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3D 프린팅 기업 머터리얼라이즈가 개발한 ‘핸즈프리 도어 오프너’. ⓒphoto designboom.com
벨기에 3D 프린팅 기업 머터리얼라이즈가 개발한 ‘핸즈프리 도어 오프너’. ⓒphoto designboom.com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3차원(3D) 프린터 이용이 활발하다.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창궐로 의료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3D 프린팅으로 공급 물량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3D 프린팅 기술은 필요한 장비를 바로 생산해낼 뿐 아니라 원격지에서도 설계에 따라 프린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런 장점을 활용해 인공호흡기와 안면 보호대(페이스실드) 같은 제품을 빠른 속도로 공급하는 등 다방면에서 3D 프린터의 활약이 크다.

중국에서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페이스실드. ⓒphoto 유튜브
중국에서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페이스실드. ⓒphoto 유튜브

의료장비 공급 해결책으로 급부상

미국은 페이스실드를 3D 프린터로 만들고 있다. 페이스실드는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할 때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얼굴에 착용하는 투명 가림막이다. 대표적 제작자는 자동차 회사 포드다.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던 3D 프린터를 실드 제작에 맞게 일부 개조하여 매주 10만개의 페이스실드를 출시하고 있다. 프린터 전문기업 HP 또한 페이스실드는 물론 감염 여부를 검사할 때 사용하는 면봉 등을 의료전문가와 협력하여 대량 생산해내는 중이다.

유럽에서는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독일의 폭스바겐이 3D 프린팅을 통해 페이스실드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또 체코의 3D 프린팅 업체 프루사도 개당 1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하루 800개를 제작해 체코 보건부에 1만개 이상을 기부했다.

중국은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페이스실드뿐 아니라 응급 의사들의 보안경을 3D 프린터로 제작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격리병동까지 3D 프린터로 찍어낸다는 것. 중국의 건축업체 윈선은 모듈형 주택 제작에 사용하던 건축용 3D 프린터를 활용해 코로나19용 조립식 격리병동을 하루 15개씩 생산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인 디지털산업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마스크 제작에 나섰다. 헬스케어와 힘을 합쳐 24시간 3D 프린팅으로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은 마스크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GE, HP와 협력해 몇 주 동안 200만~300만장 이상의 마스크를 만들어 미국 질병관리본부에 기부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새로운 풍속을 낳았다. 그중 하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이쑤시개로 누르거나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문을 여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금속이나 플라스틱에서 오랜 시간 살아 있다는 실험 결과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손을 대지 않고 팔뚝으로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핸즈프리 손잡이가 등장했다.

벨기에의 3D 프린팅 기업 머터리얼라이즈는 손 대신 팔뚝을 걸어 문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 ‘핸즈프리 도어 오프너’를 개발했다. 문에 구멍을 뚫거나 손잡이를 교체할 필요 없이 기존의 손잡이에 간단하게 부착만 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현재는 원통형 손잡이에 설치하는 형태지만 여러 형태의 손잡이에도 응용할 수 있다.

데스크톱 3D 프린팅 솔루션 기업 얼티메이커는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병원에서 신속하게 출력할 수 있는 도구와 애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지원한다. 웹사이트 ‘Ultimaker.com’에 업데이트되는 지도를 통해 병원 의료진과 관리자에게 출력이 가능한 병원 근처의 3D 프린팅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또 얼티메이커 자체에서 가지고 있는 3D 프린팅 장비로도 출력을 지원한다. 요청된 부품은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병원으로 전달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파티션(칸막이)’도 관심을 끈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남택진 교수가 코로나19로 수업이나 학생 면담을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다가 고안해낸 작품이다. 3D 프린팅으로 모형을 제작해 3㎜ 아크릴을 세워 고정해 놓으면 코로나 파티션이 된다. 사무실이나 병원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3D 프린팅 제작 파일이 공개되어 있다.

영국의 다이슨이 3D 프린팅을 활용해 열흘 만에 만든 인공호흡기 ‘코벤트’. ⓒphoto standard.co.uk
영국의 다이슨이 3D 프린팅을 활용해 열흘 만에 만든 인공호흡기 ‘코벤트’. ⓒphoto standard.co.uk

인공호흡기 개발도 뚝딱

3D 프린팅의 대표 상품은 인공호흡기다. 미국 온라인 매체 클리브랜드닷컴은 고가의 인공호흡기 제작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한편 누구나 손쉽게 인공호흡기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3D 기술이 지구촌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고 지난 3월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자가호흡이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쓰이는 인공호흡기는 세계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인공호흡기 생산은 진입 장벽이 높다. 제품 설계와 그 제품을 생산할 전용 라인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인공호흡기에 들어가는 전자부품, 소프트웨어, 구동장치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3D 프린팅으로 만들 수 있는 나머지 부품을 활용하면 인공호흡기 제작이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영국 다이슨은 3D 프린팅을 활용해 열흘 만에 ‘코벤트(CoVent)’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공호흡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다이슨은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은 후 열흘 만에 코로나19 환자에게 최적화된 인공호흡기를 설계하여 개발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놀라운 속도다. 인공호흡기의 생산 또한 신속하게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 코벤트는 4월 초부터 사용이 가능하다. 다이슨은 영국 정부로부터 1만대를 주문받았지만 5000대를 더 만들어 각국에 기증할 계획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인공호흡기 부품인 교체형 밸브를 3D 프린터로 생산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3D 프린팅 기업 ‘이신노바’가 대표적이다. 이신노바는 8시간마다 바꿔야 하는 인공호흡기 마스크용 밸브를 3D 프린터로 생산해 하루 100개씩 주변 의료시설에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인공호흡기용 마스크와 밸브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고려해 이신노바는 6시간 만에 밸브 구조를 똑같이 모방해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스노클링에 쓰이는 마스크를 인공호흡기에 연결해 활용할 수 있는 호흡용 밸브를 3D 프린터로 생산해 공급할 계획이다.

이탈리아의 인공호흡기 밸브는 롬바르디아주의 두 청년 엔지니어가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한 게 시초다. 이들은 3D 프린팅 기술로 실제와 거의 같은 복제 밸브 100개를 만들어 병원에 무료로 공급했는데, 이 밸브로 코로나19 중증환자 수십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3D 프린팅 제품들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하루빨리 치료될 수 있길 기원한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