7년,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은 둘 다 똑같이 37.8년으로 나왔다.

반면 과학자들이 추정한 자연수명보다 더 높게 나온 동물들도 있다. 북극고래의 경우 연구진이 수명 모델을 적용해 나온 자연수명은 268년이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추정한 수치는 211년이었는데, 이보다 57년이나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핀타섬거북 또한 자연수명이 100여년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연구진의 결과는 120년으로 나타났다. 벤저민 메인 연구진의 이번 연구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지난해 12월 12일자에 실렸다.

인류의 수명은 영양과 의료 환경의 개선으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평균 수명이 2배 이상 늘었고, 이는 기적에 가까운 급속한 연장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어디까지 늘 수 있을까.

2016년 ‘네이처’에 실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 수명의 한계는 115세이다. 이는 세계 41개국 인구의 수명 데이터를 기초로 분석한 결과다. 사람들은 평균 수명 연장에 계속 희망을 걸 수 있지만 수명의 한계는 뻔하기 때문에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교훈을 주는 연구 결과라고 연구팀은 말한다. 물론 115세를 넘겨 사는 사람이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1997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진 칼망은 122세까지 살아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남아 있다.

한편 캐나다 맥길대의 지그프리드 헤키미 교수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인간 수명의 한계는 계속 확장될 것이며, 2300년이 되면 가장 길게는 150세까지 사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평균 수명의 확대가 115세 벽에서 갑자기 막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115세이든 150세이든 사람의 수명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장수 현상이 현실화할 경우 정년, 노인 기준 나이 등 엄청난 사회제도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다. 이제부터라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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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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