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료원 의료진이 지난 3월 3일 오전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진단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지난 3월 3일 오전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진단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중국과 우리의 감염자 폭증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기던 미국과 유럽이 뒤늦게 패닉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바이러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중국에 ‘책임’을 묻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렵사리 불길을 잡아가고 있는 우리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냉정한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형 과학 방역’의 핵심인 최첨단 BT(바이오기술) 기반의 ‘신속 진단’과 IT(정보기술) 기반의 ‘조기 격리’ 기술을 주목해야 한다. 괴담에서 시작하는 공포와 혼란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코로나19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반격이라는 주장이 있다. 박쥐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서식지를 빼앗은 인간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설득력이 전혀 없는 엉터리 인포데믹(정보전염)이다. 역병(疫病)의 정체조차 알 수 없었던 시절의 ‘하늘의 저주’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패배주의적 주장이기도 하다.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은 낯선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역병의 거의 대부분이 야생동물에서 시작됐다. 흑사병은 쥐가 문제였고, 말라리아·황열병은 모기가 만들어낸 문제였다. 독감은 철새·돼지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가축이나 애완용으로 사육하는 동물이 우리에게 고약한 전염병을 옮겨주기도 한다.

‘과학적’ 면역력을 키워준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1965년에 처음 그 모습이 확인됐다. 그렇다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리노·아데노와 함께 일반 감기를 일으켜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왔던 작은 ‘악동’들이다. 아마도 인류가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1만2000년 전부터 인류사회에 토착화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출현한 사스(SARS)와 2015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메르스(MERS)도 역시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증후군이었다. 우리를 괴롭히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스는 2003년 7월까지 중국·홍콩을 비롯한 17개국에서 8098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우리는 강력한 유입차단 정책을 폈고 이것이 주효했다. 발원지인 중국·홍콩에서 들어오는 모든 여행객에게 출발지에서 체온 측정을 요구했다. 덕분에 우리는 3명의 감염자가 발생하는 수준에서 위기를 극복했다. 이 덕분에 김치가 면역력을 높여줬다는 황당한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낙타를 통해 시작된 메르스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2015년 5월 중동에서 귀국한 여행객과 함께 들어온 메르스가 평택과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어처구니없는 집단감염을 일으켰다. 공적연금 전공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도한 엉터리 방역 정책이 사태를 최악으로 망쳐놓았다. 공명심에 들뜬 서울시장까지 가세하면서 혼란은 극에 달했다. 결국 186명이 감염되어 39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은 우리의 방역 정책은 형편없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메르스가 우리에게 아픈 기억만 남겨준 것은 아니다. 이번에 우리 바이오벤처들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실시간 유전자증폭기술’(RT-PCR)을 이용한 신속 진단키트를 재빠르게 개발하고, 감염자의 동선을 적극적으로 파악해서 격리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온전하게 메르스가 남겨준 소중한 교훈 덕분이었다. 오늘날 정부 기관 중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질병관리본부가 차관급으로 승격된 것도 역시 메르스 덕분이었다. 객관적 시각에서 방역 대책의 성과를 분석해서 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는 중앙임상위원회도 마찬가지다.

2009년의 신종플루도 힘든 경험이었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신종플루가 우리나라에 도달하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첫 사망자가 발생한 8월까지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11월 3일에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조정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전국에서 75만명이 감염되어 263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한 달 만인 12월 중순에 사태가 마무리되기 시작한 것은 천운이었다.

사실 코로나19는 처음부터 우리가 쉽게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이었다. 우리가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과 떼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청도 대남병원과 신천지도 감당하기 어려운 돌발변수였다. “겨울철에는 모기용 방충망이 필요없다”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 세계가 사용하는 유입차단 정책을 “투박하다”고 평가절하한 외교부 장관의 어처구니없는 소신도 난공불락이었다. 정부·여당의 안이한 인식도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이 정도라도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속 진단·격리’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바이오(BT)·정보기술(IT) 덕분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배달(配達) 문화도 사회적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현대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국형 과학 방역’은 중국이 사용한 ‘무차별적 차단·봉쇄’보다 훨씬 개선된 방역 정책이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한국형 과학 방역을 세계화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교 문을 열기 위한 대책

전문가 단체인 의사협회와 학술단체들이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못내 아쉽다. KF94 마스크가 아무리 좋아도 생산량이 부족하면 그림의 떡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KF80도 괜찮다는 권고도 의미가 없다. 마스크의 재사용 금지 권고도 일반인에게는 비현실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개발에 성공한 적이 없다. 진단키트와 달리 사람에게 직접 투여해야 하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에는 ‘임상시험’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과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한 소독도 제한적이라야 한다. 실내공간에 소독제를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분무식 소독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소독제를 묻힌 걸레로 손잡이·테이블을 닦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소독 방법이다. 바닥·벽·간판에 소독제를 마구 쏟아붓는 소독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일 뿐이다.

요란한 ‘항균’ 제품도 대부분 믿을 것이 아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인증해준 ‘항균 소재’는 없다. 플라스틱 속에 녹아 있는 구리이온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제거해준다는 주장은 화학적으로 비현실적이다. 목걸이에서 방출되는 강한 산화력의 소독제는 바이러스보다 사람에게 더 위험할 수 있다.

초·중·고와 대학의 개학은 교육부가 혼자 주먹구구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학교 문을 열면 감염은 확산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아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인구의 60%가 감염되는 ‘집단감염’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학교 문을 닫아둘 수도 없다. 국민들도 개학에 따른 일시적 감염 확산을 감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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